최근 수정 시각 : 2024-07-27 20:47:17

게르하르트 튀벤

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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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6b94> ▲ 21~30위
순위 이름 국적 격추 수 주 기종 비고
31위 하인리히 슈투름 독일 158대
32위 게르하르트 튀벤 독일 157대
33위 한스 바이스벵어 독일 152대
페터 뒤트만 독일
35위 고르돈 골로프 독일 150대
36위 프리츠 텍트마이어 독일 146대
37위 알빈 볼프 독일 144대
38위 쿠르트 탄처 독일 143대
39위 프리드리히-카를 뮐러 독일 140대
40위 카를 그라츠 독일 138대
하인리히 제츠 독일
루돌프 트렝켈 독일
43위 프란츠 샬 독일 137대
발터 볼프룸 독일
45위 호르스트-귄터 폰 파송 독일 136대
오토 푀네콜트 독일
카를-하인츠 베버 독일
48위 요아힘 뮌헤베르크 독일 135대
49위 한스 발트만 독일 134대
50위 알프레트 그리슬랍스키 독일 133대
요하네스 비제 독일
▼ 52~6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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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ndesarchiv_Bild_183-2007-1218-500,_Gerhard_Thyben.jpg

게르하르트 튀벤(Gerhard Thyben : 1922년 2월 24일~2006년 9월 4일)

1. 입대와 훈련2. 독소전에서 활약3. Fw 190 격추왕4. 서훈

1. 입대와 훈련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북부 독일의 항구 도시인 에서 1922년 2월 24일에 태어난 게르하르트 튀벤은 1940년 6월 1일에 루프트바페에 지원하여 입대했다. Bucker 131, Gotha 145에 쌍발기인 포케불프 Fw 58까지 조종하며 훈련을 받다가 1941년 8월 31일에 조종 면허를 딴 그는 파리에 세워진 제5전투비행학교에서 처음 일선 전투기인 메서슈밋 Bf 109를 몰게 된다.

2. 독소전에서 활약

1942년에 들어서야 일선에 투입될 자격을 갖춘 그는 JG 54 예하의 제3전투비행단에 배속되었다. 편대원으로 독소전에 참전한 그는 1943년 초에 더글라스 A-20 폭격기를 첫 제물로 삼은 뒤 1944년 9월 30일까지 불과 1년 반 남짓되는 짧은 기간 동안 루프트바페에서 93번째로 격추수 100대를 기록했다. 1945년 5월 8일, 쿠를란트 포켓에서 벗어나는 독일 피난민들을 가득 태운 수송선을 노리는 소련 폭격기 Pe-2를 격추시켜 수 천명을 구해냈지만, 이것이 게르하르트 튀벤 최후의 격추 기록이 되었다.

3. Fw 190 격추왕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출격횟수 385회에 격추수 157기로, 152기는 동부전선에서 격추했고 5대는 서부전선에서 격주했다.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은 그는 Fw190을 몰고 영국 공군의 비행장에 착륙한 다음 항복했다. 그는 1946년까지 영국에서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다음에는 스페인아르헨티나를 여행한 후에 콜롬비아에 입국하여 공군 고문으로 활동했다.

4. 서훈

  • 2급 철십자 훈장 (1943. 5. 25)
  • 1급 철십자 훈장 (1943. 7. 10)
  • 공군 명예컵 (1943. 8. 31)
  • 독일 황금십자장 (1943. 10. 24)
  • 기사철십자 훈장 (1944. 12. 6)
  • 제822호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1945.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