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25년 10월 19일 전라북도 정읍군 옹동면 비봉리의 중농 집안에서 출생했다. 창씨명은 강본영준(姜本永俊)이다. 1939년 3월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공립국민학교를 졸업하였고, 그해 4월 경성 숭례공립국민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1년 3월 고등과를 졸업한 뒤 그해 4월 경성인문고등학원에 입학하여 1943년경 3학년에 재학했다.1942년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본적지에 돌아갔을 때, 자택에 있던 제목은 불분명한 잡지에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영국의 인도에 대한 기만 정책에 대하여 기술한 기사를 발견하고 이를 열독한 뒤, "태평양 전쟁에서의 조선인의 장래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반전의식을 고취했다. 1943년 11월 4일 경기도 경성부에 거주하고 있을 때, 정읍군 칠보면 와우리에 거주하는 민병섭으로부터 정읍 지방에서의 벼 공출 할당량이 전년의 3배로 강화되어 농민들이 어렵게 지낸다는 말을 듣자, 이에 불만을 품었다.
1943년 11월 9일, 강영준은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문방리에 거주하는 자신의 장인 안등재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지나가 버린 것은 태양의 세월이고, 오는 것은 새로운 하루하루입니다. 태양이 남쪽 나라로 달려가는 것처럼, 수목은 붉게 물들어 낙엽으로 변하여 아침, 저녁으로 냉기가 느껴지는 이 때 할머니고 잘 계시고 장인, 장모님도 잘 계시고, 덕령군도 매일 매일 잘 놀고 있습니까? 사위인 저는 학창생활도, 먹고 자는 것도 별다른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집사람도 3, 4일 전에 편지에 따르면 무사하게 지내는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장인어른은 어떠한 사무에 힘쓰고 있으신지요. 집안일도 바빠지고 여름부터 더 한층 농작물의 수확에 바빠지겠지요.
공출문제도 들리는 바에 따르면 작년과 달리 작년의 약 3배나 된다고 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보리 파종에 그리고 절임에 고심하고 있을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시세에 따라가는 우리들 조선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놈들의 노예라고 말할 수 있는 실로 비참한 일입니다. 물론 농촌에서도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겠지만, 경성에서는 이러한 절임에 필요한 야채마저도 부족한 상태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사를 내버려두고 단지 그날그날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산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일시적 곤란이 아니라 이 전쟁이 결말이 나도 영원하게 오랫동안 곤란이 계속될 것인데, 실로 생각해보면 비참한 기분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 지방의 공출은 별로 심하지 않습니까? 칠보면 집의 소식을 들으니 악화되었다고 말하는데, 농부들의 고심은 실로 말로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문방리는 조금 낫지만 여러 가지의 공출 문제는 정읍 지방보다도 혹독하지 않습니까? 이 모두가 일시적이라면 감수하겠지만, 만일 수십 년, 아니 영원하다면 우리 조선민족에게 적지 않은 내란이 야기되지 않겠습니까.
전문대학의 문과계통의 학문은 폐지되고 전부 특별지원병으로 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한층 더 공부에 노력할 생각도 기분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농촌에서 아직 이러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일 자기 자식이 이러고 있다면 실로 대단히 비참학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것을 다시 쓰기 번잡하니 이만 붓을 놓곘습니다. 이러한 시국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다음에 다시 편지 쓰는 것으로 하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공출문제도 들리는 바에 따르면 작년과 달리 작년의 약 3배나 된다고 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보리 파종에 그리고 절임에 고심하고 있을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시세에 따라가는 우리들 조선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놈들의 노예라고 말할 수 있는 실로 비참한 일입니다. 물론 농촌에서도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겠지만, 경성에서는 이러한 절임에 필요한 야채마저도 부족한 상태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사를 내버려두고 단지 그날그날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산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일시적 곤란이 아니라 이 전쟁이 결말이 나도 영원하게 오랫동안 곤란이 계속될 것인데, 실로 생각해보면 비참한 기분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 지방의 공출은 별로 심하지 않습니까? 칠보면 집의 소식을 들으니 악화되었다고 말하는데, 농부들의 고심은 실로 말로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문방리는 조금 낫지만 여러 가지의 공출 문제는 정읍 지방보다도 혹독하지 않습니까? 이 모두가 일시적이라면 감수하겠지만, 만일 수십 년, 아니 영원하다면 우리 조선민족에게 적지 않은 내란이 야기되지 않겠습니까.
전문대학의 문과계통의 학문은 폐지되고 전부 특별지원병으로 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한층 더 공부에 노력할 생각도 기분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농촌에서 아직 이러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일 자기 자식이 이러고 있다면 실로 대단히 비참학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것을 다시 쓰기 번잡하니 이만 붓을 놓곘습니다. 이러한 시국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다음에 다시 편지 쓰는 것으로 하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1943년 11월 29일, 장인 안등재춘이 위 편지를 읽은 혐의로 체포되었고, 12월 2일 강영준이 “시국에 관하여 인심을 어지럽히는 사항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후 19144년 1월 25일 진주지방법원으로부터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85년 1월 15일 정읍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3. 참고 문헌
- 독립유공자공훈록 24권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