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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white> 스카이랩 Skylab | |
스카이랩 미션 패치 | |
<colbgcolor=#231f20> 운용 여부 | 퇴역, 소멸 |
발사일 | 1973년 5월 14일 17시 30분 00초 UTC 케네디 우주센터, 플로리다 LC 39A |
재진입(소멸) | 1979년 7월 11일 16시 37분 00초UTC |
공전 기간 | 2,249일 |
우주인 체류 일수 | 171일 |
총 공전횟수 | 34,981 회 |
총 이동거리 | 약 1,400,000,000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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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2249일동안 궤도에 머무르며 34,981회 지구를 공전했고, 3회에 걸친 임무를 통해 총 9명의 대원이 171일 13시간 동안 우주에 체류했으며, EVA 시간은 42시간 16분에 이른다. 하늘의 실험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과학 실험이 이루어져, 태양 코로나 홀 관측 등의 성과를 남겼다.
2. 아폴로 응용 계획
궤도상에 시설물을 올리자는 아이디어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이는 아서 클라크 등 SF 작가들의 상상에만 그치지 않고 과학자들의 구체적인 계획으로 이어졌는데, 베르너 폰 브라운은 80여명이 상주하며 과학 실험, 기상 관측, 적국 감시 등을 수행하고, 달 및 화성 탐사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대규모 우주정거장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후 폰 브라운은 달 기지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호라이즌(Project Horizon)의 일환으로 궤도를 도는 실험실을 제안했다.한편 1964년 7월, NASA 상부는 달 착륙 성공 뒤 예산이 깎여나가 생길 대규모 해고 사태를 막아보려는 목적으로, 아폴로 우주선의 하드웨어를 응용한 여러 과학 연구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계획들은,
- 2기의 새턴 V를 사용하고, 달 착륙선을 베이스로 한 달 표면 기지를 건설한다.
- 달 착륙선을 개조한 유인 천체 망원경을 궤도상에 쏘아 올린다.
- 달 착륙선이나 기계선을 연결한 소규모 우주 정거장을 건설한다.
- 사령선을 타고 금성을 플라이바이한다.
등이었다. 이 연구는 2년 후에 「아폴로 응용 계획 (Apollo Applications Program, 약어: AAP)」이라고 명칭을 변경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당 계획 산하의 제안도 늘었는데 그 중에는,
- 기계선의 연료탱크를 들어내고 화물칸을 증설해 지구 궤도용 화물선으로 활용한다.
- 사령선을 개조해 일종의 우주 구명정을 만든다.
- 아폴로에 "날개"를 달아 재진입 후 비행장까지 활공한다(...)#
- 달 착륙선이나 사령선의 상단부를 뚝 떼내고 거기에 바퀴를 달아 대형 월면차를 만든다.
다만 어디까지나 NASA의 밥줄 유지를 위한 보험 역할에 가까웠으니 한참 제미니 계획과 아폴로 계획 초기 단계가 돌아갈 당시에 AAP는 일종의 한직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미드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앨런 빈의 독백에서 당시 우주 비행사들이 AAP에 갖던 인식의 한 편을 느낄 수 있다.[1][2]
허나 연구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달 착륙을 성공 한 NASA의 예산은 사정없이 깎여나갔고, 달 기지 건설이니 하는 거창한 계획들은 모두 취소되고 비교적 얌전한 것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위의 계획들 중...
- 달 착륙선 상단을 개조한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측한다.
- 궤도에 달 착륙선 상단을 개조한 지구관측 모듈을 올린다.
- 로켓을 개조한 염가 우주정거장을 올린다.
를 합쳐 스카이랩이라는 우주정거장을 만드는 계획으로 발전하였다.
폰 브라운의 원래 계획은 새턴V의 2단을 개조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생산되는 모든 새턴V는 달 탐사용인지라 수가 부족했고, 대신 지구궤도 임무 몇 개가 취소되어 남아도는 새턴IB의 2단[3]을 개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형태를 웻 워크샵(wet workshop)이라고 하는데, 최소한의 연료를 탑재한 로켓을 궤도에 올리면, 남은 연료는 버리고 빈 깡통이 된 그 자리에 두 번째 로켓으로 쏘아올린 실험장비 및 거주시설을 끼워넣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17호 이후의 아폴로 계획들이 취소되며 새턴V 세 대가 수중에 들어왔는데, 이때는 이미 설계작업이 한참 진행된 터라 다시 2단 기반 실험실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대신 여유 중량이 넉넉해져 더 많은 장비를 넣을 수 있었고, 잔여연료를 버리고 우주정거장 설비를 집어넣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완성된 정거장을 바로 궤도에 올릴 수 있었다. 이 형태를 드라이 워크샵(dry workshop)이라 한다.
3. 임무
3.1. 스카이랩 1호
1973년 5월 14일 스카이랩 본체를 발사한 미션.스카이랩 본체는 새턴 IB의 2단 로켓을 개조하여 새턴 V의 3단 자리에 설치[4]한 것으로, 한 사람이 24개월간 생활할 수 있는 보급품을 탑재하고 있었다. 상단에는 도킹 모듈과 아폴로 달 착륙선 상단을 개조한 태양 관측 망원경을 장착하고 있었다.
우주인들은 별개의 새턴 IB가 쏘아올리는 아폴로 사령선에 탑승해 스카이랩에 도킹했고, 임무가 끝난 뒤에도 사령선에 탑승해 재진입했다. 엄밀히 말해 스카이랩 2~4호는 이 아폴로 사령선의 명칭이다. 그러나 NASA 내부에서도 미션 명칭 부여에 혼동이 생겨 아래에 나오는 미션 패치를 보면 스카이랩 2, 3, 4호가 각각 1, 2, 3호로 표기되어 있다.
스카이랩 1호는 발사 중 오작동으로 인해 알루미늄 차폐판 일부와 날개형 태양전지판 2개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다른 하나에는 차폐판의 파편이 박혀서 펼칠 수 없게 되었다. 스카이랩이 궤도에 오른 후 휴스턴의 비행 관제 센터는 수 차례 태양전지판을 열도록 지시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발사 90분 후 휴스턴은 스카이랩의 고장을 확인했다.
스카이랩을 보호하는 열 차폐판이 없으면 동체 외판은 163℃까지 가열되고 내부는 74℃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우주선 내의 식량, 필름, 의약품이 손상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벽에 도장된 포말 단열제로부터 유독성 가스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비행 관제 센터는 항구적인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스카이랩 외벽에 장착된 자세제어 로켓을 분사해서 손상된 부분이 태양광을 직접 받지 않게 했고, 덕분에 스테이션 내부 평균 온도는 약 54℃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에 기술진은 6.6 x 7.2m의 접이식 장방형 파라솔을 설치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었다.
3.2. 스카이랩 2호
선장은 피트 콘래드, 조종사는 폴 와이츠, 과학 조종사는 조셉 커윈이다. 임무 시간은 28일 50분이며, 스카이랩 1호 수리를 위한 것을 포함해 3회의 EVA가 이루어졌다.
본래는 스카이랩 1호가 발사된 다음날인 5월 15일에 따라 올라갈 예정이었으나, 엔지니어들이 급조한 응급처치 방법을 습득하느라 그보다 10일 늦은 1973년 5월 25일에 본체 수리를 위한 장비들을 싣고 발사되었다. 본디 이 첫 비행은 우주 공간에서의 작업이 가능한지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스카이랩 1호를 수리하는 미션으로 전환되었다. 발사 약 7시간 30분 후 스카이랩 2호는 도킹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행히 NASA 비행 관제센터의 빠른 대응 덕분에 스테이션 내부의 피해는 최소화되었고, 이들은 파라솔 차양을 설치해 스카이랩 내부의 온도를 낮추는데 성공하였으며, 2주 후에는 EVA를 통해 접혀 있던 태양전지판을 열어 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은 거의 한 달 동안 스카이랩에 체류하며 시설 수리와 실험을 병행했다.
미국 우주 개발 프로젝트 중 최초로 인간을 우주 공간에 장기간 체류시키는 이 미션을 위해 여러가지 실험이 진행되었다. 우주비행사들은 근손실을 막기 위하여 매일 1시간씩 런닝머신 비슷한 기구로 운동을 했고, 무중력 공간에서의 방향감각 테스트, 혈압 및 맥박 측정, 우주공간에서의 다양한 식사 및 수면에 대한 생리적 반응 테스트 등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지구로 귀환한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체중이 줄었다. 특히 장기간 다리를 쓰지 않은 데다 체액의 재분배가 겹쳐서 근력 감소가 더 두드러졌다. 무중력 상태에서 척추가 늘어나서 모두 2.5cm정도 키가 커져 있었다. 심장은 3%정도 수축했고, 다시 지구상에서 호흡을 하게 되자 맥박이 빨라졌다. 착수 약 2일 후 모든 우주인들은 다시 지구 생활에 잘 적응했다고 한다.
3.3. 스카이랩 3호
1973년 7월 28일, 케네디 우주센터 LC-39B에서 발사되었다. 임무 시간은 59일 11시간 09분 01초이며, EVA는 총 세번 실시되었다.
선장은 앨런 빈, 조종사는 잭 루스마, 과학 조종사는 오웬 게리엇[5]이다.
스카이랩 3호의 미션 패치에 그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 비례도(비트루비우스적 인간)는 이번 미션의 목적이 우주에서의 신체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것임을 상징한다. 하지만 미션 패치에는 원판의 성기를 제거하였다.
스카이랩 3호의 실험은 기본적으로 스카이랩 2호에서 수행한 여러 실험들의 연장선상에 있었는데, 2배 더 긴 체류 기간을 통해 무중력 공간에서 보낸 시간에 따른 인체의 생리적 변화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했으며 이외에도 세포 배양 실험, 미세 중력 실험을 수행하였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무중력 환경에서 거미가 거미줄을 어떻게 치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는데, 거미를 위한 먹이와 물을 준비하지 않는 등 부실한 실험 준비로 인해 그다지 유의미한 결과를 얻진 못했다.
스카이랩 3호 대원들은 스카이랩을 떠나며 후속 대원들을 놀려먹으려 본인들 비행복을 사람인 것처럼 봉지에 씌워 우주선 곳곳에 놓아두기도 했다. 스카이랩 4호 대원들은 이걸 보고 순간 소련의 첩자가 침입했다고 생각해 식겁했다고.
3.4. 스카이랩 4호
1973년 11월 16일 발사됐다. 임무시간은 84일 1시간 16분이며, EVA는 4번, 총 22시간 13분 동안 이루어졌다.
선장은 제럴드 카, 조종사는 윌리엄 포그, 과학 조종사는 에드워드 깁슨이다. 카와 포그는 아폴로 19호 승무원으로 내정되어 있긴 했지만 셋 모두 우주비행은 처음이었다.
3.4.1. 우주 파업 루머
앞선 두 스카이랩 미션의 성공으로 고무된 NASA는 스카이랩 4호에서는 체류 기간을 역대 최장인 84일로 늘리고 수많은 실험 일정을 꽉꽉 채워넣었다. 헌데 문제는 스카이랩 4호의 대원들은 모두 우주비행 경험이 일천한 초짜 우주인들이었다는 것.
이들은 길어진 체류 기간에 비례해 늘어난 수많은 실험기구들을 옮기고 보관하는 것만 해도 버거울 정도였고, 발사 직전에 급조돼 준비와 훈련이 부족한 실험들을 수행하느라 버벅거리고, 사이사이 EVA와 코호테크 혜성 관측, 지구와 태양 관찰도 해야 하는 등의 살인적인 스케쥴에 시달렸다. 위에서 언급한 스카이랩 3호 대원들이 남겨 놓은 우주복들을 치울 시간도 없어 한동안 방치해 놓았을 정도였다.
일정에 쫓겼던 우주인들은 아침 브리핑 시간에 셋이 모두 통신기에 매달려 있기보다는 순번을 정해 한 명만이 남아 있고 나머지 둘은 실험을 계속하기로 했는데, 한번은 피로가 쌓여 있던 이들의 실수로 아무도 통신에 응답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90분 뒤에는 통신이 정상적으로 재개되었으나, 그동안 지상 관제실에서는 우주인들이 파업을 벌인다는 오해가 있었다. 이 일이 와전되면서 우주인들이 의도적으로 통신을 끊고 파업을 했다는 루머로 발전한 것.
다른 설로는 12월 25일에 궤도 사정상 90여 분의 예정된 통신 두절이 있었는데, 하필 다음 날이 사전에 정해진 휴식날이었고, 지상 관제실과 제럴드 카가 주고받은 농담에 대한 오해가 더해져, 우주인들이 하루 동안 통신을 끊고 파업을 벌였다는 루머가 생겨났다는 것이 있다.
어쨌건 우주인들이 피로와 불만이 쌓여 있던 건 사실이었기에, 12월 30일에는 30분에 걸친 일정 조정 회의가 있었고, 이후로는 업무의 강도도 낮아지고, 지상 관제실의 간섭도 덜해졌다. 허나 이들의 업무 효율은 오히려 급상승했고, 임무 종료 당시에는 예정된 것보다 많은 일정을 소화했을 정도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NASA는 우주공간에서의 작업강도와 시간, 장기 우주 체류의 정신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한편 스카이랩 4호의 네 우주인은 이후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에 선발되지 않고,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개시되기 전에 NASA를 떠남으로써 다시는 우주비행을 하지 못했다. 이것이 이들이 최초의 우주 파업을 벌인데 대한 NASA의 보복이라는 설이 있으나 위의 정황에서 알 수 있듯 근거 없는 루머에 불과하다.
3.5. 스카이랩 5호
궤도선 엔진을 이용해 스카이랩 본체의 고도를 높이는 미션이었으나 취소되었다.3.6. 스카이랩 레스큐
스카이랩에서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한 백업계획. 아폴로 사령선을 개조해, 2명이 타고 올라가 최대 5명을 태우고 귀환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물론 실제로 발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령선만 전시하는 다른 스카이랩 사령선과 달리 기계선까지 온전히 남아있다.
4. 이후
우주왕복선 개발 때문에 NASA는 스카이랩에 신경쓸 수 없어 스카이랩의 4번째 미션이자 고도 회복 미션인 스카이랩 5 미션을 취소했고, 대신 셔틀을 완성하면 초도비행 직후 두번째 미션에서 곧바로 스카이랩에 도킹하여 부스터로 고도를 회복하는 복안이 존재했다. 하지만 셔틀의 개발이 많이 지체되며 엔터프라이즈 우주왕복선의 활강 시험은 1977년에야 이뤄졌고, 엔터프라이즈의 테스트 이후로도 4년이 지나서야 셔틀은 데뷔할 수 있었는데(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의 첫 비행이 내열타일 탈락 문제로 3년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정작 스카이랩은 1981년 4월 12일 STS-1 이전인 1979년에 1970년대 후반 태양 흑점 활동의 영향으로 대기와 마찰에 의한 고도 하강이 당초 예상치보다도 훨씬 심해서 이미 대기권에 돌입해 파괴되었고 잔해는 호주 사막지대에 떨어졌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스카이랩이 손실되는 과정에서 NASA 내에서 많이 반발했고, 일부 엔지니어와 우주비행사들이 반발을 표하며 사직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폴로 13호 달 착륙선 조종사 출신이자 엔터프라이즈의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프레드 헤이즈.5. 기타
아직 NASA가 재정적으로 풍족한 시절인데다가 우주에 장기간 거주해야 하다보니 승무원 생활 시설은 역대 최고였다고. ISS보다 더 수준이 높을 정도. 스카이랩에선 냉장고에서 꺼낸 선도 높은 음식을 온열식탁에서 가열해 맛있는 요리를 먹을수 있었는데 ISS는 전투식량 비스무리한거나 까먹고 있고, 스카이랩에선 가끔이나마 진짜 물로 샤워도 할수 있는데 ISS에는 세정제 묻힌 천쪼가리로 몸을 닦는게 다일 정도다.[6]
우주왕복선 연료탱크의 수소 탑재부를 우주정거장으로 개조해 지구-달 L2 지점에 갖다놓자는 스카이랩 II 계획도 있었다. 실현 가능성은 낮았다.
영화 스티브 잡스에서는 넥스트시절의 잡스가 애플 시절부터 있었던 마케팅 책임자 조안나 호프먼에게 애플과 넥스트OS를 NASA와 스카이랩에 비유하며, 애플이 컴퓨터의 새 운영체제를 찾는 과정에서 넥스트OS가 필요해 넥스트의 소유주인 자신도 필요할 거라 말하는 장면에서 벽면에 비치는 자료영상 연출과 함께 언급한다.
헬로 카봇에 한번 나오는데, 스카이랩으로 확실하게 나온다. 그런데 한쪽 태양광 전지판이 멀쩡한 상태로 나온다. 대기권 재돌입으로 인해 추락하는 상태로 나오는데, 방영 이전에 중국의 어떤 우주정거장이 추락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포 올 맨카인드 시즌 2에서 등장하며, 작중 아폴로 계획이 계속 유지되어 유인 달 기지가 있는 세계관인 만큼 태양전지판도 양쪽 다 멀쩡하고 우주왕복선이 달 표면의 제임스타운 기지까지 왕복할 추가연료 공급, 태양풍 관측 임무를 수행 중인 것으로 나온다.
[1] 실제로 앨런 빈은 아폴로 계획의 꽃이라 할 수 있는 NASA 우주인단 3기임에도 동료들에게 밀려 우주로 나갈 임무를 받지 못했다. 테스트 파일럿 스쿨에서 빈을 가르친 적이 있어 면식이 있던 피트 콘래드가 결원 보충을 위해 부르지 않았다면 계속 이 프로그램에 남았을 가능성도 높다.[2] 물론 이런 2군 취급받는 프로젝트에서도 몇몇 제안은 꽤나 심도있게 연구되기도 했다. 실제 주행 테스트까지 마친 이동형 달 연구소 Mobile Lunar Laboratory 가 좋은 예.[3] 새턴V의 3단과 동일한 S-IVB. 자잘한 스펙은 다르다.[4] 여기서 뜯겨나간 3단은 존슨 우주센터에 전시되었다.[5] 리처드 개리엇의 아버지이다.[6] 샤워 시 수량은 1회 3리터 가량 쓰였다. 샤워 후에는 진공 호스로 주변의 커튼과 몸의 물방울을 모두 빨아들이는 성가신 작업이 수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