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3:18:00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1. 개요2. 역사
2.1. 타이틀의 탄생2.2. 일본 프로레슬링 : 역도산2.3. 일본 프로레슬링 : 자이언트 바바2.4. 일본 프로레슬링 : 김일2.5. 전일본 프로레슬링2.6. 통합
3. 결론

1. 개요

NWA에서 인증한 챔피언 벨트 중 하나. 현재는 삼관 헤비급 챔피언과 통합되어 삼관의 일각을 구성하고 있다. 통칭 인터 헤비급 또는 국제 헤비급 왕좌 라고 불린다. 일본 프로레슬링이 소유하고 있는 현존 타이틀 중 가장 오래된 챔피언십이며,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권위가 높다.

2. 역사

2.1. 타이틀의 탄생

1958년 6월에 탄생했다. 탄생 경위가 좀 애매한데, 당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던 루 테즈가 방어전을 계속할 때 루 테즈의 실적을 인정하여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과는 별도로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임명함으로서 시작된 것이다.

1958년 8월 27일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역도산이 루 테즈에게 승리하였는데, 이 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이동하지 않고 대신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이동하는 조치를 했다. 이 시점까지 벨트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귀국 시점에서 역도산이 벨트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사실상 루 테즈의 세계 챔피언으로서의 위상을 실추시키지 않고 역도산에게 권위있는 타이틀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타이틀에 가깝다.[1]

2.2. 일본 프로레슬링 : 역도산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은 일본 프로레슬링 역도산의 상징적인 벨트가 된다. 다만 역도산이 이 타이틀을 얻었을때도 타이틀 벨트는 존재하지 않았고, 일본에 와서 타이틀 벨트를 만들었다. 역도산은 본인의 단체인 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일본의 보물 이라고 부르며 세계적인 강자들을 불러와 타이틀 방어를 계속한다. 역도산은 단 1번도 타이틀을 내주지 않고, 19회 연속으로 방어하였다. 하지만 1963년 12월에 역도산이 급사하면서 이 타이틀은 일시 봉인되었다.

2.3. 일본 프로레슬링 : 자이언트 바바

자이언트 바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바바를 역도산의 후계자로 하여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이어받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일본 프로레슬링은 NWA의 승락을 얻어 봉인을 풀고, NWA 인증, 일본 프로레슬링 커미션 인증으로 타이틀로서 부활하였다. 챔피언 벨트는 역도산이 사용했던 것을 쓰지 않고, 별개의 것을 사용했는데 체격이 큰 자이언트 바바에게는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바바는 보보 브라질, 진 키니스키와 타이틀을 주고 받는다. 대략 1972년 9월에 일본 프로레슬링을 탈퇴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설립할 때까지 타이틀을 유지했다. 그 기간 동안 루 테즈, 진 키니스키, 디스트로이어, 프리츠 폰 에릭, 킬러 칼 콕스, 고릴라 몬순, 브루노 삼마르티노, 타잔 타일러, 프레디 블래시, 압둘라 더 부처, 더 쉬크, 도리 펑크 주니어, 테리 펑크, 쟈니 발렌타인 등의 강호를 물리쳤다. 이 처럼 인터 타이틀이 전 세계적인 프로레슬링 레전드들과 방어전을 치르고 바바가 물리치면서 당시 인터 타이틀의 가치는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보다 높은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도리 펑크 주니어 등이 방일했을 때도 바바가 NWA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NWA 세계 챔피언이 NWA 국제 챔피언인 바바에게 도전하는 형식으로 되었다.

2.4. 일본 프로레슬링 : 김일

바바가 일본 프로레슬링을 떠나며 타이틀을 반납한 다음, 김일과 보보 브라질 사이에서 새로운 챔피언 결정전이 벌어졌다. 보보 브라질이 첫 경기를 이기고 타이틀에 복귀, 2차전에서는 김일이 승리하여 인터내셔널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이 타이틀은 김일이 생전에도 WWA 세계 헤비급 챔피언과 함께[2] 죽을 때까지 자랑하던 타이틀이니,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가 역도산 사후 각각 전일본 프로레슬링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차려 나가며, 경영권과 TV 중계권을 모두 잃은 일본 프로레슬링은 경영 약화로 흥행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단체 활동이 중지되었다.

하지만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 자체는 김일이 소지하고, 영구 입국하여 한국에서 방어전을 실시했다. 1975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했을 때, 1975년 3월 27일 서울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의 도전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안토니오 이노키가 했던 유일한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타이틀전이다. 이후, 김일은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최장기간 타이틀 보유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1980년 김일은 국제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였고, 일본에서도 방어전을 실시했다.

1981년 4월 13일, NWA 본부로부터의 권고 형태로 김일은 타이틀을 반납하게 되었다. 그 사유는 김일이 바바의 추천으로 한국의 발기인으로 NWA에 가입하고 있었으나, NWA 비회원 단체인 국제 프로레슬링에서 NWA 타이틀전을 실시한 것은 문제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타이틀을 반납하는 대신 김일은 바바가 김일에게 탈취하여 봉인하고 있던 '올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십'을 전달받았다.

2.5. 전일본 프로레슬링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은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소유가 되었다. 1981년 4월 30일 토너먼트 형식으로 결정전이 열렸는데, 바바의 부상과 기권으로 도리 펑크 주니어가 챔피언이 되었다. 이후 브루저 브로디가 도리 펑크 주니어에게 타이틀을 획득하여 1년 이상 장기집권한다.

1981년 8월, 푸에르토 리코 산 후안에서 열린 NWA 총회에서 NWA는 동양 점유율 실적과 신용을 평가하여,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인터내셔널 태그 챔피언,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3개의 인터 타이틀을 PWF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반영구적으로 관리와 운영을 일임한다고 결정하였다. 이 때부터 실질적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타이틀이 되었지만, 'NWA 인정'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있었다.

1983년 8월 31일, 점보 츠루타가 브루디에게 승리하고 타이틀을 얻는다. 점보 츠루타는 스탠 핸슨, 브루저 브루디에게 단기간 타이틀을 탈취당하기도 했지만 5년 7개월 동안 타이틀을 유지했다.

2.6. 통합

1989년 4월 18 일, 점보 츠루타가 스턴 한센을 꺾고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PWF 챔피언, UN 챔피언의 삼관왕이 되면서 삼관 헤비급 챔피언십으로 통합되었다. 처음에는 챔피언십은 통합했으나 벨트는 통합하지 않았기에 삼관 챔피언은 벨트를 세 개씩 가지고 다녔으나, 벨트가 너무 낡아 교체하게 되었을 때 기존의 세 벨트는 자이언트 바바의 아내이자 전 전일본 프로레슬링 회장이었던 바바 모토코가 봉인하고 통합된 벨트 하나로 교체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이후로는 특별한 날에 드물게 전통적인 세 벨트가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3. 결론

탄생과정이 애매하긴 하지만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시조인 역도산이 가지고 있었던 타이틀이며, 실질적인 타이틀 가치는 NWA 세계 헤비급 챔피언보다는 떨어지지만 명목상으로는 세계 챔피언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한때는 세계 타이틀보다 더 높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전설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고, NWA에서도 세계(World) 타이틀과 동등한 위치로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이 챔피언 쉽은 반칙과 링 아웃등 현대 프로레슬링 타이틀 쉽에서는 변동을 인정하지 않는 DQ(disqualify)로도 이동하게 되어 있었다. 전설적인 프로레슬러인 브루저 브로디 등의 선수들은 이 규칙을 극찬한 바가 있다.


[1] 릭 플레어는 세계 챔피언 경력이 들쭉날쭉하게 계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릭 플레어 역시 이런 식으로 벨트를 받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WWE에서는 WWE 벨트와 NWA, WCW 정규 벨트만을 인정해서 16회로 규정하고 있지만 AEW에서는 20회까지 인정하고 있다. 최대로 주장되는 건 23회라는 듯. 물론 AEW의 주장 자체는 릭 플레어를 WWE 출신 존 시나의 16회 챔피언 경력보다 높은 곳에 두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릭 플레어 본인은 존 시나의 경력을 자신 이상으로 보고 있다.[2] 이때의 WWA 세계 챔피언쉽은 WWWF(WWE의 전신), NWA, AWA와 4대 프로레슬링 헤비급 챔피언 벨트였다. 역도산이 유일하게 따낸 세계 헤비급 챔피언 쉽이라 일본내에서의 가치는 훨씬 높았으며,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도 도전했지만 따내지 못한 타이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