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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 중화인민공화국 中华人民共和国 People's Republic of China | 일본국 日本国 Japan |
언어별 명칭[1] | ||||
한국어 | 한중일 한일중 | 韓中日(한중일) 韓日中(한일중)[2] | ||
중국어 | Zhōng rì hán(중르한) Zhōng hán rì(중한르) | 中日韩(중일한) 中韩日(중한일)[3] | ||
일본어 | にっちゅうかん(닛츄칸) | 日中韓(일중한) | ||
영어 | CJK[4] |
1. 개요
한중일(韓中日)은 동아시아의 3대 강국들인 대한민국, 중국, 일본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5]그러나 3국 간 국력 차이는 명확한데, 중국은 강대국을 넘어 미국에 도전하는 잠재적인 초강대국 후보이지만 일본은 일반적인 강대국으로 평가받고 있고[6], 한국은 최상위권 지역강국 내지 강대국의 최소 후보로 평가받는다.[7][8] 다만 국력 격차를 떠나 3국 모두 국제사회에서 확실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는 국가들이다.[9]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2023년 기준 미국의 64.5%에 달하며,[10] 무역 규모는 세계 1위로 전 세계 최대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경제와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군사력 3위, 국방비 2위의 군사강국이기도 하며 1960년대에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핵 보유국이다. 또한 한중일 3국 중 유일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외교 역량 측면에서 한·일과 비교가 불가한, 현 시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의 2인자 자리를 수성 중이다.
일본은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미국과 함께 유이하게 1억 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선진국이다. 대외순자산 규모는 세계 1위로, 전 세계 자산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일본국 헌법으로 군비 증강을 크게 제한받음에도 세계 7위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해군력은 한 손에 꼽힌다. 외교적으로는 영미권 국가들과 버금가는 미국의 최중요 동맹국이자, 아시아 유일의 G7 회원국으로서 서방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도-태평양 전략 파트너로 여겨진다. 일본의 문화는 아시아 문화 중 가장 먼저 세계화에 성공했으며, 국가 브랜드 평가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은 본래 20세기 중반까지는 최빈국 겸 약소국이였고 중·일에 비해 국력이 크게 미약하였으나, 매우 빠른 경제 성장을 거듭한 끝에 현재는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대국이 되어 강대국의 최소인 이탈리아 수준으로 국력이 엄청나게 커져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다.[11]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는 실질 경제 지수 지표에서 질적으로 중 · 일을 상회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이끄는 기술강국이자 21세기 이후 세계적인 문화 열풍을 일으키는 문화강국이기도 하다.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이자 핵보유국인 북한과 대치할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열강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현실로 인해 세계 5위의 강군을 유지중이며, 특히 육군의 경우 웬만한 강대국들의 전력을 능가하고 있다.
2. 용어
세 국가 모두 자신의 국가를 맨 첫 단어에 배치하고 나머지 두 국가를 국제관계나 전체적인 인지도에 따라 순서를 정한다. 정치외교적 상황에 따라 순서가 바뀔 때가 있어서 중일관계가 험악해질 때는 중국에서 중일한이라고 하지 않고 중한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어감이 자연스러워서인지[12] 한중관계 악화 여부와는 상관없이 보통 '한중일'이 사용되었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종종 '한일중'으로 언급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13] 다만 명칭은 이리 사용하고 자국 포함 세 나라를 소개할 때 한국-일본-중국 순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영어권은 로마자 순서를 따른 'CJK(중일한)'가 많이 쓰인다. 경제력(국력), 인구, 국토 면적 순과도 일치한다.[14]
2.1. 북한
- 남한: 북한이 중국과 만나면 북중(北中), 일본과 만나면 북일(北日)이라고 한다. 가끔 반북 성향이 강한 사람이나 국방부 등에서 일북관계로 부르기도 하며, 일본보다도 우선 순위가 뒤로 갈 때가 있다.[15]
- 중국: 중국은 북한을 조선이라 부른다. 북한이 남한과 만나면 북남(北南)이나 조한(朝韓), 일본과 만나면 조일(朝日)이라고 한다. 다만 현재 남한의 국력이 북한보다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정부, 언론 등 공식적인 발언이 아닌 경우 남북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일본: 일본은 북한을 북조선(北朝鮮)이라 부른다. 북한이 남한과 만나면 남북(南北), 중국과 만나면 중조(中朝)라고 한다.
- 북한: '조선'이다. 남한과 만나면 북남, 중국과 만나면 조중, 일본과 만나면 조일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조한이라는 말도 쓰고 있다.
3. 한중일 단순 비교
- 볼드체는 3국 중 1위. 자료는 2022년 기준이다.
<colbgcolor=#fff,#444> 항목 | 대한민국 | 중국 | 일본 |
면적 | 10만 432 km² (109위) | 964만 821km² (4위) | 37만 7,975km² (61위) |
인구 | 5,142만 명 (28위) | 14억 2,567만 명 (2위) | 1억 2,536만 명 (11위) |
출산율 | 0.72명 | 1.15명 | 1.27명 |
평균 수명 | 83.43세 (4위) | 78.08세 (45위) | 84.62세 (1위) |
수도 | 서울특별시 | 베이징시 | 도쿄도 |
최대도시 | 상하이시 | ||
공용어 | 한국어 | 표준 중국어 | 일본어 |
화폐 | 대한민국 원 | 중국 위안 (특별인출권) | 일본 엔 (특별인출권) |
명목 GDP | $1조 7,609억 (14위) | $18조 5,326억 (2위) | $4조 1,104억 (4위) |
1인당 GDP | $34,165 (31위) | $13,136 (68위) | $33,138 (34위) |
경제성장률 | 2.6% | 3.0% | 1.1% |
국부 | $10조 1,490억 (11위) | $74조 8,840억 (2위) | $26조 9,310억 (3위) |
수출액 | $6,289억 5,700만 (7위) | $3조 2,984억 600만 (1위) | $6,816억 5,200만 (6위) |
군사력 | 5위 | 3위 (핵무기 보유국) | 7위 |
국방비 | $502억 (10위, GDP 대비 2.8%) | $2,930억 (2위, GDP 대비 1.7%) | $541억 (9위, GDP 대비 1.1%) |
IMF 분류 | 선진국 (OECD 회원국) | 신흥공업국 | 선진국 (OECD 회원국) |
종합 국력 평가 | 지역강국 | 강대국 (상임이사국) | 강대국 |
네이처 인덱스 | 1,593.78 (8위) | 16,753.86 (2위) | 3,185.12 (5위) |
국가 경쟁력 순위 | 20위 | 14위 | 38위 |
국가 브랜드 지수 | 61.09점 (23위) | 57.36점 (33위) | 69.53점 (2위) |
민주주의 지수 | 8.09점 (22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 2.12점 (149위, 권위주의 국가) | 8.40점 (16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
언론자유지수 | 64.87점 (62위, 가시적인 문제) | 23.36점 (172위, 아주 심각한 상황) | 62.12점 (70위, 가시적인 문제) |
부패인식지수[16] | 63점 (32위) | 42점 (76위) | 73점 (16위) |
정치 체제 | 민주공화국 / 대통령제 | 인민공화국 / 민주집중제 | 입헌군주국 / 의원내각제 |
경제 체제 |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
국가원수 | 윤석열 대통령 | 시진핑 주석 | 나루히토 천황[17] |
정부수반 | 리창 국무원 총리 | 기시다 후미오 내각총리대신 |
4. 역사
753년(신라 경덕왕 12년) 1월 1일, 당나라 봉래궁(蓬萊宮)에서는 신년을 축하하는 의식이 거행됐다. 그런데 식장에 참석했던 신라 사신과 일본 사신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다. 누가 더 서열이 높은 자리에 서느냐를 놓고 빚어진 갈등이었다. 애초 당 조정은 서반(西班)의 서열 1위에 토번(吐蕃) 사신, 2위에 일본 사신을, 동반(東班)의 서열 1위에 신라 사신, 2위에 대식국(大食國) 사신을 배치했다. 그런데 일본 사신 대반고마려(大伴古麻呂)는 “신라는 옛날부터 일본에 조공하는 나라인데 일본 사신보다 윗자리에 서게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당 관리들에게 항의했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당 조정의 책임자 오회실(吳懷實)은 부랴부랴 일본 사신과 신라 사신의 자리를 바꿔주었다 한다. 당 조정에서 누가 더 높은 대접을 받느냐를 놓고 신라와 일본 사신이 벌인 이 다툼을 ‘쟁장(爭長) 사건’이라고 부른다.
출처 출처2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떼놓고는 아예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와 중국에서 시작된 유교는 중국을 타고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퍼졌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는 한중일 모두가 활용한다. 이러면서 한중일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특히 중국의 정세가 중요했는데 중국과 땅으로 연결된 한국은 여기에 늘 긴장의 끈을 조이고 풀고 반복했으며 일본은 동해를 끼고있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으나, 일본의 이웃 국가 중 가장 밀접한 곳이 한국이니 결국 어떻게든 일본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출처 출처2
세 나라 모두 왜구 때문에 문제를 많이 겪었는데, 고려는 왜구를 토벌하면서 세력을 키운 무인들이 정변을 일으켜 조선이 됐고 명나라 역시 동남부 해안 지대에서 몸살을 앓아 왜구를 토벌하면서 아예 해금령을 내려 주민들을 내륙으로 옮기고 했다. 일본은 왜구 때문에 툭하면 외교적으로 조선과 명나라에게 털렸기에 막부 차원에서 나중에 왜구를 처리했다.[18] 왜구가 들끓은 시기는 대체로 일본 본토가 전란이나 혼란으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가 안 될 때였고 나중엔 영주들이 돈 벌려고 거의 정규군 수준으로 편성하기도 했다. 에도 막부에 간 뒤론 끊기지만.
한국과 중국은 중국의 통일왕조인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가 공격하여 전쟁을 치른 사례가 있고, 당나라 때는 백제가 망할 때 나당연합군과 왜국의 군이 만날 일도 있었다. 굳이 중국이 아니더라도 한반도는 북방의 여진족이나 거란, 몽골 때문에 중국 대륙과 늘 연결됐다. 조선은 북방 문제를 상당히 중시했으며 평안도나 함경도에 정예 병력이 주둔했다.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하에 놓였을 땐 여몽연합군이 결성되어 일본을 침략하기도 했다. 일본 유사 이래로 외국군이 본국에 쳐들어온 건 처음이라 긴장했으나 때마침 나타난 태풍으로 몽골의 점령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참고로 여몽연합군 철수 이후 일본에서는 이때 불어닥친 태풍에 하나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게 바로 신푸.
시간이 흘러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이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며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일본군과 거하게 전쟁을 벌인다. 끝내 일본은 막부를 갈아치운 뒤 전쟁 종결 의사를 표한다. 조선은 이를 받아들이고 명은 청의 침공과 각지의 반란 때문에 국력이 쇠하며 멸망한다.
극단적인 유교 신봉자로서, 조선의 엘리트층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상업 발달에 훨씬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을 대상으로 한 조공 무역이나 일본, 여진을 대상으로 한 무역 이외에는 대외 교역을 통제해 나라를 진정으로 고립시켰다. '은둔의 왕국'이라는 조선에 대한 전형적인 묘사는 이 시기에 합당하게 들어맞는다. (중략) 조선의 인구는 1650년의 1000만 명에서 1810년 1400만 명으로 늘어났지만 이 증가율은 중국보다 훨씬 낮았고 생활수준 또한 별로 바뀌지 않은 듯 하다. 19세기 조선의 농업 생산량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최소한 30퍼센트 이상 낮았다. (중략) 최대 도시 한양은 근세 인구 20만 명 크기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에도나 북경보다 훨씬 작았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350~1750 세계 제국과 대양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350~1750 세계 제국과 대양
19세기에 이르러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식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국력을 잃어가던 조선을 공격하고 패권 유지에 급급하던 청도 뒤늦게 제국주의 물결에 동참하려고 조선에 손을 들이밀다가 둘이 1894년에 청일전쟁을 일으킨다.[19] 최종적으로 일본이 전쟁에 이기면서 청은 조선에서 추방되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고, 1897년 고종이 제국을 선포하면서 조선은 대한제국이 된다.
그 이후 1904년 러시아 제국이 일본과 대한제국 침략을 놓고 경쟁했으나 일본이 러일전쟁마저도 승리하면서[20] 결국 대한제국은 멸망하여 일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청나라도 안에서 온갖 소용돌이로 어지러워 1912년에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되었으나 1920년대에는 군벌들의 난립으로 내전 상태가 된다. 그 사이 일본은 식민지로 전락한 한반도를 기점으로 삼아 차근차근 국력을 키워나갔고, 마침 1930년대가 되자 누더기가 된 중국을 공격해 만주를 점령하는데 성공, 그 직후 만주국을 세운다. 군벌간의 반장전쟁에서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으로 갈려서 싸우고 있던 중국은 국공합작을 이루며 침략자 일본과 싸웠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중일전쟁에서 승리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세력은 일본이 포함된 추축국들에 대한 전범 재판과 처벌, 이들의 소유하던 식민지들을 깔끔히 해산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때 한반도와 타이완을 비롯한 일본의 동북아 식민지들이 해방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연합국 측은 박차를 가하며 일본의 국가 체제 자체마저 뒤바꾸려는 시도를 가행하나 때마침 소련이 한반도까지 남하하면서 한반도의 북부는 공산정권이 세워지고 남부에는 미군이 들어와 대한민국이 생긴다. 제국주의의 물결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갈등인 냉전이 자리잡은 순간이었다.
또한 1949년에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다시금 다투게 되었고, 그 국공내전의 결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니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완으로 쫓겨났다. 그 후 한중일에서 한은 이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말, 중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간혹 대만(중화민국)을 중으로 하여 한중일을 표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1970년대 이후로 이런 용례는 잘 보이지 않는다.
5. 국력
역사적으로 근대 이전 동아시아의 패권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잡고 있던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영토의 면적만 봐도 중국이 한반도나 일본 열도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인구도 압도적으로 많았고, 문화나 과학 기술 역시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더 뛰어났다.[21] 따라서 중세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이 중국에서 여러가지 문물과 기술, 제도 등을 받아들였다.이와 같았던 관계는 19세기 중엽으로 넘어가면서 역전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하였지만, 반면 조선은 유교 사상을 필두로 한 쇄국 정책으로 문호 교류를 거부하며 나라의 문을 굳게 걸어잠갔고[22], 청나라는 두 차례의 아편전쟁으로 대영제국에게 박살나며 동아시아의 패권은 급격히 일본에게 넘어간다. 일본은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을 상대로 승리하여 동아시아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대만, 한반도, 만주 등을 침략하며 제국주의 팽창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며 연합국의 공세를 버티지 못한 일본은 결국 패망한다. 이 때문에 일본의 국력은 한없이 쇠할 것처럼 보였으나, 때마침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 덕에 일본은 각종 전시 물자 수출로 큰 경제적 이득을 보았다. 이때 얻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경제 재건에 성공한 일본은 1990년대에 거품이 터지기 직전까지 동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쥐었는데, 소위 '거품경제'의 극치를 달렸던 당시 일본의 경제력은 도쿄 땅을 팔면 미국 전체를 구매할 정도의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거품경제가 막을 내리고, 이와 동시에 2차 산업부문에서 말도 안 되게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중국이 급부상하기 시작하며 동아시아의 패권은 점점 중국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으로 인해 국력이 점점 쇠약해졌고, 반면 중국은 급격히 성장하며 일본의 입지를 위협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국의 GDP가 일본을 넘어서며 동아시아의 패권은 완전히 중국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쟁 직후 최빈국이였던 한국은 군부독재의 연이은 경제 정책 성공과 민주화 성공 이후 시장 경제가 유연해짐에 따라 다양한 산업 분야가 발달하였고 지리적 이점을 살려 일본 - 중국 간 양자무역의 혜택을 톡톡히 보며 엄청난 부를 쌓았던 덕택에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 다음가는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2024년 현재, 한중일은 세계적으로 매우 강대한 국력을 지닌 국가들이다. 경제력 부문에서 중국, 일본, 한국의 명목상 GDP 순위는 IMF, UN 기준 각각 2위, 4위, 12위이다. 이처럼 한중일의 종합적인 국력은 최소한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며, 특히 중국의 국력은 명실상부 1인자인 미국 다음의 절대적 2위로 여겨진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차세대 초강대국 후보 국가로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종종 거론된다. 일본 역시 지금은 과거에 비해 힘이 다소 빠졌지만 거품 경제 당시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과시한 바 있다. 한국은 상대성의 효과 탓에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에 비하면 국력이 약하게 느껴지지만 전세계적으로 보았을 때는 10위권[23] 내의 국력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절대적인 기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2022년 미국 U.S. 뉴스 & 월드 리포트는 한국의 국력을 세계 6위로 평가하였는데, 이는 현재 일본과 프랑스보다 높은 순위이다. 오늘날의 한국은 뛰어난 군사력과 준수한 경제력, 진보된 과학기술, K-POP 등 한류로 대표되는 큰 문화력을 갖춘 순수 국력으로는 강대국의 최소 급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특성상 주변에 엄청난 강대국들이 밀집되어 있어 아직까지는 '지역강국'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24] 사실상 주위에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세계구급 강대국들이 포진한 이상 객관적인 지표가 충족되더라도 단기간에 지역강국이란 위상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수순이다.[25]
6. 현재
인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나 역사와 정치, 영토 문제로 서로 증오가 많으며 통상의 문제도 많다. 특히 한중일은 산업적으로 다들 수출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중국이나 일본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인구를 가져서 내수가 상당히 크지만 한국의 내수는 세계 10위 정도로 국가별 명목 GDP 순위 규모에 비해선 규모가 조금 작다.[26][27] 아시아 내에서만 따지면 한국은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4위 수준. 중국의 내수는 2020년 기준 일본과 한국의 그것을 합친 것의 2배 수준이다. 일본은 중국에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를 내준 이후에도 장시간 내수 세계 2위를 유지하다가 아베노믹스 이후 엔화 약세로 인하여 중국에게 추월당했다.2020년 9월 기준 재한 외국인 1위는 중국인이며 일본인은 14위이다.
재중 외국인은 2010년 말 기준으로 60만 정도인데 1위는 12만의 한국인, 2위는 7만의 미국인, 3위는 6만 6천의 일본인이다. 출처
재일 외국인 1위는 중국인이다. 1990년만 해도 20만도 안 됐지만 지금은 70만에 이른다. 2위는 베트남인, 3위는 한국인이다.
유니코드에서 한자 인코딩 문제로 한중일 통합 한자를 지정할 때는 'CJK'로 호칭했다. China, Japan, Korea의 앞글자를 ABC순으로 나열한 것.
2023년 기준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권은 북미, 유럽과 함께 세계 3대 경제권에 속하며, 경제력은 유럽연합을 넘어섰고 미국과 맞먹는다. 그러나 유럽연합같은 블록경제를 형성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1. 한일중 정상회의
▲ 2013년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제 5회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가운데 배석된 인물이 당시 문체부 장관 유진룡.
위에서 주목할 게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읽자면 중국식 표기는 '중한일 문화부장 회의', 일본식 표기는 '일중한 문화대신 포럼'이다. 특이하게 중국에서 중한일로 표기했다. 다만 해당 회의의 중국측 정식 명칭 순서는 '중일한'이다. '중한일'로 바꿔서 표기한 정확한 이유는 추측할 수 밖에 없지만 의장국이였던 한국을 배려했거나 2013년 당시 센카쿠 열도 영토분쟁으로 인해 중국내 반일 감정이 매우 높았던 것에 기인할 수 있다.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사진과 같이 3국의 표기를 몽땅 표기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열린 자리라 세로드립은 한중일(첫 글자는 나 먼저 원리가 적용됐다.) 두번째 글자와 마지막 글자의 순서를 통해, 한중일 상호 간 미묘한(...)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일중 정상회의 문서 참고하십시오.
6.2. 한중일 경쟁
한중일 3국이 아시아와 세계 곳곳에 이권을 놓고 서로 경제, 문화, 군사 등을 발전시키려 경쟁하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한중일 경쟁 문서 참고하십시오.
6.3.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
한중일 협력을 위한 3국 정부 직속 국제기구 TCS도 존재한다.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해 대한민국 서울에 2011년 설립되었다.자세한 내용은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7. 기타
- 한중일 3국의 수도를 각각 지도에서 찾아보면 베이징-서울-도쿄인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위도가 낮아지는 하향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영문 앞자를 모아 베세토(Beijing-Seoul-Tokyo)라고 부르기도 한다.
- 상술한 베세토라는 명칭은 지금은 보기 드물지만, 당시에 만들어진 문화교류 형태의 베세토 페스티벌같은 것들로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는 언론에서도 잘 거론되지도 않는 이 단어가 만들어진 90년대 초중반에는, 비슷한 시기에 유행해서 아직도 간간히 볼 수 있는 BRICS[28]처럼
적어도 동북아권에서는핫한 키워드였다. 내부적으로는 80년대 초호황이 주춤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일본, 곧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던 한국, 그리고 개혁개방이 자리잡고 본격적인 세계의 공장이 되어가는 중국이 서로 이해관계가 맞았고, 국제적으로는 동구권이 무너져 새로운 기회와 위기의 시기였다. 하지만 그 희망은 20년째 유망주인 브릭스와 다르게 오래 가지 못했다. 일본은 잠시 주춤할 줄 알았더니 무려 20년이나 헤매고,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북아의 평화와 화합으로 세계질서를 이끌자는 소수의견에서는 이 단어를 여전히 자주 이용한다. 또 베세토협력 30주년을 맞아 다시금 협력/유대관계를 추진해보려는 움직임이 있다. - 컴퓨터 IME 개발 시 같이 묶이는 경우가 많다. 로마자 문화권과는 문자 체계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IME 개발 시 따로 신경 써줘야할 부분들이 있기 때문.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윈도우 10 20H1에서 IME 개선을 같이 받았다. #
- 2020년 12월 10일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시대에 한중일의 경제 협력은 정경분리[29]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 iOS 번역 앱에서 최초 지원하는 11개 언어에 한국어, 표준 중국어, 일본어가 나란히 포함되었다. 한중일 3국 언어를 제외한 아시아 언어는 아랍어가 유일하며, 나머지 7개 언어[30]는 전부 유럽 언어다.
- 아시아권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적 있는 나라는 한중일을 제외하면 없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3개 국가는 모두 하계/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경험이 있는 국가가 되었다.
- 한중일 모든 나라가 공휴일이 있는 달은 1월, 5월, 10월이며 4년에 한 번은 4월도 여기에 포함된다. 다른 달은 음력의 상황에 따라서 사라졌다 생겼다 하거나 한 나라 이상은 공휴일이 없다.[31]
- 현재 한중일 모두 판다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는 1,000마리가 넘는 판다가 거주 중이고 일본에는 9마리, 한국에는 4마리가 거주 중이다.
- 셋 다 세계적인 강국이자 "아시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명한 나라들이기에 아시아의 빅3로 함께 불린다.
- 서로 그 어떤 나라보다 싫어하지만 상대국의 문화만큼은 매우 좋아하는 기묘한 관계다. 한중일 관계요약1, 한중일 관계요약2
8. 관련 문서
- 동아시아
- 안중근: 저서 동양평화론을 통해 한중일 3국의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2]
- 이웃나라
-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
- 한중일 FTA
- RCEP
- IPEF
- EAFF 동아시안컵: 한중일에게 본선 직행권이 부여되는 축구 대회
- 냉전: 다름이 아니라 냉전시절의 미소관계와 유사하다.
- 신냉전: 신냉전과 관련이 깊다. 문서 참조.
- 세계의 화약고
- 아시안 게임: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이래로 한중일이 종합순위 1, 2, 3위를 쭉 나눠먹고 있다.
- 한자문화권
- 대한민국/외교
- 중국/외교
- 일본/외교
- 대한민국/문화
- 중국/문화
- 일본/문화
- 대한민국/경제
- 중국/경제
- 일본/경제
- 영프독: 유럽의 3대 강국.[33]
- 독일-러시아-폴란드 관계: 사실 신냉전 시대의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영프독보다 이쪽이 유럽판 한중일에 더 가깝다.
- 한중일 정상회의
- 한중일 경쟁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
- 삼국통일전쟁
- 임진왜란
- 청일전쟁
- 중일전쟁
- 한국인 / 중국인 / 일본인
- 한국어 / 중국어 / 일본어
[1] 표기 방식이 한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전부 다 맨 뒤에 있는데, 이는 나 먼저 원리에 의해 자국이 맨 앞으로 오고 획순으로 정렬 시 韓(韩)이 맨 뒤로 오기 때문이다.[2] 한일중 정상회의의 경우 개최 순서에 따라 한일중이라 한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는 해당 정상회의가 아니라도 외교부에서 한일중으로 언급한 사례가 있다.#[3] 중국은 반일감정 또는 기타 이유 등으로 인해, 이렇게 한국을 자국인 중국 다음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일본에 비해 제법 있는 편이다. 하술된 제5회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공식적으로 이렇게 표기했다.[4] 다만 이쪽은 주로 나라를 지칭하기보단 언어를 지칭하는 데에 쓰인다.[5] 사실 동아시아 국가라고 해봐야 이 세 나라에 북한, 몽골, 대만 뿐이고 일국양제를 유지중인 홍콩, 마카오 정도가 끝이긴 하다. 북한은 소련 붕괴 이후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비전시 파탄국가로 전락해 현재는 핵무기를 제외하면 국력을 논할 의미가 없으며, 몽골은 국토가 넓은 편이지만 인구가 300만 정도에 불과하기에 국력이 약소하여 아시아 내에서 가장 존재감이 작다. 대만은 경제면에서 질적으로는 한국 · 일본에 못지 않은 선진국이긴 하나 중국과 압도적인 국력 차이가 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주권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 한국하고도 국력 차이가 커 같이 묶이는 경우는 드물다.[6] 경제력만 보면 세계 4위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추축국이라는 오명 탓에 국제적인 발언권이 매우 밀린다. 하다 못해 같은 추축국 출신인 독일조차 유럽연합의 선두이다.[7] 순수한 국력 자체는 오세아니아의 패권국 호주도 앞서고 남미의 패권국 브라질과 강대국의 최소로 분류되는 이탈리아와 비교될 정도이다. 다만 지중해 일대에서 일정 부분 패권을 행사하는 이탈리아와 달리 한국은 여러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인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한 환경에 놓여있어 입지가 이탈리아보다는 폴란드와 비슷한 입장이라 보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력의 절대치 자체가 높기에 중국, 일본이라도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볼지언정 절대 무시를 못하므로 폴란드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근데 2020년대 이후 유럽에서도 지정학적, 외교적으로 적대적이었던 러시아가 폭주하기 시작하고 우크라이나가 두들겨 맞는 와중에 서유럽의 전통적 강국들의 군축으로 서유럽권중 유일하게 군비 증강을 해온 폴란드의 지위가 주목받고는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를 봐도 그렇지만 무시할만한 국력이라면 두 국가로 충분하다고 여겨서 한국을 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지정학적 환경 덕에 냉전 구도 속에서 단기간에 초고도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2024년 초 각 국가들의 군사력을 최소 60가지의 분야로 평가하는 Global Firepower에서 한국은 전세계 5위를 기록 중이다. 위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인도가 있으며 밑에는 영국, 일본, 터키, 파키스탄, 그리고 이탈리아가 있다.[8] 게다가 기술과 GNI, GDP로는 삼성, 현대, 기아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과 우수한 무기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문화적으로는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K-POP,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가 있으며, 지리적으로 미국에게 유리한 점으로는 일본에게 밀리기는 하나 중국, 러시아, 무엇보다 북한을 막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절대 작지 않다.[9] 한중일의 국력 격차는 중국이 한국과 일본 둘을 합쳐도 압도한다는 점에서 서유럽의 3대 강국인 영프독 세 국가의 국력이 비슷하다고 평가받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영프독과 이탈리아, 스페인 사이의 국력 격차도 중국과 일본, 한국에 비하면 매우 작은 편이고.[10] 2021년에는 77.3%까지 따라잡았으나 이후 다시 격차가 벌어졌다.[11] 국제적으로 한국이 지역강국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은 2009~2010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80년대 후반부터 지역강국에 진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12] 아무래도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도 있고, '한일중'이라고 얘기하면 중학교 이름을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13] '북미관계'도 '미북관계', '북러관계'도 '러북관계'라고 표기하기도 핬다. KBS 뉴스에선 신임 보도본부에서 위 표기대로 변경하라는 지침이 내려오기도 했다. 참고로 두 표현 모두 윤석열 이전부터 조선일보 등 보수성향 언론에서 쓰던 표현이다.[14] 여기에 한자나 유교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동아시아권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베트남을 추가해서 CJKV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인구나 국토크기 순서는 무너지지만 신기하게 로마자 순서와 경제규모, 국력 순서는 그대로 일치한다. 물론 베트남과 한중일은 국력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함께 거론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유니코드에서는 CJVK를 묶어 부르는 경우가 많다.[15] 이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 중에서 북한을 한국의 영토를 강제 점거한 무장단체가 아닌 순수한 '적국'으로 판단할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16] 점수가 높을수록 청렴한 사회로 인식됨.[17] 현행 일본국 헌법에는 천황의 국가원수 여부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만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사실상 국가원수로 간주되며 의전서열에서 볼 수 있듯 일본국 정부도 천황을 국가원수로 대우한다.[18] 자국민이라고 봐줬을 것 같지만 막부 입장에선 자기네 직속도 아니라 이득볼 것도 없는데 지방 세력들 배를 불려주는데다 외교적 마찰로 외국의 침략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이나 조선만큼 절박하진 않더라도 당연히 단속해야 할 집단이었다.[19]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청나라에 부정적이었던 터라 지금 들으면 생소하겠지만 일청전쟁이라고 했다. 수구파, 개화파 양쪽 모두 청나라를 싫어했는데 수구파는 수구파대로 만주족의 오랑캐 정권이니 정통 중국이 아니라고 싫어했고 개화파는 개화파대로 중국 자체가 구세력의 사상인 중화주의의 모체이니만큼 당연히 싫어했다.[20] 다만 러일전쟁은 일본이 완전히 이긴 전쟁이 아니다. 사실상 비긴 전쟁이다. 또한 영국이 러일전쟁때 엄청나게 지원해 준것도 있었다.[21] 대표적인 예로 당나라 때의 중국 인구수는 전 세계 인구의 무려 절반 이상을 차지했었다.[22] 잘 알다시피 이 같은 쇄국정책은 흥선대원군때 절정에 달했다.[23] 대략적으로 9~11위. 이탈리아, 브라질과 동렬이고 호주보다 강하다.[24] 한국 대비 특출나게 유리한 면도 없는 브라질이 지정학적 특성 덕분에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것과는 대조적.[25] 이는 국토 규모와 국가 체급이 주변 국가들에 비해 작다보니, 국가의 최대 잠재력 자체가 주변국들에 비해 낮은 것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나마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일본도 질적인 면(1인당 GDP)에서 비슷할지는 몰라도 군사력을 제외한 양적인 면(GDP 또는 인구)에서는 한국의 2.45배 규모에 육박한다.[26] 한국의 국가별 인구 순위는 5,182만으로 세계 27위다. 사실 중국(1위), 일본(11위)의 규모가 워낙 커서 그렇지 이는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프랑스(21위), 영국(22위), 이탈리아(23위)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27] 이전에는 단순하게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 한국 사이의 순위 격차가 적은터라 비슷한 체급이라고 작성되었으나, 프랑스와 영국이 6,700만명 정도의 인구로 한국에 비해 1,400만명 가량 많은 규모를 자랑하며 이탈리아 역시 한국보다 1천만 명 이상의 인구를 지니고 있다. 완전히 비슷한 체급은 아니라는 뜻이다.[28] 당시엔 남아공이 없고 BRICs였다.[29] 말 그대로 국가 간의 감정은 정치판 선에서 해결하고, 서로 경제제재 걸지 말라는 이야기다.[30]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31] 2월과 9월은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3월과 8월은 중국에, 6월은 일본에, 7월은 한국에, 11월은 한국과 중국에, 12월은 중국과 일본에 공휴일이 없다.[32] 다만 안중근의 바람과 반대로 현실의 한중일은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평화와 협력이 아닌 경쟁과 갈등을 통해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하였다.[33] 다만 이 나라들은 모두 같은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기 때문에 한중일관계와 1대1로 비교하디는 어려우며, 아래의 독일, 러시아, 폴란드의 관계가 한중일관계와 훨씬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