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6 13:58:02

황혜인

1. 개요2. 생애
2.1. 유서 내용2.2. 당시 상황
2.2.1. 4월 16일 분신 상황2.2.2. 4월 17일 상황2.2.3. 4월 18일 상황2.2.4. 이후 진행 상황
3. 기타
3.1. 추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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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황혜인열사.jpg

대한민국의 학생 운동가.

2. 생애

1976년 강원도 고성군(現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서 1남 1녀 중 장녀이자 맏이로 태어나 1995년 속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동아리 행소문학회에 가입하여 1996년 동아리 연합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다 1996년 4월 16일 오후 12시 30분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 캠퍼스 학생회관 3층에서 노동해방을 염원하며 분신, 사망하였다.

2.1. 유서 내용


(본 글은 열사의 다이어리에서 나온 것을 발췌한 것이다.)
내 몸이 타가고 있다. 죽음이 눈 앞에 보인다.
관념론자들은 날 정당치 못한 행동이라 하겠지.
유물론자들은 날 비겁하다 하겠지.
하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대중의 의식화 조직화를 위해 이 길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론자들이 얘기하는 지옥에 가도 나는 상관없다.
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현 정권에 대한, 대중의 의식의 변함이 >있길 바랄 뿐이다.
난 노동해방을 보고 죽기를 바랬다.
그러나.. 나의 역량은 날 이 길로 선택하게 했다.
뜨겁다 괴롭다.
부모님의 얼굴 동지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간다.
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노동해방을 위해
이 세상의 변역을 위해 투쟁하기만을
난 지금 바랄 뿐이다...
이제... 그 실천을 동지들이 해주길..

결의를 해야할 것 같다.
더 이상 개념없이 산다라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자신이 커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젠
노동해방 노동자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투쟁하세요

2.2. 당시 상황

2.2.1. 4월 16일 분신 상황

12시 50분경 학생회관 3층 여학생 화장실에서 폭발음과 함께 화재 발생. 총학생회 문화국장과 수위 아저씨가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한 후 겟세마네 한 학우가 고인의 유품(가방)을 들고 나옴. 화재 진압 후 학행회 간부와 학교측 관계자들이 모여 들고 사망 사실을 일차 확인함. 경찰서와 소방서에 바로 신고함.
13시 10분경 가방안의 신분증을 통해 물리학과 95학번 황혜인양임을 확인. 다이어리 안에서 분신을 결의하면서 남긴 것으로 보이는 글이 발견되고 신나를 산 영수증 발견. 시신 옆에 신나를 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통이 두 개 발견. 시신이 물리학과 95학번 황혜인임을 재확인.
13시 15분경 경찰과 의료진이 도착해 현장조사 및 시신 검사
13시 20분경 유품은 당일 수위아저씨에게 인도된 후 학생과로 옮겨짐. 학생과 장학주임이 유품을 확인한 후 유서 발견, 총장에게 곧바로 팩스를 보냄. 그와 동시에 유품을 확인한 수 학생들에게 고인의 글을 복사해줌.
14시 30분경 비상 확대 운영위원회를 소집하여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이후 일정 논의
15시경 학우 몇 명이 학생과로 방문했을 때 유품이 파출소로 옮겨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파출소로 감. 파출소에 가서 고인의 유품을 확인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계속 묵살당함. 이 과정에서 파출소 소장이 고인의 유품을 줄 수는 없으나 확인 과정과 함께 유서 사본을 인도하겠다는 말과 함께 고인의 유서 사본을 학생들에게 전달함.
15시 30분경 긴급히 학내 집회 진행. 600-700명 참가.
16시경 학우들이 학교로 되돌아 와서 학우들에게 고인의 유서를 공개함.
16시경 시신을 아주대 병원으로 이송, 학생 200여명 1차 출발. 계속해서 하갠 선전물 부착과 선전전을 통해 학우들을 모으고 아주대 병원으로 집결시킴.
17시경 1차 유인물 학내 배포, 아주대 병원 이송 후 영안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응급실에 대기.
19시경 아주대 병원에 부모님 도착.
24시경 아버님의 요청으로 검안 실시. 검안 결과 황혜인으로 판명됨. 이후 계속 병원측에 황혜인의 시신이 들어갈 수 있는 냉동실을 요구했으나 계속 묵살됨.

2.2.2. 4월 17일 상황

02시경 학우들의 계속적인 요구에 사라졌던 병원측의 총무과 사람이 나타나 협상 다시 시작. 병원측은 시신이 들어갈 수 있는 냉동실이 없다고 얘기함. 새벽에 다른 분의 시신이 나가게 되면 시신이 들어갈 수 있는 냉동실이 확보가 되고, 그 곳에 황혜인의 시신을 보관하겠다는 확답을 받음.
03시경 학생측 다시 중앙운영위를 소집함. 4월 17일에 있을 모든 일정들과 장례에 관한 대책을 협의함.
04시경 부모님과의 계속적인 대화 속에서 부모님께서 일단은 장례를 3일장으로 하고 이후의 모든 일정은 학생측과의 협의 속에서 진행하겠다는 확답을 얻음.
06시경 다른 분의 시신이 나가게 되어 황혜인 열사의 시신이 들어갈 수 있는 냉동실이 있다는 병원측의 얘기를 듣고 중앙운영위원들이 황혜인의 시신을 냉동관에 보관함.
14시 열사정신 계승을 위한 청년 심산 결의대회를 성균관대학교 율전캠퍼스에서 치름.

16시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아주대 병원으로 이동, 분향을 마치고
부모님과 중앙운영위의 장례일정 논의가 시작됨. 학생들은 장례식 일정을 미루기를 부탁드렸지만 부모님께서 3일장으로 꼭 내일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시어 4월 18일 장례를 치르기로 함.

2.2.3. 4월 18일 상황

12시 30분경 아주대병원에서 장례발인 후 병원에서 아주대학교 정문까지 행진. 율전에서는 고 황혜인 열사 장례식 준비를 위한 사전 집회 시작.
13시 30분경 운구. 아주대학교 정문에서 율전으로 출발
14시 10분경 율전파출소 앞 운구 도착. 경호대를 중심으로 운구를 맞이하러 나감.
15시 민주십자로에 운구 도착. 자리 정렬 후 "민주 학생 고 황혜인 열사 영결식"을 시작함.
17시 운구를 선두로 교내와 정문 앞 도로까지 행렬을 지어 행진.
18시 운구와 물리학과를 중심으로 하는 학우들 강원 고성으로 출발함.
18시 30분경 운구를 보낸 이후 경찰들의 폭력적 탄앞에 맞서 학교 앞에서 강력한 투쟁을 펼침.
21시 민주십자로에서 정리집회 후 해산함.

2.2.4. 이후 진행 상황

황혜인 열사 49제때 황혜인 희망의 꽃을 기리는 열림터 만들고
1주기부터 추모제를 실시했다.

3. 기타

3.1. 추모시

1996년 4월 16일을 죽음이라 부르자
행소 - 문학회
1996년 4월 16일 낮 12시 30분
그 한낮을 죽음이라 부르자.
머리카락이 타 들어가고
불기운이 목구멍으로 넘나들던
온 몸에 불이 붙던 그 날
처절한 그 한 낮을
죽음이라 부르자.
1996년 4월 16일 오후 4시
오후 4시를 죽음이라 부르자.
놀란 가슴으로 달려온 학우들
믿기지 않는다며
망연하던 학우들
빈 영안실이 없다며
그 앞을 가로막던
저들의 영안실 철문을
죽음이라 부르자.
1996년 4월 16일 저녁 7시 30분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다며
"혜인아, 엄마랑 같이가자."
몸부림치는 어머님의 눈물을
감추어 버린 TV, 신문들을
죽음이라 부르자.
1996년 4월 16일 밤 12시
영안실에도 들어가지 못한 밤 12시
믿지 못하겠다며
사실이 아닐 거라며
울부짖던 어머님의 몸부림 위로
뿌려진 찬 비를 죽음이라
죽음이라 부르자.
아, 그리하여
1996년 4월 16일을
죽음이라 부르자.
마지막까지 되뇌이던
정권타도, 자본가 타도를 위해
노동해방의 빛나는 불꽃으로
1996년 4월 16일 그 날을
자본가 계급의 죽음이라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