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25:50

팔현왕(판관 포청천)

황숙에서 넘어옴
八賢王

1. 개요2. 본명에 관하여3. 상세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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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 등장하는 인물로 송 인종의 8번째 숙부. 그래서 황숙으로 호칭된다.

2. 본명에 관하여

극중에서는 팔현왕 = 조덕방이라 설정되어 있으나, 역사 속의 진강혜왕 조덕방은 태조 조광윤의 넷째 아들이므로, 태종의 여덟 번째 아들(인종의 삼촌)이라는 극중 설정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실제 조덕방은 981년에 사망하였고 포청천의 무대인 인종 시대는 그보다 40년 후이므로 시기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진짜 태종의 여덟 번째 아들이며 인종의 8황숙에 해당하는 인물은 주공숙왕 조원엄(趙元儼)으로 실제로 팔현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실존 인물이 뻔히 있는데 왜 포청천 드라마에선 조덕방으로 굳어져 버렸는지 미스터리…….

조덕방조원엄의 혼동은 기실 중국소설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역사 속 조덕방과 조원엄은 같은 '팔현왕'으로 불렸어도 서로 다른 인물들이었으나, 양가장연의를 비롯한 여러 중국소설에서 두 인물의 행적이 서로 합쳐지고 각색되면서 한 인물인 것처럼 굳어진 것이 떠도는 이야기들을 집대성한 칠협오의에도 계승된 셈.

3. 상세

황숙의 지위에 있어서 왕의 작위를 받았고 현명한 조언으로 황제를 도와 팔현왕이라고 한다. 극중에서는 '팔왕야'라고 불린다. 황제와는 숙부조카 사이이지만 이묘환태자 에피소드에서 유비가 죽이려던 이비의 아들을 팔현왕이 자신의 아들로 위장해 키웠다는 설정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황제도 그가 자신의 친아버지인줄 알고 있었으며 후에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유비의 위협을 피해 키워준 은혜가 있다. 그런만큼 그의 요청은 황제도 거절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황제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겼던 부왕 시기에는 팔현왕이 황궁에 입궐하면 황제가 직접 마중나갈 정도로 그 정성이 대단하며 황제가 "부왕... 어째서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는 겁니까?" 라고 묻자 팔현왕은 "신이 비록 황상의 아비이기는 하나, 이는 지극히 사사로운 일이며 신의 사사로운 행동으로 인해 황상의 공적인 일에 방해가 될까 그랬습니다."라고 답할 정도로 황제의 아버지이기는 하나, 자신이 황제의 신하임을 분명히 정하였고, 이는 언제나 황제를 걱정하는 팔현왕의 마음이다.

왕승상과 더불어 포청천을 이해해주고 쉴드를 쳐주는 역할을 맡는다. 왕승상이 신하중에서 친포청천계 인사를 대표한다면 팔현왕은 황족 중에서 친포청천계 인사를 대표한다. 왕승상과는 달리 비교적 젊고 과단성과 행동력이 있는데다 황숙이라는 지위까지 가지고 있어 포청천이 곤경에 처했을 때 황숙의 지위와 왕의 권한을 이용하여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특히 방길이 억지에 가까운 견제가 극에 달할 때 다운시키는 역할은 이 사람이 맡고 있으며, 황제가 포청천을 의심하여 견제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황제를 설득하고 황제의 과잉대응을 막는 역할을 한다. 보통 방태사 정도는 이 사람이 나서면 바로 정지하는 경우가 많고, 황제조차도 이 사람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뜻을 접거나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포청천에게 있어서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역할. 물론 당연하지만 황제가 진짜로 개빡치면 이 사람도 소용이 없다. 다만 08년 타룡포(이묘환태자 리메이크)편에 따르면 종친의 수장이라 황족들은 전부 팔왕야를 따를 것이고 어사금간까지 있으니 유태후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2011 포청천에 의하면 황제 말고도 친아들 조상이 있었고[1] 선황의 양자로 들이는 것을 이 아들이 아닌 자신의 아들로 위장한 진짜 황태자로 했다는 것, 여기에 앙심을 품은 팔현왕의 친아들이 역적모의를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2]

신판에 나온 설정이지만 선황 태종이 하사한 어사금간[3]을 보유하고 있다.[4] 태종의 유언에 의하여 금간은 송태종 자신의 현신으로, 이를 아들인 팔현왕에게 맡겨서 황제가 옳지 않은 결정을 내릴 경우, 금간을 들고 와서 결정을 뒤집는 명을 내리면 그것은 태종황제가 직접 명을 내린 것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태종의 손자인 황제도 어쩔 수 없다.[5] 그래서 금간에 의거한 명령이라면 황제의 명[6]도 바꿀수 있는데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자식의 처형을 위해[7] 이것을 쓰는 장면은 명장면이다.

신판에서는 요리에 대한 조예가 깊고, 그렇게나 강호인이 되는 것을 동경하여 젋은 시절에는 강호에 유랑을 떠나면서 강호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을 쌓기도 했으며 자유로운 나날을 그리워 한 나머지 포청천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도 있고, 일품정식이라는 요리를 먹기 위해 분파된 식당을 합치는 에피소드까지 따로 있을 정도다. 근데 그 에피소드에서는 막내 동생인 강왕야 조덕강의 부하들에게 암살당할 뻔하고,(강왕야는 팔현왕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부하들을 크게 야단치면서[8] 다시는 형님인 팔왕야를 건드리지 말라고 확실히 명령한다.) 강왕야는 자기가 반역을 하려다가 안방후 등녕에게 들켜서 되려 그를 반역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죽인 혐의가 들통나 결국엔 참수당한 것을 알게 되어 눈물을 흘리는 등[9], 매우 파란만장했다. 93년판의 성우는 장승길.

4. 여담

93년판 배우인 용륭은 해당 시리즈의 '어미인(KBS 방영시 천녀환생)' 편에서는 마녀로 분장하기도 했다. 한편 용륭은 포청천 역의 금초군, 전조 역의 하가경/초은준, 공손책 역의 범홍헌처럼 자주 팔현왕 역을 맡는 배우인데 어쩐지 그 점에 대해서 언급되는 빈도가 적다...


[1] 황제보다 나이가 많아서 어릴때는 친형으로 알았다.[2]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팔현왕이 자기 아들을 황제에게 양자로 주지 않은 건 모략이 판치는 황실로부터 친아들을 지키고 싶어서였다.[3] 御賜金鐧. 수레굴대 간鐧을 쓴다. 쇳덩이나 채찍의 의미도 지닌 한자로,황제가 수레굴대를 줄리가 없잖아 드라마 내에서의 생김새로 볼 때 일종의 몽둥이에 가깝다.[4] 참고로 이 어사금간은 판관포청천이 아닌 다른 포청천 드라마인 신탐적인걸 드라마에서 이원방 역할을 맡은 장자건이 주연한 신탐포청천(국내방영시 신포청천)에도 팔현왕이 가지고 나오는데, 여기서는 황제를 포함해서 황실후손이 잘못을 저지르면 이것으로 패서 일종의 수정펀치로 교육하라고 내린 몽둥이인데 팔현왕이 겉으로는 인종에게 불복해 인종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데 실은 인종의 뒤에 앉아 수렴청정으로 인종을 조종하는 태후와 곽괴에게 휘두르는거라 태후와 곽괴가 맞을뻔하고 놀라는 장면도 있었다.[5] 황제가 금간 앞에서 공수를 하고 자신의 본명을 말할 정도.[6] 조상이 역모에 앞서 포증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체포되었는데 포증은 일단 역모죄를 꺼내지 않고 살인으로 사형을 내렸다. 이에 팔왕야의 부인이 와서 애원하고 황제 또한 형제간의 의리가 있어, 사형은 면하게 해주는 대신 조상을 평민으로 강등하고 평생 자신의 봉지인 무진거에 구금시킨다.[7] 조상이 사면받은 것에 반대하던 포증은 결국 팔왕야를 찾아가나 팔왕야 또한 처음에는 자신이 자식을 살리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라며 극구 거부했다. 이에 포증은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조상이 역모를 했다는 말을 했고, 충격받은 팔왕야는 조상을 찾아 확인해 보지만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다 아빠 때문이야(...)라는 폭언까지 날렸다. 이를 황제에게 전했는데 황제가 그래도 사면을 해주고 싶어하고 심지어 권력에 회의를 느껴 조상에게 선양까지 고려하고 자신이 이러한 뜻은 팔왕야조차 막을 수 없다는 말까지 듣고나자 결국 팔왕야 또한 최후의 방법으로 어사금간을 사용한 것이다.[8] 사실 강왕야는 적어도 부하들에게는 인망이 있었는데 팔현왕이 선황의 임종 이후에 임시로 정권을 잡았던 섭정왕 시절에 기존에 권력을 지닌 황가의 일원들, 특히 친왕들의 직위를 모조리 해제시켰기에 강왕야는 형님이신 팔현왕을 원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팔현왕에게 이 사실을 추궁당했을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때 제가 모든 권력을 다 잃고, 제 친왕부로 쫓겨났을 때 형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팔형님을 죽일 정도로 그 원망이 크신 줄 아십니까!!! 이 아우는 원망은 했어도 형님을 해할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습니다!" 라고 울부짖었다.[9] 팔왕야의 마지막 남은 형제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동생을 함부로 의심한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에 어떻게든 강왕야를 구하려고 했으나 결국 강왕야는 자수했고, 용작두로 사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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