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지방은 왕성한 섬유 산업 덕분에 프랑스에서 부유한 지역이었다. 플랑드르는 프랑스 국왕의 봉신인 기 드 당피에르 백작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는데, 필리프 4세 왕은 플랑드르를 완전히 국토에 복속시킬 목적으로 1297년에 기 드 당피에르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플랑드르를 점령한다. 하지만 이 전쟁을 계기로 플랑드르에는 반프랑스파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플랑드르 군인들은 대부분 드뤼허 출신 보병으로 이루어졌고 괴덴다그라는 장창을 사용했다. 한편 프랑스는 기병을 중심으로 한 궁수와 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투는 그뢰닝거 고원에서 벌어졌는데, 높은 습도와 점토질의 땅 때문에 기병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지형이었다. 지휘관 아르투아 백작 로베르 2세, 라울 드 넬과 국새상서 피에르 플로트가 사망하면서 보병들은 혼란에 빠졌고, 프랑스는 9천 명 중 천 명의 군인을 잃으면서 완패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기병대를 거느리던 프랑스가 반란군에 대패하면서 프랑스 기병대의 위세가 추락했고, 플랑드르는 사실상 독립했다. 전투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은 필리프는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플랑드르에 보복하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황금 박차 전투는 플랑드르 민족주의 발달에 큰 공헌을 했고, 19세기부터 벨기에의 중요한 민족사적 자부심으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