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08 03:08:28

화려한 일족(경마)

華麗なる一族

1. 개요2. 마이리계 주요 경주마
2.1. 마이리2.2. 큐피트2.3. 야마핏2.4. 미스 마루미치2.5. 잇토2.6. 하기노 탑 레이디2.7. 하기노 카무이 오2.8. 다이이치 루비2.9. 마이네르 셀렉트
3. 오기후시 목장의 몰락

1. 개요

경마에서 부계는 사이어 라인(Sire line) 혹은 메일 라인(Male line)이라 하고 모계는 패밀리 라인(Family line), 메어 라인(Mare line), 모계(母係), 빈계(牝係)등 이라 한다.

화려한 일족은 1957년에 영국에서 일본으로 수입된 마이리로부터 이어지는 모계를 가리키는 용어다. 마이리 빈계(マイリー牝系)는 패밀리 넘버 7-e에 해당된다. 1973년 재벌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화려한 일족이 1974년에 영화와 드라마로 연달아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 시기에 마이리계의 잇토가 활약하면서 잇토의 모계가 주목받게 되었고 간사이 TV에서 해설을 하던 경마평론가 겸 시인인 시마 나오토가 마이리계를 화려한 일족으로 표현 하면서 부터 마이리계를 화려한 일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마이리계 말은 기성이 거칠고 스피드가 빠른 도주, 선행 특성인 말이 많았다.

2. 마이리계 주요 경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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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이리

마이리(マイリー, Mairie)는 초대 KGVI&QES 우승마인 슈프림 코트(Supreme Court)의 딸로 대법원이란 뜻을 지닌 아버지 슈프림 코트에 연관지어 마이리(Mairie- 프랑스어로 청사廳舍)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현역 3전 0승으로 은퇴 후 번식암말이 되어 1953년 영국 2000기니 스테이크스 우승마인 Nearula의 새끼를 배고 있었다. 1956년 영국에 번식암말을 구입하러 온 오기후시 목장의 목장장 사이토 유스케가 마이리를 구입해 1956년 10월에 출항, 12월에 일본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때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수에즈 운하가 봉쇄되었고 희망봉을 돌아가게 되면서 예정보다 3개월 늦은 1957년 2월에 요코하마에 도착하였고 이틀 후에 항구 검역소에서 마이리는 암말을 출산했다. 이 후 이 말의 이름은 큐피트(キユーピツト, Cupid)로 지어졌다. 만일 선상에서 태어났다면 큐피트는 외산마가 될 뻔했다.

이 후 마이리는 오기후시 목장에서 번식암말 생활을 했지만 14년간 3마리밖에 낳지 못했고 인근 목장에 판매되었는데 거기서도 1마리만 낳았다. 1968년에 낳은 딸 테츠노 아크(テツノアーク)의 모계 후손으로 2009년 플라워컵(G3)을 우승한 비바 보드카(ヴィーヴァヴォドカ)가 있다.

2.2. 큐피트

큐피트(キユーピツト, Cupid)[1]는 현역 시절 35전 9승, 2착 10회를 기록했고 1961년 한신 암말 특별에서 중상 우승을 거두었다. 당시 암말 전용 중상 대회는 5개였는데 그 중 고마 대회는 도쿄 암말 특별과 한신 암말 특별 2개 대회 뿐이었다. 따라서 당시 중상 우승 암말은 훌륭한 커리어를 지닌 말로 평가받았다. 은퇴 후 오기후시 목장으로 돌아와 야마핏과 미스 마루미치 단 2마리의 암말을 낳았다.

2.3. 야마핏

야마핏(ヤマピット, Yamapit)의 모마는 큐피트, 부마는 1966년 일본 리딩사이어에 오른 아일랜드 경주마 솔로나웨이(Solonaway)다. 도주, 선행각질로 1966년 3세(현 2세)때 5전 4승에 3번의 레코드 기록과 데일리배 3세 스테이크스[2]를 우승했고 1966년 최우수 3세 암말을 수상했다.

1967년 4세, 한신 4세 암말 스테이크스 우승 후 오카상에 도전했지만 도주에 나서지 못하면서 12착으로 부진했다. 다음 클래식 경주인 우준 빈마에서는 스타트 후에 선두를 잡는 데 성공하면서 도주해 우승을 거두었고 킷카상에도 도전했지만 15착으로 대패했다. 그래도 1967년 최우수 4세 암말을 수상했다.

1968년 5세, 산케이 오사카배[3]과 나루오 기념으로 고마 혼합 중상 경기에서 2승을 따내 1968년 최우수 5세 이상 암말을 수상하면서 3년 연속으로 최우수 암말상을 수상했다. 3년 연속 수상은 메이지 히카리 이 후 2번째, 암말로는 첫 기록이다.

1969년 1경기를 치루고 22전 9승(중상 5승)으로 현역 은퇴 후 번식 암말로 활동하나 1년 뒤에 새끼를 낳은 후 장염전으로 죽었다.

2.4. 미스 마루미치

미스 마루미치(ミスマルミチ, Miss Marumichi)의 모마는 큐피트, 부마는 1970, 72, 77년 일본 리딩사이어에 오른 영국의 경주마 네버 비트(Never Beat)로 Nasrullah의 3×3 교배마이다. 현역 31전 8승(중상 0승)을 기록했는데 갑작스레 죽은 반형제 언니 야마핏을 대신해 오기후시 목장으로 돌아와 번식 암말로 활동하게 되어 잇토, 닛포 킹(ニッポーキング, 1973)[4], 실크 텐잔 오(シルクテンザンオー, 1979)[5]등 중상마 셋을 낳았고 1979년에는 니시야마 목장으로 옮겨 2마리를 낳았다.

2.5. 잇토

잇토(イットー, Itto)의 모마는 미스 마루미치, 부마는 영국의 경주마 벤처(Venture)로 영국에서 현재 G1에 해당하는 대회에서 3승을 거두었고 일본에서는 후에 1976 일본 더비 우승마인 클라임 카이저를 배출했다. 이름 잇토는 일도양단(一刀両断)에서 따왔는데 일본 가부키 명문의 배우 오노에 키쿠고로가 평생 최고의 말을 찾게 된다면 지으라고 알려 준 이름이라고 한다.

1973년 3세 데뷔 시즌에서 3전 2승, 한신 3세 스테이크스에서 다음해 사츠키상, 킷카상 2관마에 오르게 되는 키타노 카치도키에 이은 2착으로 1973년 최우수 3세 암말을 수상했다. 이듬해 1974년에도 첫 경기에서 이겼지만 부상으로 7개월을 쉬었고 복귀전에서 레코드로 우승했다. 그러나 다음 교토 암말 특별 경기에서 앞서 가던 키슈 로렐이 골절부상을 당하면서 뒤에 있던 잇토와 부딪쳐 결국 잇토는 10착에 그쳤다. 키슈 로렐은 예후불량으로 안락사 당했고 잇토는 뒷다리를 7바늘 꿰매었다. 다음 경기에서 트라우마 때문인지 다른 말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3개월 간 일시적으로 정신적 휴양기간을 가진다.

1975년 3월 오픈 경기에서 당시 고마 최강으로 평가 받던 타니노 치카라에 반마신차 2착을 기록하면서 부활을 알렸고 다음 경기 마일러스 컵에서 타니노 치카라, 동기 키타노 카치도키와 붙어 키타노 카치도기가 우승, 2위에 잇토, 3위에 타니노 치카라가 오르며 당대 수말 최강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후 중상 3연전에서 스완 스테이크스와 타카마츠노미야배를 우승하면서 중상 2승을 올렸다. 이 후 오픈 경기 우승, 아사히 챌린지컵 2착으로 좋은 성적을 이어갔지만 교토 암말 특별의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부상으로 4착, 이 후 은퇴하게 되었다. 1975년 최우수 5세 이상 암말을 수상했다. 최종 성적은 15전 7승(중상 2승).

은퇴 후 오기후시 목장으로 돌아와 번식 암말로 활동하며 하기노 탑 레이디, 하기노 카무이 오를 낳았다.

2.6. 하기노 탑 레이디

하기노 탑 레이디(ハギノトップレディ, Hagino Top Lady)는 1980년 최우수 4세 암말 수상 말이다. 문서 참조

2.7. 하기노 카무이 오

하기노 카무이 오(ハギノカムイオー, Hagino Kamui O)의 모마는 잇토, 부마는 당대의 리딩사이어였던 테스코 보이다. 최종성적은 14전 8승(중상 6승). 문서 참조

2.8. 다이이치 루비

다이이치 루비(ダイイチルビー, Daiichi Ruby)는 1991년 최우수 5세 이상 암말, 최우수 스프린터 수상 말이다. 문서 참조

2.9. 마이네르 셀렉트

마이네르 셀렉트(マイネルセレクト, Meiner Select)의 모마는 하기노 탑 레이디의 딸인 우메노 애스콧, 부마는 미국의 G1 4승마 포티 나이너(Forty Niner)이다. 잔디경주는 1경기만 뛴 더트마로 2004년 JBC 스프린트(G1- 현 JpnI), 도쿄배(G2- 현 JpnII)등에서 우승했고 통산성적은 17전 10승(중상 5승)이다.

3. 오기후시 목장의 몰락

화려한 일족의 성공과 함께 1980년대 후반 매년 생산자 상금 톱 10에 들고 한때 연간 100마리가 넘는 생산마를 배출했던 오기후시 목장이었지만 1990년대 부터 도입한 종마들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흔들렸고 결국 1990년대 초 중반부터 경영규모를 축소했고 경영모체가 교체되었으며 화려한 일족도 잇토를 제외하고는 다른 목장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다이이치 루비도 은퇴 후 다시 목장으로 데려 올 생각이었지만 다이이치 루비의 마주 츠지모토 하루오가 개설한 목장으로 가게되었다. 오기후시목장은 오기후시 레이싱 클럽, 블루매니지먼트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지금은 YGG호스클럽의 간판을 달고 있다. 화려한 일족의 혈통은 아직까지 이어지지만 예전같은 활약마들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1] 큐피드는 일본에서 로마식 이름인 (Cupido, クピードー)로 주로 쓰이고 영어식 이름인 Cupid는 キューピッド와 キユーピツト가 혼용된다.[2] 현 데일리배 2세 스테이크스(G2)[3]오사카배[4] TTG와 같은 세대의 단~중거리마로 세인트 라이트 기념, 쿠모하타 기념(1976), 케이오배 스프링 컵(1977), 야스다 기념, UHB배(1978) 우승마, 현역 24전 11승. 화려한 일족 경주마들이 대부분 관서 소속이었는데 닛포 킹은 관동(나카야마) 경마장 소속이었다.[5] 하기노 카무이 오와 동기, 신잔 기념(1982) 우승 후 부상으로 1년 1개월 만에 복귀 했지만 3경기 후 또 부상으로 은퇴했다. 현역 7전 3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