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21 00:08:58

허먼 페리

<colbgcolor=#003458><colcolor=#fff> 허먼 페리
Herman Perry
파일:1000141803.jpg
출생 1922년 5월 16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먼로
사망 1945년 3월 15일 (향년 22세)
인도 제국 레도
복무 미국 육군
복무 기간 1941년 ~ 1945년
최종 계급 일병
참전 태평양 전쟁
묘지 워싱턴 DC

1. 개요2. 생애

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노스캐롤라이나주 먼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태어나기 전 그들을 떠났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워싱턴 DC로 이주해 성장했으며 정육점 수습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징집 대상이 되었으나 신체검사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군사경찰에게 체포되어 강제로 입대하게 되었다.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제849항공공병대대 소속으로 인도-버마-중국 전선에 투입되었다.

일선의 전투공병이 아닌 시설공병으로 각 전선을 잇는 도로인 레도 도로 건설에 투입되었다. 열악한 환경과 명령불복종으로 군교도소에 90일간 복역을 했었다. 1944년 3월 3일 소총을 들고 작업장에 등장하자 소대장 해럴드 A. 케이디 중위는 그를 교도소에 수감하려했다.

페리는 케이디에게 조준하며 케이디를 쫒아내려했으나 케이디는 계속 다가왔고 이에 방아쇠를 당겨 케이디의 복부를 맞췄고 바로 탈영해 인근 부족인 나가족의 마을에 은신했다. 은신하며 그들의 문화에 적응했고 족장의 딸과 결혼해 임신시켰다.

어느 날 원주민이 페리가 피우는 담배를 구매하기 위해 암시장을 들렸다가 사람들에게 흑인병사의 이야기를 하게되었다. 이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고 미군에게까지 전달되어 페리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7월 20일 제502군사경찰대대가 페리를 체포하기위한 체포조를 꾸려 나가족의 마을에 침투했고 이에 페리는 정글로 도망쳤으나 체포조의 총에 가슴을 맞고 쓰러져 체포되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후 치료를 받고 심문을 받았다. 자백 후 9월 4일 한 차밭에서 6시간 반동안 군사재판을 했고 상관살해, 탈영 외 명령불복종.근무지이탈 등 여러 죄목들이 밝혀졌고 결국 불명예제대 및 교수형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처형이 3개월 째 연기되었고 이에 면회온 사람에게 절단기를 몰래 반입해 12월 16일 철조망을 자르고 탈옥을 시도했다. 인근에 현상수배전단을 붙이고 해를 넘겨 1월 1일 인근 재제소에서 그를 발견하고 추격했으나 놓쳤다. 얼 컬럼 소령이 지휘하는 체포조가 결성되어 집요하게 추격한 결과 3월 9일 아삼에서 부상입은 페리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3월 15일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시신은 인근 묘지에 묻혔다. 인도-버마-중국 전선에서 유일하게 처형된 인물이였다. 전후 1949년 인근에 묻힌 미군들이 본국으로 이장됨에 따라 하와이의 스코필드 병영 묘지 사형수 구역에 안장되었고 그의 가족들이 매장된 곳을 파악하고 2007년 사비를 들여 화장 후 워싱턴 DC의 묘지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