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6 03:01:10

프리셰스 하프 해전



파일:800px-Stettiner_Haff_-_Battle_of_1759.jpg

1. 개요2. 배경3. 양측의 전력
3.1. 프로이센 해군3.2. 스웨덴 해군
4. 전투 경과5. 결과

1. 개요

7년 전쟁 시기인 1759년 9월 10일 프리셰스 하프[1] 앞바다에서 프로이센 해군과 스웨덴 해군이 격돌한 전투. 스웨덴 해군이 완승을 거두었고, 프로이센은 이로 인해 발트해에서의 해상권을 상실했다.

2. 배경

1758~1759년 겨울, 그때까지 별다른 해군이 없었던 프로이센은 일부 어선과 수송선을 군선으로 개조하여 스테텐[2]에 소규모 함대를 만들었다. 이 함대는 1759년 4월 5일에 출항식을 거행했다. 이러한 프로이센의 해군 육성을 전해들은 스웨덴은 이 소규모 해군이 자신들의 발트해 패권에 위협이 되기 전에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1759년 8월 초, 빌헬름 폰 카르펠란 소령 휘하의 스웨덴 함대가 스테텐 석호를 향해 이동하고자 오데르로 진군했다. 8월 8일, 클라이네 하프를 통과한 스웨덴 해군은 8월 22일 안클람에서 프로이센 해군과 첫번째로 교전한 끝에 적을 몰아냈다. 프로이센 해군 지휘관 에른스트 마티아스 폰 콜러 대위는 적의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고자 함대를 뉴워프 섬과 윌린 섬 사이의 좁은 해협인 프리셰스 하프에 두 개의 대열로 배치하여 스웨덴 해군의 진격을 저지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1759년 9월 10일, 양측은 프리셰스 하프에서 격돌한다.

3. 양측의 전력

3.1. 프로이센 해군

  • 사령관: 에른스트 마티아스 폰 콜러 대위
  • 병력: 갤리어트 선 4척, 갤리선 4척, 포함 4척, 병사 162명, 선원 448명.

3.2. 스웨덴 해군

  • 사령관: 빌헬름 폰 카르펠란 소령
  • 병력: 갤리선 4척, 갤리선 4척, 갤리어트 선 2척, 범선 3척, 포함 13척, 병사 2,882명, 선원 402명

4. 전투 경과

9월 10일, 카르펠란 제독이 이끄는 스웨덴 함대 28척은 프리셰스 하프로 침투해 프로이센 함대 12척을 공격하기로 결의했다. 스웨덴 함대는 4개 대열로 배치되었다. 첫번째 대열은 13개 대포를 갖춘 갤리선 4척으로 구성되었고, 두번째 대열은 5개 대포를 장착한 갤리선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세번째 대열은 범선 3척과 갤리어트 2척으로 구성되었으며, 네번째 대열은 포함 13척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프로이센군은 12개 대포를 장착한 갤리어트 4척, 12개 대포를 장착한 갤리선 4척, 그리고 포함이 4척을 갖춘 채 두 개 대열을 형성했다.

적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스웨덴 함대는 한 줄로 늘어섰다. 이때 남쪽에서 돛을 단 배들이 목격되자, 스웨덴군은 겔리선 3척과 포함 9척을 보내 이 배들을 추격하게 했다. 하지만 이 배들은 나중에 중립 국가 소속인 것으로 밝혀졌고, 스웨덴군은 이 때문에 여러 척의 전함이 전투에서 불참하는 악재를 맞이했다. 그 사이, 양측은 2시간 동안 포격전을 벌였다. 그러던 중 프로이센 함선 머큐리가 적의 포함을 침몰시켰다. 그러자 스웨덴 함대는 프로이센 함대를 향해 비스듬히 진격하여 적 우익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스웨덴 함대는 프로이센 제1 대열의 우익을 형성하고 있던 머큐리와 주피터에게 접근해 곧 포획했다.

프로이센 우익 함대가 포획되는 가운데 스웨덴 함대는 프로이센 중앙과 좌익을 압도해 프로이센군 첫번째 대열을 형성하고 있던 겔리어트와 갤리선을 포획하거나 침몰시켰다. 이렇게 프로이센 제1대열이 무너진 후, 스웨덴군은 2번째 대열을 형성하고 있는 4척의 프로이센 포함을 추격했다. 프로이센 함대는 달아났으나 도중에 포함 한 척을 상실했다. 이렇게 전투는 4시간 만에 프로이센 해군의 패배로 끝났다.

5. 결과

프로이센군은 이 전투에서 모든 겔리어트와 갤리선을 상실했고 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490명의 선원들이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반면 스웨덴군은 포함 1척을 잃었고 13명이 전사하고 31명이 부상당했다. 프로이센 소규모 함대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스웨덴은 발트해의 패권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다만 덴마크의 보른홀름 섬 근처에서 스켈드파데 호를 타고 스웨덴으로 이송되고 있던 프로이센 포로들[3]이 도중에 반란을 일으켜 이 배를 탈취한 뒤 콜베르크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들은 조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고, 프로이센인들은 이 일을 계기로 새로운 함대를 구축해 스웨덴 해군에 대항하고자 했다.
[1] 오늘날의 비스툴라 석호[2] 현재 폴란드 슈체친[3] 병사 27명, 선원 13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