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8:17:08

풋볼 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2012-13 시즌/4강 1경기 2차전

파일:2012-13 엔파워 챔피언십 PO 로고.png
2012-13 엔파워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4강 1경기 2차전
2013. 05. 12.(목) 20:30(BST+8)
비커리지 로드 (왓포드)
주심: 마이클 올리버
관중: 16,142명
파일:왓포드 FC 로고.svg
3 : 1
(3 : 2)
파일:레스터 시티 FC 로고.svg
왓포드레스터 시티
15', 65' 마테이 비드라 (A. 15' 크리스티안 바토키오, 65' 트로이 디니)
90+7' 트로이 디니 (A. 90+7' 조너선 호그)
파일:득점 아이콘.svg19' 데이비드 뉴젠트 (A. 19' 매티 제임스)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결승 진출
파일:왓포드 FC 로고.svg
왓포드 FC
결승 진출

1. 개요2. 배경3. 라인업
3.1. 왓포드 FC3.2. 레스터 시티 FC
4. 경기 내용
4.1. 전반전4.2. 후반전
4.2.1. 운명의 페널티킥
5. 총평
5.1. 왓포드 FC5.2. 레스터 시티 FC
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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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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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정말 엄청난 마무리를 보고 계십니다!
디니의 극장골 직후[1] Sky Sports의 캐스터 빌 레슬리의 멘트

2012-13 시즌 엔파워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4강 2차전 왓포드 FC레스터 시티 FC 간의 경기. 4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패하고, 2차전에서도 합산 스코어 동점을 만들었음에도 후반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내주며 탈락 위기에 직면했던 왓포드가 극적으로 페널티킥을 막고 역습을 통해 극장골을 성공, 합산 스코어 3:2으로 만들어 극적으로 승리, 엔파워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결승전에 진출한 경기이자 선수들의 뒤바뀐 운명, 전세계 축구팬들, 더 나아가 전 세계 스포츠팬들을 놀람과 감동으로 만들었던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대역전극이자 명경기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Sky Sports의 빌 레슬리 캐스터의 'Here's Hogg... DEENEY!'는 축구계, 더 나아가 스포츠계에 역사에 남을 멘트가 되었다.

2. 배경

2.1. 왓포드 FC

왓포드 FC는 1881년 창단 이래 그레이엄 테일러 감독이 오기 전까지 2~3부를 왔다갔다 하는, 그저 별볼일 없는 팀이었다. 그러나 테일러 감독의 부임 후 팀은 2부에서 1부로 승격, 승격 첫 시즌만에 리그 준우승에 성공하고 FA컵 결승에도 진출하는 등 황금기를 보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다가 테일러 감독이 아스톤 빌라로 떠난 후 강등 당하고 말았다.

이후 1998-99 시즌[2], 2005-06 시즌에 승격 플레이오프 우승을 통해 잠깐잠깐식 프리미어 리그에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최하위 강등을 면치 못했고 그중 2006-07 시즌은 시즌 단 5승에 그쳤다. 강등 후 바로 다음 시즌인 2007-08 시즌엔 시즌 초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며 6위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 헐 시티 AFC에게 패배하며 탈락했다. 이후에는 겨우 중위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2012-13 시즌, 왓포드에게 새 바람이 불었다. 구단주가 로렌스 바시니에서 포초 가문으로 바뀌었고 새 감독으로 지안프랑코 졸라를 선임하였다. 시즌 초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리그 중순에 다다르면서 순위를 대폭 끌어 올렸고 프리미어 리그 승격 경쟁권에 올랐다.

운명의 마지막 46 라운드에서 헐 시티 AFC와 다이렉트 승격 경쟁을 펼치게 되었다. 당시 헐 시티의 상대는 해당 시즌 리그 챔피언 카디프 시티, 왓포드의 마지막 상대는 동기부여가 떨어진[3] 리즈 유나이티드를 만났다. 허나 리즈와 왓포드의 경기는 도미닉 폴레온과 조너선 본드가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조너선 본드[4][5]가 출혈이 커진 탓에 타팀들의 경기에 비해 약 15분 정도 늦어졌다. 한편 헐 시티와 카디프의 경기는 헐 시티가 앞선 도중 91분, 페널티킥을 얻어냈는데 닉 프로슈미츠의 슛을 데이비드 마셜이 막아냈다. 이어지는 93분, 이번엔 카디프가 페널티킥을 얻었고 니키 메이어드가 성공시키며 2:2 동점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각, 리즈와 비기고 있던 왓포드는 이기기만 한다면 프리미어 리그 승격 직행 티켓을 따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62분, 알무니아를 대신 하여 주장 완장을 찬 트로이 디니가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하고 말았고, 89분, 본드를 대신해 들어갔던 써드 키퍼 잭 본엄로스 맥코맥의 슛을 잡으려다 놓쳐버리는 대형실수를 저지르며 1:2 패배, 다이렉트 승격에 실패하게 되었다. 선수들과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하였고 이렇게 허무하게 정규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2.2. 레스터 시티 FC

레스터 시티 FC는 1884년, 레스터 퍼스 FC 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후 1919년, 현재의 명칭인 레스터 시티 FC로 바꿨다. 창단 후 쭉 2부에서 지내다가[6] 1924년에 재승격에 성공, 1927-28 시즌 1부리그 3위, 1928-29 시즌 1부리그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이는 현재까지도 동화같은 리그 우승 다음으로 높은 순위다. 이후엔 1~2부를 왔다갔다하였다.

그러던 중 1958년, 맷 길리스 감독의 취임 후 팀의 첫 번째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현재까지도 축구 역대 골키퍼 GOAT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고든 뱅크스의 영입으로 1961년과 1963년, 두 차례 FA컵 결승에 올랐으며[7] 마침내 1964년, 스토크 시티를 꺾고 풋볼 리그 컵 우승까지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뱅크스가 스토크로 떠난 1969년, 구단 역사상 3번째 FA컵 결승에 올랐으나 맨시티에게 당한 1:0 패배로 준우승하고 말았고 리그에서도 22개의 팀 중 21위로 시즌을 마치며 강등 당하고 말았다.

다시 한번 레스터는 1~2부를 왔다갔다 하는 클럽이 되었지만 조크 월러스가 감독으로 취임 후 현재까지도 레스터 시티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하나인 게리 리네커를 중심으로 리빌딩하였다. 그리고 4년뒤, 라이벌인 코번트리 시티에서 7년의 감독 생활을 한 고든 밀른 감독을 선임, 1부리그 승격에 성공 후 리그 중하위권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뱅크스의 이적 때처럼 리네커가 떠나자마자 레스터는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레스터는 2부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 하며 중하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심지어는 1990-91 시즌에 강등 바로 턱밑까지 갔었다.[8] 그리고 이 상황을 모면 시킨건 새로운 감독, 브라이언 리틀이었다. 1991-92 시즌, 리틀은 부임 후 월러스가 리네커를 중심으로 그랬듯 스티브 월시를 중심으로 리빌딩을 하였고 무려 전 시즌 대비 18 계단이나 오른 최종 4위로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이윽고 레스터는 3시즌간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9][10] 결국 1993-94 시즌에서 운명의 라이벌 더비 카운티와 격돌, 스티브 월시의 멀티골로[11] 2전 3기, 프리미어 리그로 개편 후 첫 승격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4-95 시즌 도중 론 앳킨슨을 경질했던 아스톤 빌라가 브라이언 리틀을 선임[12]하며 팀은 말그대로 만신창이가 됬고 리그 단 6승에 그치며 22개의 팀 중 21위로 강등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2부리그로 내려온 레스터는 마크 맥기 감독을 선임했고 1위를 질주하는 등 쾌조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맥기가 갑자기 울버햄튼 감독직을 맡는다며 떠나버렸다. 이에 대체자로 마틴 오닐 감독을 선임했고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1995-96 시즌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크리스탈 팰리스를 물리치고[13] 올라온 1996-97 프리미어 리그에서 무려 9위, 코카콜라컵에서 미들즈브러와 재경기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에도 유럽대항전을 도전하는 등 리그 최고의 도깨비팀으로 군림했고 그 사이 1999년 워딩턴컵 준우승, 2000년 우승하였다. 이는 레스터의 두 번째 전성기였으나 얼마 안가서 에밀 헤스키의 리버풀 이적 등과 관련하여 구단과 오닐 감독간의 마찰이 있었고 결국 오닐은 셀틱 감독으로 부임, 이후 레스터는 강등,승격 그리고 강등을 당하며 2부리그로 추락하였다. 거기에 구장 신축으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레스터는 2부에서도 중하위권을 허덕였고, 결국 2007-08 시즌, 구단 역사상 첫 3부리그 강등이라는 최악의 암흑기에 빠지고 말았다. 허나 한 시즌만에 3부리그 우승으로 2부리그로 복귀했고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강호로 군림했다.

그리고 2012-13 시즌, 전반기 굉장한 출발을 알렸고 2월 초에는 리그 2위에도 올랐다. 그러나 후반기 리그에서 급작스러운 페이스의 추락으로 마지막 라운드 전에는 리그 8위까지 추락했다. 그럼에도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들어갈 희망이 있었다. 경쟁팀들은 크리스탈 팰리스, 볼튼, 노팅엄.

그리고 운명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만나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라이벌이자 같이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권 싸움을 하고 있던 노팅엄이었다. 같은 시각, 크리스탈 팰리스는 피터버러에게 승리를 거둠에 따라 리그 5위를 확정했다. 그리고 모든 걸 다 건 이스트 미들랜즈 더비, 후반 추가시간 1분, 역습 상황 볼을 잡은 앙토니 크노카르트크리스 우드에게 공을 연결했고 우드는 슛 대신 골키퍼를 속이며 다시 크노카르트에게 패스를 택했다. 그리고 크노카르트가 오른발로 골을 성공시키며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또한 동시간대 펼쳐진 볼튼과 블랙풀의 경기는 볼튼과 블랙번이 무승부를 기록하며 득실차 15점 차이로 레스터가 승격 플레이오프 마지막 티켓의 주인공이 되었다.

2.3. 경기 전

리그에서 둘의 맞대결은 두 번 모두 왓포드의 승리로 끝났다.

비커리지 로드에서 펼쳐진 첫 번째 맞대결은 왓포드가 알멘 압디와 페르난도 포레스트에리의 두 골로 데이비드 뉴젠트가 만회골을 넣은 레스터를 이겼다.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펼처진 두 번째 맞대결 역시 왓포드가 전반 종료 직전 트로이 디니너새니얼 찰로바의 두 골로 교체 투입된 임대생, 해리 케인이 만회골을 넣은 레스터를 이겼다.

그러나 정규시즌과 달리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승격 플레이오프 4강 1차전, 왓포드는 알무니아가 돌아왔음에도 디니의 공백[14]을 극복해내지 못 하며 후반 82분, 크노카르트의 크로스에 이은 뉴젠트[15]의 헤더골을 막지 못하며 1차전 승리를 내주게 된다.

물론 패배를 당했지만 한 점차 패배는 그리 큰 점수차가 아니었고, 주포 디니까지 돌아오는 왓포드였다. 그리고 2013년 5월 12일, 운명의 승격 플레이오프 4강 2차전,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3. 라인업

3.1. 왓포드 FC

왓포드 FC (5-3-2)
{{{#!wiki style="margin: -16px -11px;" CF
마테이 비드라
CF
트로이 디니
}}}
LWB
매튜 브릭스
LCM
크리스티안 바토키오79'
조너선 호그 79'
CAM
알멘 압디
RCM
너새니얼 찰로바
RWB
이케치 안야
{{{#!wiki style="margin: -16px -11px;" CB
마르코 카세티
CB
요엘 에크스트란드
CB
로이드 도일리64'
페르난도 포레스티에리 64'
}}}
GK
마누엘 알무니아

3.2. 레스터 시티 FC

레스터 시티 FC(4-4-2)
CF
크리스 우드61'
해리 케인 61'
CF
데이비드 뉴젠트
LM
앙토니 크노카르트
CM
매티 제임스
CM
로이드 다이어 66'
대니 드링크워터 66'
RM
앤디 킹
LB
제프리 슐루프
CB
마이클 킨
CB
웨스 모건
RB
리치 더라트
GK
카스페르 슈마이켈

4. 경기 내용

4.1. 전반전

전반 13분, 리치 더라트가 감각적으로 찬 왼발슛이 알멘 압디의 왼팔에 맞았으나 마이클 올리버 주심이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페널티킥이 주어지지 않았다.

파일:비드라 첫골_getty.jpg
전반 15분, 크리스티안 바토키오가 환상적인 아웃프런트 로빙패스를 올렸고 마테이 비드라마이클 킨을 앞에두고 환상적인 왼발 논스톱 발리슛으로 이 경기 선제골이자 합산스코어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비드라 본인에게 역시 부진을 씻어내리는 골이 되었다.[16]

파일:누젠트골_getty.jpg
하지만 이에 질세라 전반 19분, 매티 제임스의 코너킥을 받아 데이비드 뉴젠트가 헤더로 골대 오른쪽 구석에 꽃으며 이 경기 동점골, 합산스코어에서 다시 앞서 나가게 됬다.[17]

이후 별다른 장면없이 전반이 종료되었다.

4.2. 후반전

후반 50분, 크리스티안 바토키오가 회심의 왼발슛을 날렸으나 매티 제임스의 발에 맞고 깻잎 몇 장 차이로 굴절되어 나갔다.

이어서 후반 57분, 알멘 압디가 왼쪽 골문을 향해 슛을 날렸으나 마이클 킨에 맞고 굴절되어 나갔다. 카스페르 슈마이켈도 멈춘 상태였기 때문에 킨에 맞지않았더라면 들어갔을 것이다.

파일:비드라 두번째골_getty.jpg
두드리고 두드린 끝에 결국 후반 65분, 마테이 비드라가 트로이 디니와의 2:1 패스를 통해 득점을 만들어냈다. 합산스코어는 다시 동점.

후반 78분, 이번엔 비드라와 2:1 패스를 통해 디니가 골문을 흔들었으나 오프사이드로 득점이 취소되었다. 바로 이어서 포레스티에리에게 1:1 찬스가 열릴뻔 했으나 앤디 킹이 슈퍼블락으로 막아냈다.

4.2.1. 운명의 페널티킥


2:1, 합산스코어 2:2 동점을 이루던 후반 90+6분, 왓포드의 왼쪽 페널티 박스 밖에서 앙토니 크노카르트가 매튜 브릭스를 몸싸움 끝에 돌파하여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왔고 마르코 카세티의 오른팔에 맞고 쓰러지며[18] 페널티킥이 주어졌다.[19] 사실상 경기 자체를 끝내버릴 수 있는 판정. 당연히 카세티를 비롯한 왓포드의 선수단과 팬들은 절망했고 레스터의 선수단과 팬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키커로는 페널티킥을 얻어낸 크노카르트가 준비하고 있었다.[20]
Knockaert takes, Almunia saves. Knockaert follows in with (the rebound), Almunia saves again! Absolutely astonishing!
크노카르트가 찼습니다. 알무니아가 막았어요. 크노카르트가 (리바운드 된 볼을) 다시 찹니다. 알무니아가 또 다시 막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알무니아의 선방 후 Sky Sports의 빌 레슬리의 멘트

그러나 크노카르트가 가운데로 찬 페널티킥을 알무니아가 오른쪽으로 다이빙을 뛰었음에도 발끝으로 막아냈고 크노카르트가 재차 달려들어 오른발 슛을 날렸지만 알무니아 역시 재차 가슴으로 막아내었다. 그리고 카세티가 그 볼을 앞으로 멀리 걷어냈다. 그리고...

파일:DEENEY_getty.jpg
Now here come Watford, Forestieri. Here's Hogg... DEENEY![21] Do not scratch your eyes. You are really seeing the most extraordinary finish here!
이제 왓포드가 갑니다, 포레스트에리. 호그가 있고요... 디니! 믿기 싶니까. 여러분들은 정말 엄청난 마무리를 보고 계십니다!
디니의 극장골 이후 Sky Sports의 빌 레슬리의 역사에 남을 멘트

카세티가 걷어낸 볼을 이케치 안야가 트래핑 후 킹과의 몸싸움을 이겨내며 오른쪽 사이드로 이동하여 앞쪽 포레스트에리에게 연결했고, 포레스트에리는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이 볼을 막기 위해 슈마이켈이 나왔지만 조너선 호그가 헤더를 따내며 디니에게 넘겼고 디니가 빈골문을 향해[22] 그대로 오른발 발리슛, 골로 연결되었다.[23] 알무니아가 페널티킥을 막은지 고작 20초만에 일어난 일이다. 디니는 상의 탈의 후 왓포드 팬들에게 달려가 안겼으며, 왓포드의 팬들은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모두 뛰쳐나와 이 기쁨을 나눴다.

이후 1:3, 합산 스코어 2:3으로 경기가 종료됬고 레스터의 선수들과 팬들은 좌절했고[24] 정말 극명하게 왓포드 팬들은 다시 한번 뛰쳐나왔다.

또한 선수들의 뒤바뀐 운명이 정점이었는데, 레스터를 승격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던 크노카르트는 한순간에 역적으로 추락했고, 반면에 각각 부상과 퇴장으로 왓포드의 승격 직행권을 실패하게 만든 알무니아디니는 영웅으로 올라섰다.

5. 총평

5.1. 왓포드 FC

파일:왓포드의 환호_getty.jpg
승리는 운명이었다.
왓포드의 감독 지안프랑코 졸라

왓포드가 레스터를 상대로 리드한 시간은 단 4분이었고 그것만으로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으로 갔다.

2012-13 시즌 정말 희비가 교차하며 자동승격권에서 밀려났지만 끝끝내 왓포드는 길을 찾으며 프리미어 리그까지 한발짝 남게되었다.

그러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플레이오프 결승전, 연장전 접전까지 가는 끝에 이번에도 마르코 카세티가 공이 아닌 윌프레드 자하를 걷어차버리며[25]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교체로 들어왔던 케빈 필립스가 이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경기가 종료되며 크리스탈 팰리스의 9시즌만에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내주면서 승격은 또다시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그리고 2시즌 뒤 14-15시즌 리그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리그 2위 이상을 확정하며 8년만에 프리미어 리그 복귀에 성공하였다.

5.2. 레스터 시티 FC

파일:크노카르트 절망_getty.jpg

레스터는 9시즌만에 프리미어 리그 승격이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2월 이후 부진으로 겨우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결국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내주며 패배하고 말았다.

공격수들의 부진이 컸는데 2월을 기점으로 데이비드 뉴젠트는 왓포드와의 플레이오프 4강 1차전 전까진 무득점 그쳤고, 신입생 제이미 바디는 리그 4골밖에 넣지 못했다. 겨울 이적시장 임대생 해리 케인도 리그 2골에 그쳤으며 밀월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겨울 이적시장에 WBA로부터 온 또다른 겨울 이적시장 임대생 크리스 우드는 영입 초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했으면 마이클 킨이나 로이드 다이어 같은 수비수나 미드필더가 득점을 책임졌을 정도다.

하지만 13-14 시즌, 공격수들의 부활과 함께 클럽의 여러 기록들을 갱신하며 승점 102점, 리그 우승으로 왓포드보다 먼저 프리미어 리그에 돌아왔다. 이후 레스터는 첫 시즌 기적같은 잔류에 성공하였고, 그 다음 시즌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6. 여담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전세계에선 축구 역대 최고의 역습, 극장골 등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양팀의 킷 스폰서가 모두 푸마였다.

파일:케인과 바디_getty.jpg
몆년 후, 이 경기전 레스터의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해리 케인제이미 바디가 화제가 되었다. 당시 케인은 토트넘 핫스퍼의 유망주로 전반기, 노리치 시티에서 임대 후 후반기 레스터로 임대를 왔다. 그리고 제이미 바디는 당시 5부리그였던 플릿우드 타운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여름 이적시장에 영입된 선수였다. 해당 시즌엔 언급했듯이 두 선수 모두 부진했지만 이후 각자의 에서 전설을 써내려가며 이후에는 다른 엠블럼을 달고 같은 팀에서 만나게 되었다.

7. 관련 문서


[1] 정확히는 상의 탈의 세레머니 후 관중석으로 달려가 안겼을 때.[2] 이 승격도 그레이엄 테일러 감독이 해낸 성과다.[3] 승격 실패와 잔류를 모두 확정했다.[4] 절망적이게도 본드는 주전 골키퍼이자 주장인 마누엘 알무니아가 경기전 워밍업 중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는 탓에 대신 들어간 세컨드 키퍼였는데도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결국 본드를 대신해 잭 본엄이 들어갔고 데뷔전이 팀에게 가장 중요한 경기가 되어 버린 19살의 어린 써드 키퍼에게 큰 부담감으로 작용하였다.[5] 사실 폴레온도 이전 왓포드의 수비수에 의해 출혈이 생긴 스티브 모리슨과 교체되어 들어간 것이다. 그냥 경기가 전체적을 과격했으며 심판진이 경기 운영을 너무 못했다.[6] 1908년에 승격하였으나 무려 102실점을 기록했다. 이는 1930-31 시즌 블랙풀의 125실점 기록 전까지 최다실점 기록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블랙풀을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7] 각각 토트넘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하였다.[8] 이것도 리그 개편으로 강등이 한 자리 줄어 망정이지 하마터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3부리그 강등을 당할 뻔했다.[9] 첫 번째 경기는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0:1 패배한 것이였는데 이 경기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블랙번의 승격을 안겨준 선수는 다름 아닌 레스터 출신의 스트라이커 마이크 뉴웰이었다. 이렇게 블랙번은 팀의 26년만에 1부리그 승격, PL 개편 후 첫 승격을 일궈냈으며 3년 뒤 그 유명한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성공하게 되었다.[10] 두 번째 경기는 스윈던 타운과의 경기에서 4:3으로 패한 것으로 0:3으로 패배하던 것을 극적인 3:3 동점을 만들었지만 오심 논란이 있는 페널티킥 판정으로 패배하였다. 이렇게 스윈던 타운은 구단 74년 역사상 첫 1부리그 승격에 성공했다.[11] 스티브 월시는 수비수로써 유명하지만, 이 당시엔 공격수로써도 기용되며 이름을 꽤나 날렸다.[12] 아마 리틀 역시 본인이 선수 커리어의 전부를 보냈던 빌라의 러브콜이었기에 쉽게 거절 못 한 것을 보인다.[13] 정말 극적인 경기였는데 연장전도 얼마 안남은 상황에서 마틴 오닐은 승부차기를 예상하고 주전 골키퍼 케빈 풀 대신 젤코 칼라치를 투입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칼라치의 교체 투입 1분도 안 돼서 스티브 클라리지가 엄청난 발리골을 넣으며 승리를 가져왔다.[14] 리그 마지막 겨기 리즈전 경고누적 퇴장의 여파다.[15] 뉴젠트는 이 경기를 포함하여 무려 챔피언십 승격 플레이오프에만 6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넣었을만큼 이 무대에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이후에도 4경기에 더 출전하여 1골을 넣었다.[16] 리그에서 20골을 넣으며 챔피언십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나 34R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 후 쭉 무득점이었다. 13경기만에 터뜨린 골.[17] 뉴젠트는 왓포드를 상대했던 11경기 중 8골을 득점했을 정도로 왓포드 킬러였다. 당장에 1차전 결승골 역시 뉴젠트의 헤더골이었다.[18] 이 판정에 대해선 카세티의 오른팔에 맞긴 했지만 축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접촉 정도였고 크노카르트가 다이빙했다는 의견이 많다.[19] 이는 왓포드가 12-13시즌 허용한 12번째 페널티킥이었다.[20] 레스터 이적 후 영국 무대에서 처음 차는 페널티킥이었다.[21] 이 멘트 부분은 비단 왓포드의 역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사, 더 나아가 스포츠사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멘트가 되었다.[22] 슈마이켈이 곧바로 다이빙을 뛰긴하였다.[23] 여기서 디니가 골을 성공하지 못했으면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탈락했을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으나, EFL은 1999년,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의 원정 다득점 원칙을 폐지하였다.[24] 특히나 페널티킥을 실축한 크노카르트는 오열했다.[25] 이번만큼은 확실히 파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