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팔레르모 FC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이다.2. 창단 이후
US 치타 디 팔레르모 (2000~2019) 시절 엠블럼. |
주장이자 코치였던 조지 에드워드 사무엘 블레이크[2]를 비롯하여 영사관 직원들이 모인 앵글로 팔레르미탄 운동 협회 (Anglo Palermitan Athletic)에서 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이탈리아 남부 팀들끼리 열린 대회에서 간간히 우승을 차지했었다.
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구단은 잠시 문을 닫았으며 1920년 2월 16일 '우니오네 스포르티바 팔레르모(Unione Sportiva Palermo)'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다시 대회에 참가했었다.
1926-27시즌 첫 파산으로 팔레르모 풋볼 클럽(Palermo Football Club)으로 합병이 되었고 1929년 리그제 출범 이후 3부 리그에서 시작하여 3년만에 최고 리그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39-40시즌 두번째 파산 절차를 밟게 되며 군(軍) 출신 구단 유벤티나(Juventina)와 합병하게 되었다.[3]
2차 대전 후에는 48-49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하며 다시 세리에 A로 복귀하여 53-54시즌까지 총 6 시즌을 버텼으며 이후에도 승강을 오고 가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70년대 렌초 바르베라(Renzo Barbera)[4]가 구단주로 취임하며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하는 등[5] 찬란한 10년을 보내다가 사임 이후 세리에 C까지 강등당하는 불운의 역사도 함께 갖게 되었다.
2002 년에 마우리치오 잠파리니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적극적인 보강 등이 결실을 맺어 2004년에 다시 세리에 A로 승격하였으며, 또한 유럽 클럽 대항전 출전 달성 등 클럽의 지위를 크게 향상시켰다.
또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이 우승하였는데, 팔레르모는 안드레아 바르찰리, 크리스티안 자카르도, 파비오 그로소, 시모네 바로네 등 4명을 보냈다. 이는 유벤투스 소속의 5명에 이어 2번째로 많이 대표팀에 보낸 것이다. 2008년 G-14(유럽 빅 클럽 연합체)의 후계 조직인 ECA(유럽 클럽 협회)에 가입하였다.
2003-04 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하며 세리에 A로 승격된 후 중상위권에서 맴돌다가 2010-1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이후, 2011-12 시즌 16위로 마치며 불안감을 보였고, 결국 2012-13 시즌 18위로 8시즌만에 강등되었으나 곧바로 2013-14시즌 세리에 B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다시 세리에 A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6]
14-15시즌은 파울로 디발라의 활약을 앞세워서 안정적으로 중위권 자리를 지켰으나, 다음시즌인 15-16시즌에는 디발라가 유벤투스로 이적하고, 잠파리니 구단주의 감독 갈아치우기 행각으로 인해 순위권은 날이 갈 수록 하락하여 강등을 걱정해야 했다. 37라운드의 순위는 강등권인 18위 카르피 FC와 승점 1점차인 17위. 마지막 경기인 최하위 헬라스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서로 한명씩 퇴장당하는등 격렬한 경기였고, 결과는 3:2 팔레르모의 승리. 그리하여 16위로 잔류 확정.
지난시즌 잔류를 이끌었던 발라르디니 감독이 팀을 떠난 가운데 로베르토 데 체르비가 새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16-17시즌 7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1승3무10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크로토네에 골득실 1이 뒤진 꼴찌에 쳐져있다. 코파 이탈리아도 하부리그의 스페치아에 광탈하자 결국 로베르토 데 체르비 감독이 경질되었고, 에우제니오 코리니 감독이 새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새 감독 버프를 받지 못하고 강등을 확정, 그나마 의미도 없는 최종전에서 크로토네와 잔류전쟁을 치러야 했던 엠폴리를 2-1로 잡아내며 같이 세리에 B로 향할 동지를 직접 선택했다.
3. 2017-18 시즌
시즌 초, 폴 바카글리니(Paul Baccaglini)와의 인수 협상이 무산되었고 감독 자리에는 잠파리니와 베네치아에서 근무했던 인연으로 브루노 테디뇨가 선임됐다.알레산드로 가찌, 디아만티와 1년만에 계약을 종료했으며 안젤코비치(베네치아), 비티엘로(테르나나), 골다니가(사수올로)등이 팀을 떠났다.
이탈리안 컵에서는 트라이코프스키의 해트트릭 등 5:0으로 첫 라운드를 시작했지만 다음 라운드에서 칼리아리 칼초를 만나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였다. [7]
8월 26일 1라운드에서는 트라이코프스키와 네스트로프스키의 골과 함께 승리로 시작했다.
2번째 라운드에서는 세리에 B에서 국대 차출된 선수들에게 휴식 기간을 제공하지 않아 풀 스쿼드를 갖추기 어려웠다.
시즌 말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던 테디뇨가 해임되고 로베르토 스텔로네가 감독을 맡았다.
시즌 성적은 다이렉트 승격과 아쉽게도 1점 차이나는 4위.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베네치아를 이겼고 프로시노네와의 1차전도 2-1로 이겼으나 2차전에서 2:0으로 패배하면서 승격에는 실패했다.
4. 2018-19 시즌
전 시즌 부진으로 해임됐었던 테디뇨가 다시 선임되었지만 또 부진으로 해임되었고 또 스텔로네가 시즌 중반을 이끌었으며 마지막엔 또 델리오 로시가 선임되어 소방수를 맡았다.이탈리아 컵은 또 칼리아리를 만나 2-1로 패배하면서 탈락하였다.
이전부터 잠파리니는 지속적으로 구단 매각을 진행해왔으나[8] 인상적인 제안을 받을 수 없었고 그 사이 구단의 부채는 점점 증가하여 잠파리니는 허위 회계 재무제표 작성 등의 혐의로 가택연금을 받는 상황이었다.
2018년 12월, 영국계 컨소시엄인 '스포츠 캐피탈 그룹(Sports Capital Group Ltd.)'이 구단 인수를 자처하여 계약이 진행되었으나 기존 프런트와 마찰을 일으키며 한 달만에 사임하였고 다시 잠파리니의 수하였던 다니엘라 디 안젤리(Daniela De Angeli)와 리노 포스키(Rino Foschi)에게 소유권이 돌아오게 된다.
승격 기대가 점점 커지면서 미국의 '요크 캐피탈(York Capital)' 등 인수에 참가하는 세력들이 새로 늘어났는데, 기존 부채 이슈 및 '어느 나라에 납세하는가?'와 같은 어른들의 사정을 거쳐 2019년 4월 투툴로몬도가 이끄는 '아르쿠스 네트워크(Arkus Network)' 와 인수 협상을 체결하였다.
시즌 종료 후 구단은 3위(승점 63점)를 기록하며 승격 플레이오프 자격을 획득했으나, 前 구단주 잠파리니의 분식회계를 통한 재무제표 조작 관련 혐의로 세리에 C 강등을 선고받게 되었다. 이에 구단은 바로 항소를 진행했고 승점 20점 삭감 으로 징계 내용이 변경되어 최종적으로는 세리에 B에 잔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새 구단주 '아르쿠스'는 '조만간 투자금이 도착한다'[9] 라며 선수들의 급여 지급도 차일피일 밀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19-20 시즌 리그 등록에 관한 지불 보증까지 협회에 제출하지 못하여 7월 12일 리그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였다. 이후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세리에 C로 강등되었던 베네치아 FC가 대신 승격된다.
응모 컨소시엄 목록
- Palermo FBC 1900 : 세르지오 디 나폴리 및 4명의 파트너
- Hera Hora Srl : 다리오 미리, 다니엘레 미리, 토니 디 피아짜로 구성
- Cuore Rosa Nero : 루치오 메시나 외 6명
- Holding Max : 삼프도리아 회장 마시모 페레로의 형제인 조르지오 페레로가 참여
- 팔레르모 풋볼 클럽 : 브랜드 Alcott과 Gutteridge를 소유한 Capri Srl
- 취리히 캐피탈 펀드 : 알프레도 마요레즈가 중개인으로 있는 아랍 자본
이 중 제안을 검토한 결과 다리오 미리(Dario Mirri)가 이끄는 Hera Hora srl 이 최종 선정되어 'SSD 팔레르모'로 재창단하게 되었다. 8월 3일 렌초 바르베라 경기장에서 공개 행사를 가지며 회장, 부사장 취임식과 디렉터 임명식등을 진행했다.
5. 2019-20 시즌
새 구단의 소유 구조는 다리오 미리가 10%, 미리의 회사인 '다미르(Damir)'가 50%, 동업자 디 피아짜가 40%를 소유하는 구조다. 새 로고[11]는 다닐로 리 물리가 디자인하고 로렌조 바르베라가 마케팅을 담당했다.[12]첫 시즌 세리에D I조에 배정되었으며, 초반 10연승을 달리는 등 5라운드부터 1위를 유지하는 압도적인 성적[13]으로 세리에 C 승격에 성공했다.
6. 2020-21 시즌
세리에 C에서 시작하면서 팀명을 팔레르모 FC로 변경했으며 발렌테, 실리포, 로렌조 루카, 이반 마르코니 등으로 스쿼드를 보강했다.첫 10경기는 2승 4무 4패로 좋지 않았지만 라운드 후반 9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특히나 마지막 6경기에서 4승 2무라는 호성적을 기록하여 세리에 C - 그룹 C에서 7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시게 된다.
7. 2021-22 시즌
주장이었던 마리오 산타나가 유스 코치를 제의 받고 은퇴하였다. 전시즌 주포였던 로렌조 루카의 피사 이적으로 마테오 브루노리를 데려왔다.홈 10경기에서 7승 3무를 기록하였으나 원정 경기에서는 승점 9점만 따오는 '홈레르모'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고 감독 교체 후에도 이렇다할 호재가 없었다. 시즌 대부분 6-7위를 유지하다가 또 마지막에 버닝하는 모습을 보였고 최종적으로 세리에 C - 그룹 C에서 3위를 기록하여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2021/22 SERIE C PLAY-OFF CAMPIONI |
마법 같았던 승격의 날 이모저모 |
결승까지 올라간 후에는 그룹 A에서 2위를 기록한 칼초 파도바를 꺾고 세리에 B로 승격을 확정지었다.#
다리오 미리 회장의 초기 자본금 1500만 유로는 첫 3년만에 거의 소진이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22/23 시즌부터는 추가 자본 투입을 멈추고 구단을 매각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라자르 투자은행을 통해 인수자를 찾았는데 이 해 4월부터 시티 풋볼 그룹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4월 15일 : 디 마르지오를 통해 시티 풋볼 그룹의 관심이 공개됨
- 4월 30일 : 가제타와 유로스포츠에서 지분 80%에 대해 6-8M에 협의 중이라고 언급
- 5월 11일 : CFG 임원 2명[14]이 협의 차 팔레르모 방문, 미리 회장 안내 하 경기장 관람
- 5월 12일 : 미리 회장과 CFG 임원, 회의 후 식사. 팔레르모-트리에스티나 경기를 보러 이동
- 5월 24일 : 알베르토 갈라시 "축구계에서 월드 클럽이 되려면 이탈리아를 지나칠 수 없어, 하지만 팔레르모가 유일한 매물은 아님"
- 6월 12일 : CFG 스카우트 루치아노 자바뇨, 팔레르모-파도바 경기 관람
- 6월 21일 : 페데리코 제노베시 포함 CFG 물리치료팀, 팔레르모 방문
- 6월 27일 : 라자르 투자은행 CEO 마르코 사마자 "만수르는 플레이오프 결승전에 3만 5천명의 관중이 운집한 것을 흥미로워함"
- 7월 1일 : 미리 회장, 밀라노에서 맨체스터 시티 CEO 소리아노와 계약 체결
8. 2022-23 시즌
시티 풋볼 그룹에 인수된 후 맞이하는 첫 시즌.시티 풋볼 그룹이 80%의 지분을 가져가는 계약이며, 다리오 미리 회장은 2025년 6월까지, 회계년도 3년동안 관련 재무제표가 승인될 때까지 재직하게 된다. 미리 회장은 22년 7월부터 5년 내로 CFG의 동의 없이 주식을 거래할 수 없으며, CFG 역시 3년간 양도가 불가능한 계약이다.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인프라와 도시 계획 부족, 전후 느린 복구(2차 세계 대전) 등으로 낙후되어 있는 도시이지만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시칠리아 섬 내에 있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며, 이탈리아 내에서 인구 수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광역권이다. CFG의 구단 인수는 팔레르모의 잠재적인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수 후 발디니 감독이 해임되고 에우제니오 코리니가 감독으로 복귀했다.
첫 10경기 이후 승점 9점으로 하위권에서 허덕였으나 홈에서 파르마 칼초 1913을 상대로 승리하며 반등했다.
15라운드에서 23라운드까지 5승 4무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으나 이후 9무 4패라는 기괴한 경기력을 보였다.
앞서가는 경기에서 수비 불안으로 계속 무승부를 만들어내더니 리그 마지막 라운드 브레시아 칼초 전에서도 2:0을 2:2로[15] 만들며 9위로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9. 2023-24 시즌
자세한 내용은 팔레르모 FC/2023-24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전 시즌 말미 앞서다가도 실점으로 경기를 지키지 못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수비 강화에 집중하였다.
루치오니와 체카로니를 영입을 통해 중앙 수비진을 싹갈이 했으며 마르코 살라의 임대복귀로 자리가 빈 레프트백은 룬트의 영입으로 메꾸었다. 공격진은 만쿠소를 임대해와 브루노리의 공격 집중도를 분산시키고자 했고 양 날개에 인시녜와 디 프란체스코를 보충하여 코리니의 433, 352 전술을 지원하였다. 미드필더진도 유망주 바시치를 완전영입하였으며 세리에 A로부터 쿨리발리와 헨더슨을 임대영입하였고 골키퍼 진에는 이탈리아 청대 넘버원 데플랑슈를 데려오는 등 약 1,000만 유로에 가까운 거금을 투자하였다.
그라운드 외적으로는 새 클럽하우스가 가개장하여 훈련 성과를 더 끌어올릴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컵 대회에서는 A 승격팀 칼리아리를 만나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패배하였다.
리그 초반, 공격 루트가 잘 풀리지 않았으나 단단한 수비진과 추가 시간 극장골이 꽤 터지며 일찍이 3위를 차지하였지만 라운드를 거치며 지역방어인지 대인방어인지 모를 느슨한 압박과 3선에 대한 약점이 대두되며 라인을 내리고 '수비 후 역습'을 하는 팀들에게 철퇴를 맞으며 승점을 흘리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키를 가진 공격수 브루노리에게 영양가도 없고 날카롭지도 않은 무지성 크로스가 올라가는 경기가 많았으며 턴오버된 공은 무주공산의 중원을 거쳐 바로 수비진과 맞닿는 위험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었다.
주전 골키퍼 필리아첼리의 무수한 선방, 솔레리와 만쿠소의 슈퍼 조커, 쿨리발리의 깜짝 활약 등으로 똥꼬쇼를 하며 라운드를 버텨냈지만 여전히 실속없이 슛만 난사하는 브루노리, 압박이 없는 미드필더들, 연이은 선수들의 부상에 이어 결국 수비진도 붕괴되면서 10월 스페치아 전부터 12월까지 8경기 1승 3무 4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순위는 플레이오프 턱걸이까지 떨어졌으나 시티 그룹은 코리니 감독에 대해 일단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23년 11월 3일 유럽 클럽 협회(ECA)에 네트워크 멤버 자격으로 가입하였다.[16]
강한 상대와의 경기가 연달아 있었던 12월에 (파르마, 코모, 크레모네세) 강팀들을 상대로 승점을 잃지 않고 중하위권 팀들을 상대로는 착실하게 승리를 거두며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17]
23/24 겨울 이적 시장에서는 중원의 클래스를 보강하기 위해 라노키아를 세리에 A에서 데려왔고 라이트백 마테유를 디아키테로 바꾸면서 적절한 이적시장을 보냈다.
디아키테가 영입되면서 우측 라인에 대한 수비가 견고해졌고 또한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공격 루트가 다양해진 점에서 팀의 경기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며 라노키아는 트레콰르티스타 자리에서 브루노리의 몫을 톡톡히 해내며 팀의 핵심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자리 잡고 있다.
코모를 홈에서 완벽하게 잡으며 승격을 향한 기대감이 극에 달했었지만 이후 크레모네세 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상대가 퇴장당한 상황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며 멘탈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피사 전에서는 4:3이라는 지옥같은 경기력을 보이며 에우제니오 코리니 감독이 경질되었고 후임으로는 바리에서 9무를 찍고 해임당한 미켈레 미냐니가 선임되었다. 미냐니는 중앙 지향적인 스타일로 팔레르모에 3412포메이션을 접목하려고 하였으나 결과가 썩 좋지 않았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쥐트티롤을 겨우 잡으며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성공하였다.
삼프도리아와의 플레이오프 예선은 물이 오른 디아키테의 활약으로 통과하였으나 본선에서 베네치아에게 압도적인 경기력 차이를 보이며 탈락하였다.
10. 2024-25 시즌
자세한 내용은 팔레르모 FC/2024-25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11. 리그 소속 기간
- 1부/세리에 A: 1932-1936, 1948-1954, 1956-1957, 1959-1960, 1961-1963, 1968-1970, 1972-1973, 2004-2013, 2014-2017 (29시즌)
[1] 영국인 3명, 팔레르모 사람 9명[2] 제노아 CFC의 창단에도 참가했었다.[3] 선수들이 전쟁터로 나가게 되어 뛸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 이해타산이 맞았다.[4] 경기장 이름에 붙은 그 분이 맞다.[5] 볼로냐와 승부차기, 유벤투스와 연장전 끝에 패배하였다.[6] 이 시기에 베네치아 FC의 문서에서 보듯, 2002년 이후~2005년 사이에 인수를 당한 것 같은 내용이 있지만, 여기선 찾아볼 수가 없다.[7] 유스 출신 라 구미나의 데뷔골로 위안을 삼아야했다.[8] 2010년과 12년, 중동쪽 사업가들과 진지하게 매각을 진행했으나 무산됐다.[9] #[10] 10월 18일 재정적 파산하였다.[11] P는 팔레르모와 열정(Passione)를 의미[12]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렌초 바르베라의 조카, 페루치오 바르베라의 아들이다. 페루치오는 이전 팔레르모 로고를 디자인했다.[13] 26경기 20승 3무 3패[14] 브라이언 마우드 포함[15] 브레시아도 강등 플레이아웃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16] #[17] 실점이 많았지만 4경기 연속 3득점이라는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