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Christoph I. Burggraf und Graf zu Dohna-Schlodien프로이센의 장성.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도나는 1702년 10월 25일 동프로이센의 쉴로디엔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9년 전쟁에서 프랑스에 대항하여 맞서 싸웠고 보병대 소장까지 진급한 크리스토프 폰 도나-쉴로디엔이다. 그는 1718년 포케이드 보병대 소위로 입대했고, 1719년 1월 1일 안할트-데사우 보병대로 전출되었다. 1722년, 도나는 안할트-데사우 보병대 대위로 승진했고 1730년 12월 9일엔 중령으로 승진했으며, 1734년 10월 18일 빌덴펠스 백작 부인 프리데리케와 결혼했다. 또한 1734년과 1735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당시엔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특별 허가를 받고 프랑스에 대항하는 오스트리아군에서 복무했다.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년 대령으로 진급한 도나는 1741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참가해 모리츠 폰 안할트-데사우 장군 휘하 보병대 사령관으로 진급했다. 뒤이어 1745년 7월 20일 소장으로 승진했으며, 폴랜츠 보병대 지휘관이 되었다가 곧 블랑켄세 보병대 지휘관으로 전출되었다. 1748년 7월 14일, 도나는 자신의 이름을 딴 그라프 도나 보병대 지휘관이 되었고 1751년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1753년 검은 독수리 훈장을 수여받았다.2.3. 7년 전쟁
1757년, 도나는 동프로이센에서 러시아군에 대항하는 임무를 맡아 한스 폰 레발트 장군의 선봉장을 맡았다. 그해 8월 30일 도나는 프로이센군이 강을 건너고 있던 러시아군을 습격하면서 벌어진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에 참가했다가 중상을 입었다. 1758년 2월에 회복된 그는 스트랄순트와 뤼겐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레발트 장군을 지원하고 조언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레발트가 자신의 뜻대로 뤼겐 섬 공략전을 추진하지 못하자, 프리드리히 대왕은 레발트를 도나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그해 6월 중순, 러시아군이 밀려오면서 포메른과 브란덴부르크 일대가 모두 위협받자, 도나는 스트랄순트 봉쇄를 포기하고 6월 26일 러시아군의 브란덴부르크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페네 강을 건너 쿠스틴을 향해 진군했다. 8월 중순,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를 돕기 위해 달려왔고, 도나는 대왕과 합세한 뒤 8월 25일 조른도르프 전투에서 우익 부대 지휘를 맡았다. 이후 10월에 콜베르크 요새를 사수하러 출정한 그는 10월 말 베를린에서 카를 하인리히 폰 베델 장군의 군대와 접점을 형성한 뒤 작센의 토르가우로 향하는 길을 택하면서 북쪽에서 스웨덴군과 대치 중인 하인리히 폰 만토이펠 장군에겐 8개 대대만 남겨뒀다.
11월 말, 도나는 라이프치히를 거쳐 포메른으로 돌아와 스웨덴군을 격퇴했지만 스웨덴군을 완전히 몰아내기를 원하는 대왕의 기대와는 달리 공세를 중지하고 메클렌부르크에서 겨울 숙영에 들어갔다. 그는 천성적으로 신중한 성격이었고 대담한 작전을 구상하고 집행하는 걸 꺼렸다. 대왕은 그의 신중한 면모를 존중했지만 적어도 프로이센군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세한 스웨덴군을 가까운 시일 내에 몰아내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도나는 스웨덴군에 신경썼다가 러시아군의 역공에 당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스웨덴군이 포메른 일부 지역에 주둔하는 걸 내버려둬 대왕을 실망시켰다.
1759년 1월 스웨덴을 향한 공세를 개시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그는 5월에 병에 걸려 일시적으로 만테우펠에게 지휘권을 넘겨줬다. 그러던 4월 말 러시아 대군이 브란덴부르크를 향한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도나는 병력이 18,000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그해 6월 초, 표트르 살티코프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이 도나에게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포젠에 입성했다. 이후 러시아군은 7월 17일까지 오데르 강에서 몇km 떨어진 쥴리차우에 도달했지만 도나는 이에 대한 어떠한 역습도 감행하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러한 도나의 소극적인 대응에 분노해 하인리히 폰 베델 장군이 그를 대체하게 했다. 도나는 이틀 후에 베를린으로 갔다가 함부르크로 가서 대왕을 알현했다. 그러나 그는 함부르크에서 대왕의 호된 질책을 듣고 베를린으로 돌아와야 했고 이후로는 어떠한 지휘권도 부여받지 못한 채 베를린에서 조용히 지내야 했다. 그 후 1762년 5월 19일, 도나는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향년 6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