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麹町(こうじまち)도쿄도 치요다구의 지명. 나가타초, 유라쿠초, 히비야공원, 마루노우치, 오테마치 등과 함께 코지마치 지역에 해당된다.
지명의 유래는 마을에 골목길이 많았거나 에도 막부 시대 누룩 일을 했던 코지야 산시로가 거처했었다는 설도 있지만, 후추의 관청을 왕래하는 관청 가도의 출입구였다는 설도 있다.
1880년 9월 27일에는 코지마치 11초메부터 13초메까지 요츠야구에 편입[1]되었고, 1889년 5월 1일, 시 자치 제도 시행에 따라 도쿄시 코지마치구가 되었다. 이후 1947년 3월 15일에 구 코지마치구와 칸다구를 병합하여 현재에 이른다.
2. 역사
무로마치 시대 중기 때 쿠마노나치 타이샤의 신관이 기록한 토요시마 성씨의 에도 가문 일족 중에 에도 / 지방관청이라는 성이 기재되어 이 지명의 오래된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도에서 무사시노쿠니 관청으로 통하는 중세 코슈가도의 통과 지점에 입지했었다. 최근 발굴 성과에 따르면 코지마치에서 요츠야역 주변에 에도 시대 때 저택이 있었던 자리에서 된장과 누룩을 만든 방식의 지하실 방이 많이 발견되어 말 그대로 누룩의 산지로 알려졌다.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성에 들어온 뒤 성 서쪽에 있는 한조몬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는 코슈가도를 따라 마을 인지를 형성하게 되었고, 한조몬에서부터 차례로 1초메부터 13초메까지 있었는데 이 가운데 10초메까지 요츠야의 맨 바깥쪽 성문 동쪽에 있어, 11초메부터 13초메까지 조영을 지을 때 해자를 끼운 서쪽으로 옮겨졌다.
에도 시대 때 고대를 대표하는 인구 밀집 지역이며 산노 마츠리 때는 요츠야 바깥쪽 성문에서 한조몬을 왕래하는 장군의 상람을 거쳐 타케바시로 지나가는 코스를 찍고 이곳에서 당인 행렬을 비롯해 거상 제작 등이 화제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에 의해 도쿠가와 가문은 몰락하며 저택을 잃어버리게 되고, 코지마치의 활기가 급속히 쇠퇴하면서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노포도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원로나 관료를 비롯해 정재계의 유력자가 저택을 짓게 되었고, 1960년대까지 상업지로서의 명맥을 유지했다 .
1968년에는 도덴이 노선 철거로 이곳을 달리는 철도가 없어졌고 유라쿠초선 코지마치역과 한조몬선 한조몬역이 개통할 때까지 도시다운 발전이 순조롭지 않았다. 1970년대부터 오피스 거리로 바뀌면서 풍경이 달라졌지만, 인구 감소가 심해 자치회의 활동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
3. 기타
도쿄 메트로폴리탄 텔레비전과 FM 도쿄는 이곳에 위치해 있다.[1] 이 주소는 1943년까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