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차명륜(車明輪) |
이명 | 차명윤(車明潤), 차명윤(車明允) |
생몰 | 1907년 ~ ? |
출생지 | 함경남도 영흥군 |
사망지 | 함흥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차명륜은 1907년 함경남도 영흥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8년 3월 4일에 개최된 영흥청년동맹 진평지회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회 정치문화부(政治文化部) 소속으로 선정되어 활동했다. 그리고 1931년 영흥농민조합 간부가 되었고, 1931년 7월 24일 영흥군 억기면 오포리에서 박용우 외 40~50명의 농민조합원과 함께 피고용인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자 한동안 잠적해야 했다.그러던 1931년 10월 영흥농민조합이 주도한 시위 도중에 조합원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계기로 영흥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영흥농민조합원들을 대거 체포했고, 차명륜 역시 10월 24일 억기면 용천리 자택에서 일본 경찰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었다. 차진상(車鎭相) 등 10여 명은 그와 동지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용천리 앞 유모로재(柳慕老峙)에 잠복하고 있다가 낫과 큰 돌을 갖지고 호송대를 공격했지만 끝내 구출하지 못했다.
그 후 차명륜은 1932년 4월 22일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예심을 받다가 1932년 12월에서 1933년 1월 사이에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그가 사망한 후 동지들이 추도식을 거행했다가 1933년 1월 21~22일에 대거 검거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차명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