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3-28 04:49:53

성빈 지씨(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

지혜령에서 넘어옴


파일:연못에 핀 목화-송경별곡.지혜령.jpg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네이버 웹소설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의 여주인공. 본명은 지혜령이며 실제 인물 성빈 지씨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표지 삽화나 맨 위쪽 삽화에서 보이듯이, 옆머리 한쪽이 약간 흘러내려서 얼굴 측면을 살짝 덮었다.[1]

2. 작중 행적

조선 정종의 후궁 성빈 지씨이자 지윤의 둘째 딸이며 이후생&이말생의 어머니/지혜루의 언니/지혜안&지득린의 동생/이방우에게는 처제가 되는 인물. 각종 무술에 뛰어나고 특히 활에 능숙하며 정치적 상황판단 능력이 좋은 당당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아픈 운명을 살아가는 인물 중 하나. 작중 서술에 의하면 고려 최고의 미남인 오라버니 지득린과 마찬가지로[2] 고려 최고의 미인이며 발랄하고 당당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늘지고 독한 구석이 있다. 시서에도 능하며 소설책 읽기를 좋아한다. 키는 160cm.

작중 두 명의 지아비를 맞이하는데 첫 번째는 어려서부터 함께했던 문중원, 두 번째는 조선 제2대 왕 정종 이방과다. 참고로 방과는 친동생인 혜루의 남편이다(...).

지철의 간계, 이방원의 계략, 안종기로부터 득린이 받던 수모 등, 여러 상황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을 놓아준[3] 방과의 후궁이 된다. 의연하게 마음을 다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국혼 첫날밤에 친동생 남편과의 합방이라서(...) 멘탈이 깨지는 과도기를 겪는다. 그러나 가문과 자신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4] 성빈이 된 이후 문중원과 처음 재회했을 때에도, 그를 절절히 그리워한 것과 달리 자신의 가문과 자식, 그리고 이방과를 선택해 중원을 절망케 했다.

그 후 방과와의 사이에서 사랑둥이 아들 말생도 낳고 다정하고 예쁘게 산다.[5][6] 성빈이 된지 얼마 안됐을 때는 방과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지만 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서인지, 시종일관 그의 마음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방과와의 사이에서 아들 말생도 낳고 그가 항상 자신에게 다정한 지아비여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빈으로서 방과와 함께할 때 이방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방과의 동생 이방원의 계략으로 기억을 잃고 문중원과의 아들인 이후생마저 보지 못하게 했음을 알고 방과의 뺨까지 칠 정도로 분노한다. 이후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방과에게 냉정히 출궁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방과와의 관계는 파탄나버린다. 그리고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난리통 사이에서 마침내 문중원과 함께 도망갈 기회가 생기자 자식들을 데리고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도주는 또다시 실패해 문중원은 이방원에게 붙잡혀 역모 혐의로 처형당하고, 혜령은 지긋지긋한 궁궐과 이방과에게 다시 돌아온다.[7] 결국 문중원과 지득린마저 죽고 삶의 의지를 잃은 혜령은 자신의 처소에 화재가 터지자 그 여파로 사망하고 만다. 사실상 자살로 추정.

3. 기타

여담으로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하면서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작중에서 두 명의 남편을 맞이하고 마지막까지 함께한 사람은 이방과였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문중원 뿐이였다.[8] 친오빠의 만류에도 모든 걸 버리고 문중원과 도망가려 했고, 그가 처형당하자 아무 미련없이 자살한 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죽음으로 안식을 맞이한 안타까운 부부.

당연하지만 본작의 성빈 지씨의 행적과 설정은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실제 역사에서의 성빈 지씨지윤의 딸로 정종의 후궁들 중 유일한 빈(嬪)이었으며, 별다른 일 없이 정종의 두 아들을 낳고 후궁으로 잘먹고 잘 살았다. 특히 그녀의 장남 덕천군은 다른 정종의 아들들이 온갖 말썽을 피운 것과는 달리,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왕족으로 대우받으며 편안히 살았다. 게다가 현재 덕천군의 후손이 대략 20만명 가량이나 존재할 정도로 후손들도 매우 번창했다. 사실상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정종의 후손들 대부분이 덕천군의 후손들이다.

단행본 IF 외전 애별리고에서는 중원이 거사에 참가하지 않아 그대로 부부 관계가 유지되어 아들 연후와 딸 연화를 낳고, 중원이 예문춘추관의 실질적인 최고 관리임에도 혜령에게 용돈을 받는 등(...), 가히 남편을 휘어잡고 산다.

[1] 비대칭 앞머리는 아니다. 소위 말하는 여신앞머리에서 약간 변화를 준 스타일.[2] 참고로 오빠 지득린과 성별이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쌍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은 설정이다.[3] 정확히는 이방원이 보내준 것이기는 하다.[4] 사가에서 문중원과 함께 할 때의 장신구를 모두 버리고 문중원과의 징표인 나비모양 머리 장식마저 버려버린다. 이후 이 나비 장신구에 대해서는 약간의 반전이 나온다. 이방과과 혜령을 얼마나 배려하고 사랑하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5] 물론 말생을 출산한 후에 이방원의 계략으로 기억을 잃게 되고 중원과 자신의 아들 후생도 보지 못해 문중원에 대한 기억을 잊긴 한다.[6] 안그래도 원래 임신이 어려운 난임인 몸으로 아이를 둘이나 낳은게 기적이라고 하였을 정도다.[7] 심지어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던 오빠 지득린마저 전사하고 만다.[8] 앞서 서술했다시피 이방과를 아예 사랑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비록 가문의 생존을 위해 혼인한 상대였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남편으로 섬기며 자식도 낳았다. 하지만 이방원의 계략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아들도 보지 못하게 하고 모든게 속임수였음이 드러나자 관계가 완전히 파탄났다. 결국 이 관계는 혜령이 죽을 때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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