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9-24 18:24:36

중간발음

1. 개요2. 문제점

1. 개요

외국어 발음을 가르칠 때 교육자들이 사용하는 자주 사용하지만 음성학적으로 모호한 개념이다.

한국어의 음소목록(단모음 10개[1], 자음 20개[2])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화자는 그 목록에 없는 음소의 발음을 듣거나 구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음성학 지식이 부족한 교육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해서든 가르치기 위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결국 '이 발음은 한국어의 a 발음과 b 발음의 중간이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

2. 문제점

그러나, 얼핏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설명으로 보이는 이러한 해설방식은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언어에서 하나의 음소는 실제로는 복수의 성질을 갖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어의 r(/ʁ/)을 예로 들어보자.

음성학 지식이 없는 한국어 모어화자는 프랑스어 Paris, Bonjour의 구개수음인 r을 해설할 때, ㅎ과 ㄹ의 중간발음[3]이라고 설명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r(/ʁ/)는 간단히 살펴본다 해도 기본적으로 유성음, 조음위치는 목젖, 발음방식은 마찰음(fricative)이다. 그러나 한국어의 ㄹ(/l/)은 유성음, 조음위치는 치경, 발음방식은 설측 접근음이며, ㅎ(/h/)는 무성음, 조음위치는 성대, 발음방식은 마찰이다. 이러한 복수의 성질들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해서 중간이라고 하는 것인지 '중간발음' 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알 수가 없으며, 설령 하나의 성질을 지적해 중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중간이 아니거나[4], 설명이 안 되는 경우[5]가 거의 대부분이다.

요컨대, 저런 방식으로는 아무리 발음연습을 해본들 발음 자체가 안 나오거나 나와도 괴상하게 되며, 결국에는 '이건 외국어니까'라고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게 된다. 발음 교육은 조음 음성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발음할 때의 혀의 위치, 입술의 모양 등을 어느 정도는 과학적으로 해설해야 비로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방금 언급했던 구개수 마찰음[ʁ]을 예시로 든다면, "혓바닥을 목젖에 가까이 대고 '-호'를 발음한다. 이때 'ㅎ'는 어중의 약한 ㅎ 발음, 즉 유성 성문 마찰음[ɦ]처럼 발음한다. 따라서 혓바닥을 목젖에 가까이 대고 유성 성문 마찰음을 발음하듯이 하면 구개수 마찰음[ʁ]이 나온다" 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따라서 자음의 경우에는 중간발음이라는 개념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고 봐도 좋으며, 굳이 소개하기 어렵다면 'A와 B의 중간발음'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A를 발음하는 입모양에서 B를 발음한다',[6] 'C를 발음하는 상태처럼 입을 벌리고 D처럼 혀를 앞/뒤로 내민다/오그린다'와 같이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경우가 훨씬 정확하다. 한편 모음의 경우에는 직접 입 모양을 보여 주면서 설명할 때 중간발음이라는 표현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음의 자질은 불연속적이라서 중간이라고 해도 어디가 중간인지 감을 잡기 애매한데, 모음의 경우 원순/비원순 여부만 빼면 혀의 위치에 따라서만 구별되기 때문에 [ɨ]를 해설할 경우 ㅣ와 ㅡ의 중간발음이라고 할 수 있다.


[1] 원칙 발음을 기준으로 하면 ㅏ, ㅓ, ㅗ, ㅜ, ㅡ, ㅣ, ㅔ, ㅐ, ㅚ, ㅟ로 10개. 'ㅢ'를 단모음으로 보는 견해에 따르면 11개. 'ㅚ'는 실질적으로 'ㅞ'로 발음나고, 'ㅟ'는 초성 자음 유무에 따라 'wi' 발음으로 나는 경우도 있다는 견해에 따르면 8~9개. 거기에 더해 'ㅐ'와 'ㅔ'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견해에 따르면 7~8개. 참고로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단모음이 ㆍ, ㅏ, ㅓ, ㅗ, ㅜ, ㅡ, ㅣ로 7개였다.[2] 4아음(ㆁ, ㄱ, ㄲ, ㅋ), 5설음(ㄴ, ㄷ, ㄸ, ㅌ, ㄹ), 4순음(ㅁ, ㅂ, ㅃ, ㅍ), 5치음(ㅅ, ㅆ, ㅈ, ㅉ, ㅊ), 3후음(ㅇ, ㆆ, ㅎ)으로 21개이나 'ㅇ'은 음가가 없으므로 20개. 여기서 발음은 남아있으나 글자는 소실된 'ㆆ'을 빼면 실질적으로는 19개. 'ㆁ'은 종성에서의 'ㅇ'으로 대체되었다.[3] 실제로는 아무 상관없는 [ɬ\] 발음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4] 가령 ㄹ과 ㅎ의 조음점의 중간이 (/ʁ/)라고 주장한다 해도, 치조(윗니의 뒤쪽 잇몸)와 성대의 가운데에 목젖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5] 유무성의 대립, 조음방식 등[6] 예를 들어, 일본어 つ, 독일어 z 등의 무성 치경 파찰음은 'ㅆ'를 발음하는 입모양에서 'ㅉ'를 발음한다는 설명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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