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주앙 아폰수 텔루 João Afonso Telo |
출생 | 미상 |
포르투갈 왕국 | |
사망 | 1385년 8월 14일 |
포르투갈 왕국 알주바호타 | |
아버지 | 마르팅 아폰수 텔루 드 메네시스 |
어머니 | 알돈사 아녜스 드 바르콘셀로스 |
형제 | 곤살루, 마리아, 레오노르 |
아내 | 베아트리스 아폰수 드 알부케르케 |
자녀 | 주앙 |
직위 | 리스본 시장, 포르투갈 제독, 베르셀로스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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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 왕국의 귀족, 군인. 카스티야 연합 왕국과의 전쟁에 참여했다.2. 생애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국왕 알폰소 11세의 왕비인 포르투갈의 마리아의 수석 집사를 맡았던 마르팅 아폰수 텔루 드 메네시스와 알돈사 아녜스 드 바르콘셀로스의 아들이다. 형제로 곤살루[1], 마리아[2], 레오노르 텔레스가 있었다.1381년 포르투갈 국왕 페르난두 1세와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국왕 후안 1세간의 전쟁이 발발했다. 그해 6월 12일, 주앙은 포르투갈 해군 제독을 맡아 갤리선 21척, 나오 4척을 이끌고 리스본에서 출항해 카스티야 함대를 파괴하려 했다. 6월 17일, 포르투갈 함대는 알가르베 인근에서 페르난도 산체스 데 토바르가 지휘하는 카스티야 갤리선 17척과 마주쳤다. 페르난도가 휘하 함대를 이끌고 세비야로 귀환하자, 주앙은 적이 도망친다고 믿고 추격했다. 그러나 기동성이 좋지 않았기에 갤리선 10척이 뒤쳐졌다. 그걸 목격한 페르난도는 우엘바 인근의 살테스 섬 부근에서 뱃머리를 돌린 뒤, 석궁병이 화살을 효과적으로 퍼부을 수 있도록 갤리선을 비스듬하게 배치하도록 했다. 이후 벌어진 살데스 섬 해전에서, 카스티야 함대는 완승을 거두었다. 포르투갈 갤리선 1척만 겨우 빠져나왔고, 나머지 배는 나포되거나 침몰했으며, 주앙은 생포되었다. 그 후 주앙은 옥고를 치르다가 양국간의 평화 협약이 체결되면서 석방되었다.
1383년 포르투갈 국왕 페르난두 1세가 사망한 뒤, 페르난두 1세와 레오노르 텔레스의 외동딸인 베아트리스가 포르투갈 여왕이 되었고, 베아트리스의 어머니 레오노르 텔레스가 섭정을 맡았다. 카스티야 연합 왕국 국왕이자 베아트리스의 남편인 후안 1세는 베아트리스와 자신을 포르투갈의 통치자로 선포하는 내용의 선언서를 포르투갈 전역에 보내고 알폰소 로페스 데 테하다를 포르투갈 총독으로 선임해 리스본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득권이 훼손될까 두려웠던 포르투갈 상인 계급은 자국이 카스티야 왕국에 병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백성들을 선동해 11월 말부터 반란을 일으켰다.
1383년 12월 6일, 아비스 기사당장 주앙은 여러 포르투갈 귀족과 함께 포르투갈의 섭정 레오노르 텔레스의 애인인 주앙 페르난데스 안데이루를 살해했다. 이때 그 역시 이 음모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자기를 마요르가 백작으로 선임한 카스티야 국왕 후안 1세 편으로 돌아섰다. 1385년 8월 14일 알주바호타 전투에서 카스티야 편에 참여했다가 전사했다. 주앙 1세는 이 전투에서 살해된 적장들 중 주앙 아폰수 텔로만 매장하라고 명령했다.
3. 가족
- 베아트리스 아폰수 드 알부케르케: 포르투갈 국왕 페드루 1세의 총리였던 주앙 아폰수 드 알부케르케의 사생아.
- 주앙: 포르투갈 국왕 페르난두 1세인 이사벨과 결혼했지만 1368년 이후 일찍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