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08:32:54

존 드 클린턴

성명 존 드 클린턴
John de Clinton
생몰년도 1410년 ~ 1464년 9월 24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클린턴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클린턴
아버지 윌리엄 드 클린턴
어머니 앨리스 드 보트르
아내 조앤 페러스, 마가렛 세인트 레저
자녀 존 드 클린턴
직위 클린턴 남작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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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군에 대적했으며, 장미 전쟁 시기에 요크 왕조를 지지했다.

2. 생애

1410년경 잉글랜드 왕국 클린턴에서 제4대 클린턴 남작인 윌리엄 드 클린턴과 제2대 보트르 남작 윌리엄 드 보트르의 딸인 앨리스 드 보트르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1431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주로 워릭셔에 위치한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았다. 1439년부터 1441년까지 노르망디 총독 요크의 리처드 휘하에서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다. 1441년 퐁투아즈 요새 사령관이었던 그는 퐁투아즈 공방전에서 프랑스군과 맞서 싸웠지만 끝내 함락되면서 포로 신세로 전락했고, 6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1447년 6,000마르크의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장미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요크의 리처드의 편에 섰고, 1455년 세인트 올번스 전투, 1459년 10월 루들로 전투, 1460년 7월 노샘프턴 전투에서 워릭 백작 '킹메이커' 리처드 네빌의 지휘를 받았다. 1460년 요크의 리처드가 전사한 뒤 권력을 장악한 랭커스터파는 의회에서 그의 영지와 작위를 몰수해 오웬 튜더에게 넘겼지만, 1461년 타우턴 전투에서 에드워드 4세의 지휘하에 승리를 거두고 에드워드 4세가 런던에서 대관식을 거행할 때 참석한 뒤 작위와 영지를 돌려받았다. 이후 초대 켄트 백작 윌리엄 네빌, 초대 노퍽 공작 존 하워드와 함께 바다의 수호자 칭호를 받았으며, 10,000명의 군대와 함께 브르타뉴로 항해해 콩케 시를 공략했다.

1463년 에드워드 4세와 함께 랭커스터 잔당을 토벌하고자 잉글랜드 북부로 진군했고, 밤버러 성, 던스턴버러 성, 안위크 성 공방전에 참여했다. 1464년 9월 24일 클린턴 영지에서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채틀리의 제6대 페러스 남작 에드먼드 페러스의 외동딸인 조앤 페러스와 처음 결혼해 제6대 클린턴 남작이 될 존 클린턴을 낳았다.첫번째 부인이 사망한 뒤 기사 존 세인트 레저의 딸인 마가렛 세인트 레저와 재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