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러헌 내각 Callaghan ministry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76년 4월 5일~1979년 5월 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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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슨 내각 | 대처 내각 | }}} | |
| <colbgcolor=#e50038> 국왕 | 엘리자베스 2세 | ||
| 총리 | 제임스 캘러헌 / 제70대 | ||
| 여당 | |||
1. 개요
2. 행보
2.1. 1976년
- 4월 5일 - 제임스 캘러헌 제70대 영국 총리 취임
- 7월 6일 - 파운드 스털링 위기
- 9월 29일 - 블랙풀 연설(Blackpool Speech)[1] /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
- 11월 22일 - 인종관계법 개정안(Race Relations Act 1976) 발효
- 12월 15일 - IMF, 23억 파운드 대출 승인
2.2. 1977년
- 1월 10일 - 노사분규로 실직한 분규 비참여자에 대한 실업급여 요건 완화
- 3월 17일 - 항공 및 조선 국유화법(Aircraft and Shipbuilding Industries Act 1977) 시행
- 3월 23일 - 노동당-자유당 협약(Lib–Lab Pact) 체결 (신임 공급)
- 5월 3일 ~ 5월 13일 - 북아일랜드 연합 얼스터 연합주의 협의회(UUAC) 총파업 시도[2]
- 5월 7일 ~ 5월 8일 – G7 런던 정상회의 개최
- 6월 1일 - 경찰민원위원회(PCB) 운영 개시
[1] 데니스 힐리 재무장관이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 블랙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이 더 이상 불가능하는 취지의 연설을 남겼다. 당시 노동당의 국유화 및 확대재정 정책의 포기로 해석됐으며 핵심 멘트를 따 "더 이상 선택지는 없다" 연설(The 'No Option' Speech)로 불리기도 한다.[2] 영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10일만에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