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제리 웨인 패리시 Jerry Wayne Parrish | |
북한명 | 김유일 |
출생 | 1944년 3월 10일 |
미국 켄터키 모건필드 | |
사망 | 1998년 8월 25일 (향년 54세) |
북한 평양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군인,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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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월북한 미군 장병 중 하나였다.2. 생애
켄터키 주 핸더슨 출신으로 미군 특수 요원이었다. 계부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가족을 자주 구타했으며 설상가상으로 계부는 패리시가 의붓 여동생과 성관계를 하는 사이라고 마구 몰아세워서 돌아오면 죽이겠다고 패리시를 내쫓았다. 이후 앱셔와 드레스녹의 이야기를 듣고 1963년 12월 국경순찰 중에 월북했다. 레바논 출신 여자와 결혼해 3명의 아들을 두었다. 패리시의 아내는 납북되었다는 말이 많았는데 본인은 방송에 나와서 "내 가족들도 레바논 정부도 내가 여기 산다는 것을 안다"면서 납북설을 극구 부인했다. 자초지종은 이 여자가 북한으로 관광을 왔다가 우연히 패리시와 만나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을 레바논에 돌아와서 알게 되었고 레바논의 가족들은 당장 애 아빠에게 돌아가라고 그녀를 추방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 패리시와 결혼한 것이다.[1] 신부전증으로 인하여 1998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부인과 자식들은 여전히 평양에 살고 있다고 한다.3. 여담
같은 월북미군인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의 말에 의하면, 영화배우로 동원됐을 당시 연기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패리시는 각종 선전 영화에서 연기력 덕분인지 중요한 배역을 많이 맡았다.[1] 근데 월북 미군이라는 극도로 통제되는 신분의 이들이 외국인 관광객을 꼬셔서 원나잇을 할 수 있던 처지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납북설은 사실이 아닐지언정 적어도 북한 당국이 둘의 만남을 주선했거나 묵인했지 않나는 의심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