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양시 출신 독립운동가, 정원명
성명 | 정원명(鄭元明) |
생몰 | 1881년 ~ 1942년 6월 23일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부 |
사망지 | 하와이 호놀룰루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정원명은 1881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양부 출신이다. 그는 1905년경 하와이로 이주한 뒤 친목회 회장을 맡았다. 이후 1907년 하와이 한인통일단체인 한인합성협회 회장, 1909년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김유순ㆍ강영소ㆍ민찬호ㆍ이내수(李來洙)ㆍ안원규 등과 함께 한인식산흥업회(韓人殖産興業會)를 조직하고 사장에 취임하여 민족자본 육성에 힘썼다.
1910년 7월 초순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호놀룰루 각 지방 대표자들과 함께 대동공진회(大同共進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 '한일합방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대표원ㆍ참의원 참의장ㆍ대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중한장유회사(中韓醬油會社) 임시이사원 겸 회계, 1921년 한인호놀룰루상업회 재무로 활동하였다.
1925년 1월에는 호놀룰루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후원회 회장으로 기관지 『단산시보(檀山時報)』를 발행하였다. 1928년 한족통일독립당촉성회 준비위원회 위원, 촉성회 집행위원회 의사부 위원, 1930년 하와이한인협회 임시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1934년 하와이국민회 대의원들과 함께 사회문제연구대회를 개최하였고, 하와이국민회와 대조선독립단 합동회의 합의위원, 1936년 하와이국민회 총회 참의원, 1937년 하와이국민회 역사편찬 사료수집 위원 및 찬무회 찬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07년부터 1942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42년 6월 2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사망했으며, 사후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평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원명
성명 | 정원명(丁元明) |
생몰 | 1866년 ~ ? |
출생지 | 황해도 평산군 금암면 한포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정원명은 1866년생이며 황해도 평산군 금암면 한포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31일 한포리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때 그는 “20세기 신문명의 대세는 자유이며, 이에 따라 조선의 독립도 천연의 원칙이다”라고 항변했으나, 1919년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정원명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