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ㄱ
2. ㄴ
- 논어고금주(경학)(1813)
3. ㄷ
4. ㅁ
- 마과회통(의학)(1797)
- 모시강의(경학)
- 목민심서(행정)(1818[2], 1821[3])
- 민보의(국방)(1812)
- 매씨서평(경학)(1810[4], 1834[5])
- 맹자요의(경학)(1814)
- 문헌비고간오(문헌고증)(1800)
5. ㅂ
- 비어고(국방)
6. ㅅ
7. ㅇ
- 아방강역고(역사지리학)(1811)
- 아언각비(언어학-어원)[6](1819)
- 아학편훈의(교육)(1804)[7]
- 악서고존(음악)(1816)
- 여유당집(모음집)
- 역삭서언(의학)(1821)
- 이담속찬(언어학-속담)[8](1820)
8. ㅈ
- 주역사전(경학, 기호학 이 저서와 관련된 연구서)(1808)
- 중용강의보(경학)(1814)
- 중용자잠(경학)(1814)
9. ㅊ
- 춘추고징(예학)(1812)
10. ㅎ
- 흠흠신서(형법)(1819)
11. 기타
[1] 현대의 개념으로 보면 국가경영, 사회과학(그 중에서 정치학)에 가깝다.[2] 초고[3] 개정[4] 1판[5] 개정판[6] 어원 연구서이다.[7] 천자문이 아동 발달을 고려하지 않고 지었다 하여, 1부에서는 기본 개념을, 2부에서는 성씨 등을 가르치도록 하여 약 2천 자의 한자를 수록했다. 여기서는 다산 대신 열수(洌水)라는 호를 썼다. 이후 대한제국 시절 지석영 등이 이를 참조하여 영어에 일본어까지 가미하여 새로이 '아학편'을 냈다.[8] 정약용의 저서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간행되었었다.[9] 정약용의 사후 자손들이 저술의 정리를 시도한 것[10] 신조선사에서 정약용의 저서를 수집후 발간하였다.[11] 여유당전서에 미처 포함되지 못한 저술들을 모아 엮은 책[12]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만든 전집[13]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가족과 친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엮은 책[14] 정약용이 자식과 제자,친구들에게 준 증언(贈言)을 엮어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