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방송원.2. 생애
1923년 2월 29일에 태어났다.해방 이후 평안북도 신의주방송국 방송계장이 되어 방송원으로 일하였으며, 1945년 11월 26일, 김일성의 신의주군중대회 참가 실황중계방송을 잘 수행하여 12월에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원으로 발탁되어 중앙에서 일하게 되었다. 1949년 5월, 소련으로 파견되어 모스크바의 조선어 방송 및 일본어 방송을 1951년 1월까지 담당하였다. 6.25 전쟁 발발 후 귀국, 최고사령부 보도 발표를 담당했으며, 1호 방송원이 되어 김일성 및 김정일의 로작방송, 당정 성명, 호소문, 격문, 선언문 등 주요문건 방송을 담당하였다. 1966년 7월 9일, 로력훈장을 받았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어 1986년,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까지 총 4선 의원을 지냈다. 1972년 4월 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상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1975년 11월 7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인민방송원 칭호 및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받았다. 1983년 2월 26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환갑기념 로력영웅 칭호 및 마치와 낫 금메달,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정령은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당과 혁명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높이 발휘하여 근 40년간 방송원으로 사업하면서 당이 요구하는 주체적이며 전투적인 화술로써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다그치며 원쑤들을 단죄규탄하고 남조선인민들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며 우리 혁명의 국제적 련대성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였을뿐아니라 방송의 강화발전과 방송원후비양성에 크게 공헌"했다고 후하게 칭찬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하였는데, 고령으로 인한 은퇴로 추정된다. 김일성은 수차례 전금선을 불러 "화술이 말에서 높고 낮음이 있어 듣기 좋고 아름답다. 적을 때리는 방송을 잘한다. 우리와 함께 잘 싸운 혁명전우."라고 높이 평가해주었다 카더라. 김정일도 전쟁 전부터 방송을 오래 한 동무라고 전금선을 잘 대접했다고 한다. 이후 조선대백과사전에도 생존 인물이지만 전형규, 최성원과 함께 등재되었다.
이후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2005년 10월 6일, 김정일이 전금선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주면서 사망이 확인되었다. 로동신문은 "김일성상 계관인이며 로력영웅, 인민방송원인 전금선동지"라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기일은 전날인 10월 5일로 보인다. 2007년 12월, 애국렬사릉에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원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수훈
4.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