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의 관료에 대한 내용은 장희(후한 사공) 문서 참고하십시오.
張喜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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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조조 휘하 장수.2. 생애
장군으로 208년 12월에 손권이 합비를 공격하자 장희가 기병 천 명을 인솔하도록 하면서 합비로 파견되어 구원했는데, 역병이 유행하자 여남을 지날 때 그 곳의 병사들을 통솔해 포위망을 풀도록 했다가 많은 사람이 역병에 전염되었다. 장제가 장희의 편지가 온 것처럼 위장해 4만 명의 병력이 왔으니 장희를 맞이하라고 했는데, 손권이 이를 믿고 철수했다.위의 인물과 동일인물 또는 별개의 인물인지 알 수 없지만 행적으로 볼 때 동일인일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분류되었다.[1][2]
3. 창작물에서
삼국전투기에서는 타레판다로 등장했으며, 사공 장희와는 동일 인물로 처리했다. 처음 등장한 첨산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첨산 전투 편 막바지에서 처음 등장. 조조가 합비의 포위를 풀기 위해 우선 장희를 보내지만 매우 게으르고 느리기 때문에 조조가 명을 내린게 보름 전이라고 하자 이제 방문을 무사통과할 듯 하다고 했다.
합비 전투 편에서는 원군으로 갈 때 느림보 장희의 원군은 좀처럼 올 생각을 안한다는 설명과 함께 지쳐서 좀만 쉬다고 가자고 했는데, 병사들은 100미터마다 쉰다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장제가 장희가 원군으로 10만을 보낸다는 거짓 서신을 이용하면서 손권이 후퇴하게 된다.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 하후돈이 발탁한 북군 사마 중 1명으로 여러 차례 종군했고 진란을 항복시키려다가 실패해 그 일을 보고하려 했는데, 마침 조조가 순욱이 위공에 즉위하는 일을 반대한다는 것에 분노해 장희는 진란을 항복시킨 일을 거부한 것을 이미 화내는 줄 알고 자신을 벌해달라고 했다.
조조가 화풀이를 하면서 진란을 죽이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자 장희는 진란의 근거지는 지세가 험해 공격하기가 어려워 자신의 부대로는 토벌할 수 없다고 했다.
[1] 합비로 달려가서 오군을 막았다는 이유로 장료의 오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진수가 같은 인물을 두 이름으로 표기한 적이 있기에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2]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사공 장희의 항목에 이 인물의 행적까지 넣었지만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둘의 항목이 따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