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19 22:54:22

장학이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장학이
張鶴伊[1]伊로 표기된 문헌도 있다.]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1년
경상도 성주목 가장면 가래곡
(현 경상북도 성주군)[2][3]
사망 1909년 3월
대구형무소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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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학이는 1881년 경상도 성주목 가장면 가래곡(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음력 9월 30일[4] 박연백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였으며, 이후 경상북도 의성군 일대에서 10명의 동료와 함께 총기 20여 정을 휴대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밀정 김명준(金明俊) 등을 처단하였다. 또한 1908년 음력 6월부터는 이토옥(李土玉)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해 부하 8명과 함께 총기 7정을 휴대하고 청송군과 의성군 사곡면·채동면 등지에서 삼베 3필, 면포 1필, 돈 3관 등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09년 1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 및 강도 혐의로 교수형선고받고 항소했지만 3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위 혐의들에 대해 공소가 기각되었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3월 23일 대심원에서 위 혐의들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어 결국 얼마 뒤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장학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2]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상에는 상주시 출신에 尙州 家藏 家來가 주소지로 기재되어 있으나, 독립운동판결문에는 확실히 상주가 아닌 '성주군'으로 기재되어 있다.[3] 현재 성주군 관내에 '가래골' 내지 '가라골' 등의 지명은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가라골, 선남면 도성리 가라골, 선남면 명포리 가래골 등으로 남아 있는데, 성주목 가장면 가래곡이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다.[4] 양력 1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