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5:35

장준두


성명 장준두(張俊斗)
생몰 1893년 2월 17일 ~ ?
출생지 평안북도 구성군 동산면 금곡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준두는 1893년 2월 17일 평안북도 구성군 동산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5년 12월 22일 평양지방법원 정주지청으로부터 문서위조행사, 사기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김순조(金淳祚), 최신을(崔信乙)를 만나 출옥 후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약속하였으며, 1926년 6월 22일 출옥하자 중국으로 건너갔다. 1926년 10월 안동현에 소재한 최신을의 집에서 김순조, 최신을, 김병모(金秉模)와 함께 한복단(韓復團)을 조직하여 의군부(義軍府)에서 활동하였던 전덕원의 지휘를 받았다.

1926년 11월 30일, 장준두는 김순주와 김영택(金永澤)으로부터 군자금으로 중국돈 대양(大洋) 12원을 받았고 12월 12일 장하현 두구에 거주하는 황모(黃某)로부터 중국돈 소양(小洋) 4원을 받았으며, 12월 19일 의주군 주내면 어적동에 거주하는 이근화(李根華)로부터 두루마기(周衣) 1매를 모집했다. 또한 12월 25일에는 김순조, 김병모와 함께 의주군 광성면 유초동에 거주하는 조용욱(趙用旭)으로부터 군자금 10원을 모집했다.

그러나 1927년 2월 14일 안동현 오도구에서 신의주경찰서에서 파견된 형사들에게 체포되었고, 1927년 10월 5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가택침입, 공갈, 공갈미수, 강도, 강도미수,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27년 12월 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6년 24일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2월 29일에 출옥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장준두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