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석칠(張石七) |
생몰 | 1905년 2월 10일 ~ 1952년 7월 16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모도리 |
사망지 | 전라남도 완도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석칠은 1905년 2월 10일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모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3년 9월 모도리의 대모도 서부락에서 십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를 조직하여 선전, 교양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청년회의 목적은 본래 마을의 개량서당을 후원하는 것이었지만, 회원들간에 점차로 민족 독립사상이 고취되면서 회의를 열 때마다 애국가와 혁명가를 합창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서당 생도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치며 '조선독립만세'를 삼창하기도 했다.또한 회원들은 1925년 1월의 월례회의에서 “우리는 절대 일본인 및 친일인(親日人)에게 동정하지 말고 그들과의 교제를 단덜할 것”을 결의하였고, 같은 해 4월의 월례회의에서는 “경찰당국 및 일본인을 파괴할 것”과 “우리는 절대로 대한(大韓)을 위해 활동할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고, 1926년 6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완도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2년 7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장석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