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0:11

장기초

성명 장기초(張基礎)
이명 김유하(金攸廈)
생몰 1893년 5월 13일 ~ ?
출생지 평안북도 강계군 외귀면 건하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기초는 1893년 5월 13일 평안북도 강계군 외귀면 건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음력 4월경 평북 강계군 문옥면에서 청년단(靑年團)을 조직하여 독립자금을 모집한 후 만주로 건너가 지린성 퉁화현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여 이재위원(理財委員)으로 활동했다. 1921년엔 독립단(獨立團) 지단장(支團長) 등으로 활동했으며, 그해 5월에 부하 6명과 함께 집안현 쌍분하 도무구에서 친일 단체인 조선민단(朝鮮民團)의 한응보(韓應甫)와 도무구장 최원탁(崔元卓)을 처단했으며, 평북 고산진 주재소와 위원구읍 주재소를 습격해 경찰 1명을 사살했다.

1924년 8월엔 동지 백광운(白狂雲), 최지풍(崔志豊) 등과 함께 참의부(參議府)를 조직하여 제1중대장, 경리부, 선전부, 행정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압록강 국경을 순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격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쳤으며, 1929년 국민부(國民府) 민사위원장(民事委員長)으로 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1929년 11월 봉천일본영사관 경찰서에 체포되어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었고, 이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및 치안유지법 등의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1년 3월에 출옥했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장기초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