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 시리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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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부인 '81 (1981) Liberal Wife '81 | |
<colbgcolor=#2F4F4F><colcolor=#fff> 감독 | 박호태 |
원작 | 정비석 |
각본 | 김문엽 |
제작 | 이재훈 |
제작사 | 동아흥행㈜ |
기획 | 최상균 |
촬영 | 김남진 |
조명 | 김강일 |
편집 | 현동춘 |
음악 | 이철혁 |
출연 | 윤정희, 최무룡, 남궁원 |
상영일자 | 1981.06.13 |
상영극장 | 국제극장 |
관람인원 | 287,929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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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고편
2. 등장 인물
오선영 (윤정희) |
장태연 (최무룡) |
삐에르강 (남궁원) |
신춘호 (한지일) |
장정인 (조인표) |
3. 줄거리
당시 명동의 세태를 알려주는 대화가 나오며 영화가 시작된다. 당시의 물질만능주의가 느껴지는 대사이다.선영은 친구인 금주의 전화를 받는다. 친구는 헬스클럽에서 살을 빼고 있다.[1]
결혼생활 10년이 지난 선영과 태연은 고생끝에 상당한 재산을 모은다. 태연은 식품회사의 사장으로서 불철주야 사업확장에만 전념한다. 그러나 선영은 그동안의 찌든 생활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싶은 여인으로서의 본능적인 충동으로 외출을 시작한다.
선영은 동창생들과 어울리게 되고 패션 디자이너인 피에르강과 교분을 맺는다. 피에르강은 선영과 같이 밥을 먹고 골프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2] 선영은 피에르강과 가까이 지내며 그의 사업자금도 대주게 되는데, 그러던 선영과 피에르강은 한번의 불륜의 정사를 하게 된다. 선영은 이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이미 이전의 가난으로 냉정해질 대로 냉정하게 된 태연에게 즐기며 살자며 뒤에서 끌어안지만 태연은 선영을 뿌리치며 그 후로도 일에 전념한다.
결국 선영과 삐에르강이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은 마침내 태연에게 알려지고 태연은 선영의 부정에 이혼을 선언한다. 선영은 죄책감에 잘못을 뉘우치고 방황하게 된다. 남편이 그녀를 용서하지 않자 선영은 괴로움과 회환을 참을 수 없어 결국 자살로써 모든 죄의 책임을 지고 용서를 구하려 한다. 마지막에 태연은 선영을 용서하러 선영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선영은 죽기 직전이다. 결국 선영은 죽게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4. 여담
- 영화제작 실패 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미국으로 갔던 최무룡이 이 영화의 성공으로 다시 여러 영화에 출연과 제작을 하며 안착을 하게 되었다. 영화 촬영 당시 박호태 감독은 최무룡이 빚을 갚기 위해 부산의 밤무대까지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무룡의 스케줄에 맞춰 촬영해주었다고 한다.
- 이 영화는 왕년의 스타였던 최무룡, 윤정희의 공연으로 주부 관객들이 상당히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전의 약간 균형잡히게 마른 최무룡과 다르게 꽤나 중후한 모습으로 나온다. 이 영화는 이듬해 애마부인의 흥행을 예고하는 전조 격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애마부인과 이야기 흐름이 상당히 비슷하다. 애마부인과 마찬가지로 여자 주인공의 성적 일탈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이다.
- 영화 상영 당시에 윤정희는 38세, 최무룡은 54세, 남궁원은 48세였다.
- 제목이 《자유부인》 또는 《자유부인 '81》으로 표기되어 혼란이 있다. 영화진흥공사 간행 1981년판 한국영화연감에도 두 가지 제목이 혼용되어 있다. 다만, 원판 상영 필름과 포스터에는 《자유부인》으로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