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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페리아 이탈리아어 : Imperia | |||
| 국가 | 이탈리아 | ||
| 지역 | 리구리아 | ||
| 면적 | 45.38km2 | ||
| 인구 | 42,442명[1] | ||
| 시장 | 클라우디오 스카욜라 | ||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UTC+2) | ||
1. 개요
이탈리아 리구리아 주의 해안 도시이자 코무네. 임페리아도의 도청 소재지이다.2. 역사
임페리아 지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특히 리구리아 부족들이 이 지역에 정착해 있었다. 이들은 후에 고대 로마의 정복 대상이 되었고,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당시 임페리아 지역은 여러 소규모 정착지와 항구가 흩어져 있는 형태였으며, 오늘날 임페리아의 두 주요 지역인 오네글리아(Oneglia)와 포르토 마우리치오(Porto Maurizio)도 각각 독립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로마 시대에는 해안가를 따라 비아 아우렐리아(Via Aurelia)라는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이는 군사 및 상업적으로 중요한 노선으로서 로마에서 갈리아(현 프랑스 남부)로 향하는 길이었다.중세에 접어들면서 임페리아 지역은 서로 다른 세력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오네글리아와 포르토 마우리치오는 각기 다른 역사적 경로를 따라 발전했다. 포르토 마우리치오는 중세 초기에는 동로마 제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나, 점차 제노바 공화국의 지배를 받게되었다. 제노바는 강력한 해양 도시국가였으며, 포르토 마우리치오는 해양 무역과 군사 전략상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 반면 오네글리아는 중세 후기에 사보이아 공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특히 13세기 이후 사보이아 가문은 오네글리아에 주목했으며, 이 지역을 군사 및 상업 기지로 활용하려 하였다. 제노바와 사보이아 사이의 경쟁은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이중적으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두 도시는 서로 다른 문화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임페리아 지역은 문화적으로는 비교적 소외되었다.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이 지역은 제노바와 사보이아, 프랑스 등의 세력 간 분쟁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으며, 각종 외세의 침략과 방어가 반복되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에도 포르토 마우리치오와 오네글리아는 여전히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존재하였고, 두 도시는 독립적인 삶을 지속했다.
오늘날의 임페리아 시는 비교적 최근인 1923년, 파시스트 정권 하의 베니토 무솔리니 정부에 의해 두 도시 오네글리아와 포르토 마우리치오, 피아니(Piani), 카라마냐 리구레(Caramagna Ligure), 카스텔베키오 디 산타마리아 마조레(Castelvecchio di Santa Maria Maggiore), 보르고 산타가타(Borgo Sant'Agata), 코스타 도네글리아(Costa d'Oneglia), 포지(Poggi), 토라차(Torrazza), 몰테도(Moltedo), 몬테그라치(Montegrazie)등 을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이는 지역 통합 정책과 행정 효율화를 명분으로 추진된 일이었으며, 도시 이름은 임페리오 강(Fiume Impero)에서 유래된 임페리아로 결정되었다.
3. 경제
임페리아의 경제는 관광, 음식 산업(올리브 기름과 파스타), 전문화된 농업 (올리브 과수원과 온실 꽃) 등이다.4. 관광
- 펠리체 카시오네 수영장 (Piscina Felice Cascione) : 임페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수영장으로 수많은 국내 및 국제 수영 대회를 개최해 왔다.
- 산 마우리치오 대성당 (Basilica di San Maurizio) : 1838년 완공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으로 리구리아 전체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 산 조반니 바티스타 대학 교회 (Collegiata di San Giovanni Battista) : 1759년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 오네글리아의 주요 교회였다.
5. 출신 인물
[1] 2024년 12월 31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