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15:05:52

일본 도호쿠 한국인 연쇄 실종 변사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2016년 박꽃수레 실종사건
2.1. 현지 경찰청의 수사비협조2.2. 후쿠시마의 한 지방지 기자의 설명2.3. CCTV 의문의 남자2.4. 사건의 열쇠를 쥔 이성재(이하 이 씨) 그는 누구인가
3. 2008년 김영돈 실종 변사사건
3.1. 이 씨의 황당전과3.2. 문제의 옥중서신3.3. <그것이 알고싶다> 마지막 취재 시도

1. 개요

일본 미야기현에서 2008년에 한국인이 실종되어 2010년에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2016년 후쿠시마현에서 한국인 여성이 실종된 사건. 전부 미제사건이다.

본 문서는 <그것이 알고싶다>#1127을 참조하였으며 2016년 사건에 2008년 사건이 설명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시열대가 역순으로 서술되었다.

2. 2016년 박꽃수레 실종사건

박꽃수레(이하 박 씨, 1974년생, 일본 통명은 '사토'라는 성씨를 사용.[1])가 일본에서 일본인 남편 '사토' 씨와 재혼했는데 남편이 의문사를 당하고 이어 박 씨도 실종된 사건이다. 박꽃수레의 아버지 박상식은 일본에 오가면서 수출입상을 하였는데 그 인연으로 딸도 일본 생활에 익숙했다. 졸업한 후 박 씨는 일본에서 애견미용을 배우겠다고 다시 도일했지만 정작 하던 일은 한일 국제결혼의 중매를 통역해 주는 일이었다.

가족이 마지막으로 박 씨를 만났던 곳은 박 씨 외삼촌의 장례식장이었다. 박 씨는 2016년 6월 29일 일본에 출국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실종되었다. 박 씨가 마지막에 살던 집은 후쿠시마의 아라이촌에 있었는데 사건 이후이는 빈 집이 되어 풀숲이 무성하게 자랐다. 거기다 박 씨가 실종되기 전에 박 씨와 재혼한 남편 사토 씨도 의문사했다. 남편의 친구라는 사토 요이치가 증언하기를, '남편이 풀을 베어 태우려고 하다가 불이 옮겨 붙어서 사망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 믿기에는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많았다고 했다. 아무튼 남편이 사망한 시점에서 박-사토 부부는 아직 자식이 없었으므로 부부가 살던 사토 소유 사토의 자택과 토지 일대가 박 씨에게 상속될 텐데 사토의 의문사 직후 박 씨도 실종되어 더 미심쩍다.

2.1. 현지 경찰청의 수사비협조

초기 수사에는 경찰청에서 주권침해 등 명목으로 공조를 거절했다. 왜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는지는 불명이지만 아마 그쪽에서 비공개 수사를 견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때문에 가족도 현지 경찰청의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이후의 답변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제보하게 되었다고 했다. 취재진과 아버지 박상식이 현지 경찰, 즉 후쿠시마현 경찰을 취재했을 때 관계자 취재는 거절하는 대신 취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박상식만 현경과 상담을 하고 왔다고 한다.

다만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시점에서는 약간이나마 공조가 진전된 듯하기도 하다.

2.2. 후쿠시마의 한 지방지 기자의 설명

후쿠시마현 현경이 비협조적이라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신변보호를 조건으로 현지 지방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취재한 현지 지방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살해당해서 유기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정황근거는 '실종 당시 집에 에어컨이 계속 켜져 있었고 귀중품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현경 수사에서는 이미 2016년 7월 무렵 살해당했으리라고 추정했다는 언질도 있었다.

이 사건과 하술할 김영돈 사건을 두고 후쿠시마 현경의 수사가 더딘 이유는 하필 후쿠시마현 시모고마치에서 변사체 사건이 있어서 범인을 잡느라 수사력이 분산된 점도 있으리란 견해도 내비쳤다.

2.3. CCTV 의문의 남자

2016년 7월 6일 박 씨의 거주지 인근의 고속도로 나들목 CCTV를 조회한 결과 의문의 남성이 차를 모는데 박 씨가 동승 중이었다. 함께 동승한 남성은 이성재였다.

2.4. 사건의 열쇠를 쥔 이성재(이하 이 씨) 그는 누구인가

박 씨의 오빠 박달나무[2]는 평소 <그것이 알고싶다> 팬이었는데 이번 사건도 프로그램에서 다룬 실종사건들과 패턴이 뭔가 비슷하다는 촉이 왔다고 한다. 실종된 후 박 씨의 카드를 누군가 쓴 흔적이 있고 박 씨가 실종되기 전 어떤 남자에게서 편지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 남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했는데 '그 남자'가 바로 이성재다

미야기현에서 어떤 한국인이 타인의 카드로 사기를 하다가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그 사기꾼이 바로 이 씨였다. 이 씨는 박 씨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오토바이 샵에 들렀는데 조사 결과 이 씨는 박 씨의 카드로 오토바이 보관용 창고형 상자 등을 구매한 이력이 있었으며 박 씨뿐만 아니라 의문사 당한 사토 씨의 카드까지 썼다고 한다.

박 씨의 후배 이◇◇(여)의 증언에 따르면 자기는 박 씨가 이 씨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엄청 말렸다고 한다. 이◇◇가 보기에 이 씨가 이혼남인 데다가 인상도 사납고 문신까지 했으니 무서울 만하기도 했다. 이◇◇는 박 씨와 이 씨가 헤어지자 이 씨가 화가 나서 박 씨의 직장에 찾아와 가전도구 등 잡동사니를 던졌다는 증언도 했다.

이 씨의 지인이라는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박 씨의 남편 사토가 사후 보상금을 받았지만 비자 문제로 현지체류가 걸림돌이 되자 이 씨는 비자를 미끼로 박 씨에게 잘해주는 척 거래하고 차도 바꿔주고 그랬지만 실제 이 씨의 의도는 달랐는지 김○○의 말에 의하면 "이 씨가 박 씨를 이용하는 것 같다. 박 씨는 이 씨랑 같이 (다시) 산다는 꿈을 꾸고 있겠지만, 우리가 물어보면 이 씨 입에선 엉뚱한 소리가 나오는 거란 말이야."라고 한다.

일단 박 씨의 실종 후 카드 도용 등 때문에 이 씨는 현경에 4번 정도 체포되고 풀려나기를 반복했다. 거기에 이 사건과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황당 사건으로 한국에서도 전과가 생겨서 강릉교도소에서 복역한 전적도 있었다. 문제는 현경 수사 당시 살인 관련 증거가 없기 때문에 금전부정사용 혐의만 적용해서 집행유예 4년만 선고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 씨에 관해 보도한 일본 현지 뉴스의 인터넷 판에서도 이 씨는 트위터나 뉴스 댓글 등으로 사건 관련 자신의 반론을 열심히 펼치고 다니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이 씨는 박 씨가 남들에게 돈을 빌려 갚지 않고 도망가는 여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성광은 이 씨에게 딸의 행방을 묻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전화를 어렵사리 연결하고 정중하게 통화하려고 했으나 이 씨는 불쾌하다는 듯이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냐면서 다소 심드렁하게 하다가 "그럼 딸 그냥 찾으세요. 저한테 그러지 말고."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끊었다.

3. 2008년 김영돈 실종 변사사건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박꽃수레 사건을 취재하던 중에 의문의 제보자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박꽃수레가 처음이 아니다. 한두 명도 아니다. 그 전에 후루카와에 있던 아무개도 없어졌다."는 말이 있었다. 제보자가 언급한 아무개가 김영돈인지, 아니면 제3의 피해자를 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제보로 말미암아 김영돈 실종사건도 다루게 되었고 실제로 두 사건이 어느 정도 연관 있음이 입증되었다.

김영돈은 센다이 전문학교에서 유학하다가 2008년 10월 실종되었는데 2010년 미야기현 오사키시 후루카와의 한 대나무숲에서 해골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후루카와에서 죽벌업을 하던 노인 이토 씨로, 처음에는 동물 시체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사람 시체임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발은 색이 바랬어도 옷은 많이 부패되진 않았는데 그 옷이 김영돈이 생전 팔당댐에서 찍었을 때 입은 복장과 일치했다. 백골로 발견되어 신원확인이 어려웠지만 옷 때문에 김영돈일 가능성이 부각됐다.

시체가 발견된 마을의 현지주민은 현지인만 알 법한 길에 시체가 있었으므로 범인은 이쪽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리란 말을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씨의 모친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데 그 사업근거지가 후루카와였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통상적인 시체의 부패 시간은 1년이지만 후루카와시의 기후 특성상 부패가 늦어져서 완전히 부패하는 데는 최소 2년 이상이 걸렸을 터이므로 김영돈이 사망한 시점은 2008년일 가능성을 추론했다. 2016년에는 해당 변사체가 김영돈이라고 확증되었다.

이 사건은 센다이 주재 한국영사관에서도 인지했다고 한다. 김영돈의 부친이 김영돈을 찾아달라며 영사관을 찾아왔는데 이때 증언을 해 줄 주변인이라고 하필 이 씨가 같이 왔다.

다시 이 씨의 지인 김○○씨의 증언으로 돌아가면 이 씨는 파칭코를 즐겨 했고 김영돈과도 금전거래가 여러 번 있었다고 추정된다. 소문에 의하면 김영돈이 급전이 필요하자 이 씨가 후루카와에서 만나면 돈을 빌려줄 테니 후루카와를 같이 가자고 꼬드겼고 둘이 같이 간 뒤 김 씨가 실종되었다고 한다.

김영돈의 부친은 이 씨와 면담한 내용이라며 그 내용을 녹화했는데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이 씨는 시종일관 '살아있으니 걱정말라.'는 표현만 강조했다. 거기다 김영돈을 목격한 증인이라며 한 여자를 데리고 오는데... 그 여인은 어떻게 김 씨가 살아있는지 직접적으로 관련된 떡밥은 꺼내지 않고 '나도 조카를 잃어버렸는데 2년 만에 돌아왔다 그 김영돈도 그런 사례일 테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뜬금없는 소리만 했다.[3]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여자는 실종 이전의 박꽃수레였다!. 당시만 해도 박 씨는 이 씨와 같이 지내는데 이 씨가 자기 일의 변론을 위해 마침 잘 아는 박 씨를 내세웠던 것이다. 실제로 경찰수사에 따르면 박 씨 본인이 직접 "이 씨가 시켜서 내가 그렇게 진술했다. 나는 당시 김 씨를 만난 적도 없다."고 진술해서 사실인지 확인해려고 거짓말 탐지기를 시행하려는 순간 운 나쁘게도 이 씨와 박 씨가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다는것이다.

변사체가 김영돈이라고 밝혀지기 전에 시신이 무연고자로 취급되어 일본식으로 화장되어 인근 사찰에 납골되었다. 나중에 시신이 김영돈이라고 밝혀진 뒤 유족이 무연고자 납골당에 찾아갔지만 수많은 다른 무연고자들의 뼛가루와 뒤섞인 채로 납골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회수도 못 하고 돌아왔다는 슬픈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3.1. 이 씨의 황당전과

사실 이 씨는 한 번 황당한 뉴스로 사회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 소유의 건물과 땅을 어떻게든 상속받기 위해 멀쩡히 살아있는 어머니를 죽었다고 허위로 사망신고를 했다가 들통나 부정상속을 받았다는 혐의로 한국에서도 복역했기 때문이다. 이때 강릉교도소에서 복역했는데 여기서 전처 박 씨에게 편지를 자주 보냈다.

3.2. 문제의 옥중서신

이 씨는 복역하면서 50통 가까이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사실 이 편지에는 이 씨가 범인이라는 정황이 많이 있다. 편지에 "영돈이 일은 잊어버리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박 씨가 이전에 이 씨와 짜고 김영돈 사건을 증언한 일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박 씨 사건과 하술할 김영돈 변사사건의 연결고리를 이 씨 스스로 자백한 셈이다.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오윤성 교수는 아무튼 이 건으로 박씨는 김영돈 사건의 존재를 알았을 테니 이 씨는 박 씨가 김영돈 사건의 진실에 다가설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껴서 처리한 게 아니냐고 분석했다.

거기다 박 씨를 지칭하는 표현을 보면 아예 대놓고 "사랑하는 부인에게 지엄한 서방님으로부터"라는 서명부터 해서 박씨를 "왼수댕이", "예쁜 구석이라고는 일편단심밖에 없는" 같은 깔보는 표현을 쓰는 등 스스로를 박 씨보다 위에 있다고 여김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많았다. 게다가 내용이라는 것도 자기 필요한 물건을 면회로 보내 달라는 둥, 잡지를 달라는 둥, 돈을 넣어달라 했는데 20만 원밖에 안 넣었다며 힐난하는 둥 박 씨를 이른바 셔틀에 준하는 존재로 취급한 정황도 보인다. 이런 정황 때문에 유족은 이 씨가 박 씨를 토사구팽한 거 아니냐며 분개했다.

3.3. <그것이 알고싶다> 마지막 취재 시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말미에 이 씨를 취재하려고 했다. 물론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범죄자 혹은 범죄자일 정황이 높은 이들이 그렇듯 인터뷰를 완강히 거부하려는 태도를 보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응해주려는 척해서 의외로 어떻게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오히려 자기도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도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자식들도 못 만나는 등 지쳤으니 내 사정도 이해해 달라며 박꽃수레에 대해서도 박 씨 아버지에게 대답한 거와 마찬가지로 왜 나를 찾느냐, 나한테 이러지 말고 직접 박꽃수레를 계속 찾으라고 하고 살인의혹에 대해서는 증거를 갖고 오라며 부정하는 태도를 견지했다.[4] 김영돈 사건에 대해서도 물어보지만 애써 부정하려고 했다. 결정적으로 "영돈이 일은 잊어버리고"가 언급된 옥중편지를 언급하자 갑자기 이 씨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화를 내며 취재진더러 당신이 경찰이냐, 10년도 더 된 일을 왜 당신이 왈가왈부하느냐며 쏘아붙이고 경찰에게 무단침입자가 와서 방해하고 있다고 신고하며 취재진을 떨어트려 놓았다. 이 씨에 대한 마지막 취재는 이게 끝이었다.

이 행동에 대해 오윤성 교수는 취재진이 이 씨에게 편지를 들이대니까 '어 이 편지 어디서 났지?'라면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고 팔짱을 끼는 제스처를 취하는데 이 팔짱 제스처 역시 자기 심리방어적 기제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경기대 심리학과 공정식 교수는 경찰수사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의혹들을 취재진이 추궁하니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 공격적 방어를 한 거라는 분석을 했다.
[1] 남편 성이 사토라서 '사토'씨로 입적한 듯하다.[2] 가명이 아니라 본명이다.[3] 이 점 때문에 박지선 PD는 그 여자가 이 씨와 짜고 시나리오대로 답변했을 뿐이며 실제로 김 씨와 만난 적이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4] 이때 이 씨는 경찰이 박 씨의 새 남편 사토를 자신이 살해했다는 혐의를 줬다는 점을 자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