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5-21 15:01:18

이익(후한)

李翊
(120 ~ 173)
1. 개요2. 상세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보국(俌國).

2. 상세

선조는 기자에서 나왔고 의붓어머니를 잘 받들어 모셨으며, 군수가 훌륭하다고 여겨 독우로 불렀고 오관공조의 수장이 되었다.

163년에 동래 출신인 장가태수 이군(君)[1]으로부터 이익이 품행이 아름답고 고결하며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나라의 충성을 한다며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었다. 당시 익주가 소란스럽자 삼공부의 선발로 광한속국후에 임명되었다. 168년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관직을 떠났다가 173년에 54세로 사망했다.

그를 기려 비석이 세워졌고 이익의 부인은 요절했고 정숙하며 덕이 있다고 하면서 옛날 성묘에 비유되었고 비석이 세워졌으며, 이 비석은 이익부인비라고 한다.

이익과 이익의 부인에 대한 비석은 예석에 따르면 지금은 양주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보각총편에 따르면 두 비석 모두 거주에 있다.

중국에서 은나라 역사와 씨족 연구에 따르면 이씨는 당나라 황실의 이씨 계보 때문에 그 신뢰성이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씨의 인구가 워낙 많았으며, 기자의 후손이라고 하는 이씨가 많지 않아 연구에 포함하려 하지 않았지만 이익비에 적힌 기록 때문에 확증되었다고 한다.


[1] 비석의 기록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군(君)으로 호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