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1월 6일 대전 군시제사공장에 근무하던 중 송희영 등 동지들과 함께 기숙사 교체 문제에 대한 한국인 차별에 항의하여 기숙사장 및 간사를 구타했다. 또한 다음날인 11월 7일 러시아 혁명 기념일을 기해 동맹파업을 주도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영 산입),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976년 11월 3일 대전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이병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