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윤강옥 尹江鈺 | |
이름 | 윤강옥 |
출생 | 1951년 10월 5일 |
전라남도 나주시 | |
사망 | 2023년 2월 21일 (향년 71세) |
학력 | 동신고등학교 (졸업) 전남대학교 (사학 / 학사) |
직업 | 정치인 |
최종 당적 | [[새정치국민회의|]] |
약력 | 제2대 광주광역시 시의회 의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기획본부 본부장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기획본부 이사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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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2. 생애
그는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1971년 동신고등학교를 졸업 후 전남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3년 뒤인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에 반대하며 열린 민청학련 사건에 관련돼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형 집행정지로 1년만에 출감된 후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도청항쟁지도부 기획위원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항쟁의 마지막 날인 5월 27일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전남도청 사수 작전 중 계엄군에 붙잡혀 투옥됐으며 군법 재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이듬해 1년 10개월만에 다시 형 집행정지로 출감됐고, 당시 홍남순 변호사가 회장을 맡고 있던 5·18구속자협의회 간사로 활동했다. 이후 1985년에는 5·18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 대변인을 역임했으나 이 과정에서 위령탑 건립 메달 제작 사건으로 수배돼 1년 넘게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또한 5·18민중항쟁동지회 회장과 5월 운동협의회 공동의장, 조선대 이철규 열사 사인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공동의장,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등을 맡았으며 1988년 10월 5·18민중항쟁동지회장을 맡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이희성, 황영시 등 신군부 핵심 인사 9명을 광주학살 주범으로 지목해 광주지방검찰청에 최초로 고소했으며 1989년에는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 전두환과 최규하의 동반 참석을 요구하며 출석을 거부하는 등 민주화에 헌신해왔다.1990년부터 정치권에 진출하여 야권통합추진위원회 광주전남대표 실행위원, 광주전남민주연합 공동의장을 1991년에는 신민주연합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처장, 1993년부터는 민주당 광주시지부 사무처장을 맡아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펼쳤다. 1995년에는 지방선거에 당선돼 제2대 광주광역시 의원을 역임했으며 김대중 정권에서 국가환경관리공단 상임이사로 일했다. 2003년부터는 수도권 매립지 전략 기획본부장을 맡아 기업일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