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22 06:21:03

유육유칠의 난

1. 개요2. 발생배경

1. 개요

1506년에 중국 명나라에서 유육(劉六), 유칠(劉七) 형제가 일으킨 농민 반란. 뇌물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서 '뇌물의 난'이라고도 부른다.

2. 발생배경

명나라에선 환관들의 힘이 막강했다. 홍무-영락 연간을 거쳐 조정 내 신료세력을 싸그리 족친 결과 황제를 보좌할 친위세력이랄 게 환관 뿐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한나라 때처럼 환관들이 권력을 농단하면 으레 그렇듯이 뇌물수수는 일상화되니 죽어나가는 건 민초들이었다. 이에 참다 못한 사람들은 각지에서 도적이 되거나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뇌물의 난의 주역인 유육, 유칠 형제는 처음엔 관군과 협력해 이 도적들을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관군과 협력하던 도중 환관 유근의 부하 양홍이 형제들에게 뇌물을 요구했는데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는 형제를 반란군이라고 지명했다. 결국 형제는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뭐라도 하자고 정말로 반란군을 일으켜 명나라 조정에 대항했다. 반란은 금방 진압되지는 않았고 상당히 세력을 넓혀 한때는 하북ㆍ산동ㆍ하남 지역이 반란군 세력권에 편입되기도 했다. 이들은 근거지를 따로 만들지 않고 북경 근처에서 활동했는데, 이들이 말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기동성이 좋았고 관군은 진압에 애를 먹었다.

반란군은 세력이 커지자 둘로 나뉘어 유육 형제가 이끄는 무리는 하북과 산동 방면에서, 양호(楊虎)ㆍ유삼(劉三)이 이끄는 무리는 하남 방면에서 활동했다. 하남의 반란군은 지식 있는 자들의 조언을 받아 조직이나 정책도 명확하고 규모도 컸지만 정예가 부족했다. 그래서 명나라 관군이 변경의 방위군을 충당하여 군세를 늘린 뒤 공격하자 괴멸하고 말았다.

결국 난을 일으키고 7년이 지나 1513년 7월에 양자강 하류 낭산에서 관군에게 괴멸당하여 난이 진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