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5-28 07:53:44

원측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원측
圓測
출생 613년
신라 모량부[1]
사망 695년
무주 신도 불수기사[2]
종교 불교(법상종)
속명 김문아(金文雅)

1. 개요2. 생애3. 사상4. 여담

1. 개요

신라의 승려.

2. 생애

신라 왕족 출신이며, 일찍이 출가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현장을 통해 유식학을 배웠다. 그의 학풍을 따르는 서명학파(西明學派)[3]가 성립했다. 신라로 귀국하려 하였으나 측천무후의 반대[4]로 신라로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입적하였다. 원측의 사상은 도증(道證)이 신라로 귀국하며 신라로 전해져 태현(太賢)을 거쳐 신라 법상종의 토대가 되었으며, 원측의 저술은 티베트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3. 사상

당시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공유논쟁(空有論爭)[5]과 불성논쟁(佛性論爭)[6]이 있었다. 원측은 공유논쟁에선 배타적으로 특정 학파를 지지하는 것을 배격하고 둘 모두를 인정하였으며, 불성논쟁에선 구유식의 실유불성(悉有佛性)[7]과 신유식의 오성각별(五性各別)[8]을 두고 중생을 구분하되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반적으로 구유식의 영향이 크나 구유식의 9식설[9]이 아니라 신유식의 8식설을 취하고 있어 신유식의 영향도 볼 수 있다.

4. 여담

  • 북송 초기에 찬녕(贊寧)이 집필한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따르면, 현장이 규기에게 가르치던 유식학 관련 내용을 원측이 엿듣고 베꼈다는 주장이 수록되었다. 이 일화에 대해서는 당나라 때부터 원측과 규기의 사상이 같은 유식학에서 나왔는데도 정반대인 해석이 나온데다가 규기도 중국 법상종의 기반을 다진 고승인 만큼, 규기를 옹호하던 자은파 측에서 원측을 비난하려고 지어 낸 이야기란 것이 통설이다.# ##
  • 원측의 사리탑은 종남산[10] 풍덕사에 있었다가 송대에 근처인 흥교사[11]로 이장되었다.

[1]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일대[2] 佛授記寺 중국 허난성 뤄양시에 있던 절.[3] 이 학파의 이름은 서명사(西明寺)에서 딴 것이다. 이는 규기 라인의 자은학파(慈恩學派)와 대립되는 것으로 본다.[4] 송고승전에 따르면 측천무후가 원측을 생불(生佛)처럼 대우했다고 하니 긴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5] 중관학파유식학파사이의 논쟁[6] 구유식과 신유식 사이의 논쟁[7]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8] 원측과 당시 라이벌 구도를 세웠던 규기(窺基)가 주장한 설. 중생을 다섯으로 나누며, 중생들 중에 불성이 없는 중생도 있다는 입장이다.[9] 진제(眞諦, Paramārtha)의 설로 8식에 더해 9식으로 청정식인 아말라식(阿摩羅識, amala-vijñāna)을 인정한다.[10] 终南山/終南山 서안 남쪽, 진령산맥 근처에 있는 산.[11] 경내 원측의 사리탑 근처에 현장의 사리탑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