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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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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geny Svetlanov

1. 개요2. 생애3. 대표 음반

1. 개요

1928-09-06 ~ 2002-05-03

러시아 출신의 지휘자이며, 이름은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Evgeny Svetlanov)
화끈한 해석으로 별칭은 전차군단장.

2. 생애

볼쇼이 극장관현악단의 솔리스트인 아버지와 마임 앙상블의 예술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1년까지 미하일그네신학교에서 그네신에게 작곡을 배우고 졸업 후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에서 1955년까지 공부를하게 된다.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시절 스베틀라노프는 하인리히 네이가우스(Heinrich Neuhaus)에게서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또한 작곡은 유리 샤포린(Yuri Shaporin)에게, 지휘는 알렉산더 가우크(Alexander Gauk)에게 배우게 된다.
재학시절인 1953년에 스승 가우크가 수석지휘자로 있었던 소련 연방 방송교향악단(나중에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으로 개칭)을 지휘했고,
같은 해에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도 지휘했다. 이 극장에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도 지휘했다.
27살 때인 1955년에 볼쇼이 극장의 부지휘자로 취임해서 1962년까지 볼쇼이를 이끌었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볼쇼이극장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약 10년에 걸친 볼쇼이 극장 시절에 스베틀라노프는 차이콥스키같은 러시아 국민음악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소련의 대표적인 오페라와 발레를 지휘하여 명성을 높였는데, 특히 장려한 합창이 곁들인 장면에 있어서는 신선하고 색채가 풍부한 음을 보여주었다고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셰드린이나 카라예프 등의 새로운 작품도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초연하기도 했으며, 바르토크의 [푸른 수염 영주의 성] 등의 외국 작품의 소개에도 힘썼다고한다.

스베틀라노프는 볼쇼이 극장 시절부터 모스크바 필하모니며,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 등 소련 각지의 오케스트라를 자주 지휘하여 콘서트 지휘자로서도 활약했는데, 1965년에는 콘스탄틴 이바노프의 후임으로 소련 국립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수석 지휘자로 취임했다.
스베틀라노프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소련국립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취임한 뒤부터라 하겠는데, 특히 취임 얼마 후에 녹음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전집](멜로디아)의 훌륭한 연주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이후 1965년에 소련 국립 교향악단(후에 러시아 국향으로 개칭)의 수석지휘자로 35년간 재임(1965-2000)하면서 그의 황금시대를 만들었다.

19세기와 20세기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주하고 음반 발표도 활발해서 그의 중요한 음원들이 이 시절에 거의 발표됐다.
지휘자로서 레퍼토리는 매우 넓다고 하겠는데,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소련의 관현악단곡 및 합창곡이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차이콥스키, 무소르그스키,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등의 대가들의 작품은 물론, 특히 주목을 끈 것은 그때까지도 별로 소련 국내에서도 연주되지 않았던 미야스코프스키의 작품을 가끔 연주한 것을 비롯하여, 셰발린과 크니퍼, 시체드린, 에슈파이 등의 새로운 작품을 소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또한 스베틀라노프는 작곡가로서도 대편성의 교향곡, 실내악곡, 기악곡, 칸타타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현대 소련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서 1968년에 '인민 예술가'의 칭호를 받았고 1972년에는 레닌 상을, 1975년에는 글린카 상을 받았다

1970년대부터 서방세계와 접촉이 시작되어서 런던 교향악단 수석객원지휘자(1979년)로 취임해서 몇 년간 이 악단을 이끌었고, 1984년엔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지휘했다. 페레스트로이카로 소련체제가 붕괴되자 소련의 수많은 뮤지션들이 서방의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기는 현상이 벌어졌고, 이 무렵 스베틀라노프는 네덜란드 헤이그 교향악단의 음악감독(1992-2000년)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감독(1997-1999년)을 역임했다. 그러던 가운데 2000년에 35년간이나 재임한 러시아 국향의 수석지휘자에서 퇴임하게 된 것은 당시의 러시아 문화부장관 미하일 슈비드코이(Mikhail Shvydkoi)가 일방적으로 그를 해임했기때문이었다.
해임의 사유는 스베틀라노프가 모스크바에서 체재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가 국제무대에서 얼마나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시켰는지를 시사하는 해프닝이었다.

스베틀라노프는 일생동안 다수의 유럽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는데 그 예로 BBC, 필하모니 아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잉글랜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미국), 파리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스트라스부르 필 하모닉과 몽펠리에 국립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디 산타 세실리아 (이탈리아), 베를린과 뮌헨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the Orchestre du Théâtre royal de La Monnaie(벨기에), 로얄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핀란드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덴마크 라디오 오케스트라,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들이 있고, 1992년, 그는 많은 녹음을 남긴 헤이그 레지덴티 관현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임명된다.

“원작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연주해야 한다”며 냉정하고 엄격한 음악적 해석을 고집했지만, 한편 그의 삶은 “예술의 원칙은 열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할정도로 열정 그 자체였다. 그는 “탐욕이 나를 망치고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버리지 않았고 단원들에게는 늘 “당신의 삶이 음악에 달려있는 것처럼 연주하라”고 주문했다.
2002년, 스베틀라노프가 모스크바 자택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나자 러시아 언론은 일제히 안타까움을 나타냈었다.
관영 RTR 방송은 “스베틀라노프가 영국 런던 필하모니와의 부활절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볼쇼이 극장에서도 오페라 <나비 부인>을 올릴 계획 이었다”고 전하며 안타까워했다.

러시아 항공사 에어로플로트(Aeroflot)는 Airbus A330 기종을 도입하면서 첫 비행기에 <4135 스베틀라노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러시아 국립 아카데미 교향악단은 <스베틀라노프 교향악단>으로 불렸고,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국제 지휘자 콩쿠르도 스베틀라노프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여전히 그의 이름은 러시아인들에게는 존경과 사랑의 대상인 것이다.

3. 대표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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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음반으로는 현재 Exton 음반사로 나온 차이콥스키 전집을 가장 대표음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90년 6월 일본 도쿄 실황 녹음으로 특히 이 음반에서 차이콥스키 4 5 6번은 광폭적이며 대륙적인 스케일의 차이콥스키의 4 5 6번 교향곡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