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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엄씨/과거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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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서를 작성하기 전에2. 과거 급제자3. 출처

1. 문서를 작성하기 전에

현존하는 방목(傍目)[1]에 한해서 작성.

2. 과거 급제자


  • 조선시대[5]
    • 문과(文科)[6]
      엄간(嚴幹)[7], 엄경수(嚴慶遂)[8], 엄경운(嚴慶運)[壯元][10], 엄경하(嚴慶遐)[11], 엄기(嚴耆)[12], 엄도(嚴燾)[13], 엄돈영(嚴敦永)[14], 엄륜(嚴綸)[亞元][16], 엄린(嚴璘)[17], 엄복연(嚴復淵)[18], 엄사만(嚴思晩)[19], 엄사언(嚴思彦)[20], 엄사헌(嚴思憲)[21], 엄석관(嚴錫瓘)[22], 엄석리(嚴錫履)[23], 엄석정(嚴錫鼎)[24], 엄성(嚴惺)[25], 엄세영(嚴世永)[26], 엄송수(嚴松壽)[27], 엄우(嚴瑀)[28], 엄익조(嚴益祚)[29], 엄정구(嚴鼎耉)[30], 엄주영(嚴胄永)[31], 엄주완(嚴柱完)[32], 엄주한(嚴柱漢)[33], 엄집(嚴緝)[34], 엄택주(嚴宅周)[35], 엄한중(嚴漢重)[36], 엄효량(嚴孝良)[37], 엄흔(嚴昕)[探花郞][39]
    • 무과(武科)[40]
      엄가함(嚴可諴), 엄경생(嚴敬生), 엄경원(嚴景元), 엄계생(嚴戒生), 엄계조(嚴啓祚), 엄계준(嚴繼俊), 엄광우(嚴光遇), 엄광조(嚴光祚), 엄국량(嚴國亮), 엄국주(嚴國胄), 엄국형(嚴國亨), 엄귀남(嚴貴男), 엄근룡(嚴謹龍), 엄끝룡(嚴唜龍), 엄남(嚴男), 엄대남(嚴大男), 엄대흥(嚴大興), 엄덕민(嚴德民), 엄두원(嚴斗援), 엄두필(嚴斗弼), 엄두한(嚴斗漢), 엄두환(嚴斗煥), 엄득강(嚴得綱), 엄득길(嚴得吉), 엄득립(嚴得立), 엄만륜(嚴萬崙), 엄망이(嚴望伊), 엄맥백(嚴麥白), 엄명(嚴命), 엄명국(嚴命國), 엄명오(嚴命五), 엄명찬(嚴命贊), 엄범(嚴凡), 엄봉빈(嚴鳳彬), 엄사경(嚴思敬), 엄사광(嚴思光), 엄사례(嚴思禮), 엄사욱(嚴思勗), 엄생수(嚴生水), 엄성후(嚴聖厚), 엄세량(嚴世良), 엄수징(嚴守澄), 엄승복(嚴承馥), 엄광위(嚴廣威), 엄승순(嚴承順), 엄시건(嚴時建), 엄시성(嚴時成), 엄애성(嚴愛成), 엄예생(嚴禮生), 엄옥춘(嚴玉春), 엄용(嚴容), 엄우량(嚴宇亮), 엄원립(嚴元立), 엄유관(嚴有寬), 엄윤현(嚴允鉉), 엄응립(嚴應立), 엄인(嚴仁) 엄인쇠(嚴仁金), 엄정관(嚴正寬), 엄정록(嚴正祿), 엄정생(嚴貞生), 엄정열(嚴鼎悅), 엄종현(嚴宗賢), 엄준(嚴俊), 엄준명(嚴俊命), 엄중수(嚴仲守), 엄지건(嚴智健), 엄진옥(嚴眞玉), 엄징(嚴澄), 엄찬주(嚴燦珠), 엄치경(嚴致敬), 엄태귀(嚴泰貴), 엄태운(嚴太云), 엄한광(嚴漢光) 엄한복(嚴汗福), 엄한빈(嚴漢濱), 엄한신(嚴漢臣), 엄한조(嚴漢祚), 엄호생(嚴好生), 엄홍무(嚴弘武), 엄후일(嚴後逸)
    • 사마시(司馬試)[41][42]
      • 생원시(生員試)[43]
        엄여겸(嚴汝謙), 엄송수(嚴松壽), 엄강수(嚴江壽), 엄천령(嚴千齡), 엄용공(嚴用恭), 엄흔(嚴昕), 엄서(嚴曙), 엄인달(嚴仁達), 엄성(嚴惺), 엄서(嚴曙), 엄가성(嚴可誠), 엄도극(嚴道極), 엄태장(嚴泰章), 엄찬(嚴纘), 엄집(嚴䌖), 엄한징(嚴漢徵), 엄이화(嚴以和), 엄경윤(嚴慶胤), 엄익하(嚴翼厦), 엄택주(嚴宅周)[44], 엄전(嚴琠), 엄린(嚴璘), 엄사민(嚴思敏), 엄형(嚴泂), 엄필엽(嚴必燁), 엄질(嚴耋), 엄저(嚴著), 엄익현(嚴翼鉉), 엄석정(嚴錫鼎), 엄성윤(嚴聖潤), 엄녹중(嚴祿中), 엄현좌(嚴顯佐), 엄조영(嚴肇永),엄장한(嚴章漢), 엄보섭(嚴普燮), 엄주만(嚴柱萬), 엄주국(嚴柱國), 엄양섭(嚴陽燮), 엄장섭(嚴長燮)
      • 진사시(進士試)[45]
        엄건영(嚴建永), 엄경수(嚴慶遂), 엄경우(嚴慶遇), 엄경운(嚴慶運), 엄경적(嚴慶迪), 엄경하(嚴慶遐), 엄규(嚴圭), 엄기(嚴耆), 엄기영(嚴琪榮), 엄도(嚴燾), 엄륜(嚴綸), 엄명손(嚴命孫), 엄사건(嚴思健), 엄사만(嚴思晩), 엄사면(嚴思勉), 엄사순(嚴思順), 엄사조(嚴思祖), 엄석겸(嚴錫謙), 엄석구(嚴碩耉), 엄석량(嚴錫良), 엄석명(嚴錫明), 엄석모(嚴錫模), 엄석진(嚴奭鎭), 엄성(嚴惺), 엄성구(嚴聖耉), 엄세영(嚴世永), 엄시(嚴蓍), 엄시화(嚴時龢), 엄신(嚴愼), 엄신영(嚴臣永) 엄용관(嚴用寬), 엄용순(嚴用順), 엄우(嚴瑀), 엄우인(嚴宇寅), 엄이신(嚴以愼), 엄익겸(嚴益謙), 엄전(嚴絟), 엄좌영(嚴佐永), 엄주영(嚴胄永), 엄주완(嚴柱完), 엄주하(嚴柱厦), 엄주한(嚴柱漢), 엄진구(嚴震耉), 엄집(嚴䌖), 엄철(嚴喆), 엄한붕(嚴漢朋), 엄한중(嚴漢重)[46], 엄홍복(嚴弘福)
    • 잡과(雜科)[47]
    • 음관(蔭官)[51]
      엄질(嚴耋), 엄저(嚴著), 엄시(嚴蓍), 엄석명(嚴錫明), 엄석겸(嚴錫謙), 엄도(嚴燾), 엄석리(嚴錫履), 엄석정(嚴錫鼎), 엄돈영(嚴敦永), 엄세영(嚴世永), 엄주한(嚴柱漢), 엄학영(嚴鶴永), 엄석명(嚴錫明), 엄석정(嚴錫鼎), 엄저(嚴著), 엄익현(嚴翼鉉), 엄석겸(嚴錫謙), 엄좌영(嚴佐永), 엄석태(嚴錫泰), 엄주흥(嚴柱興), 엄찬섭(嚴燦燮), 엄주만(嚴柱萬)

3.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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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합격자 명단[2] 고려시대 방목(傍目)은 사실상 거의 소실[3] 1명[4]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5] 조선시대 방목(傍目)도 초기 자료는 거의 소실[6] 29명[7] 국조방목[8] 국조방목[壯元] [10] 국조방목[11] 국조방목[12] 국조방목[13] 국조방목[14] 국조방목[亞元] [16] 국조방목[17] 국조방목[18] 국조방목[19] 국조방목[20] 국조방목[21] 국조방목[22] 국조방목[23] 국조방목[24] 국조방목[25] 국조방목[26] 국조방목[27] 국조방목[28] 국조방목[29] 국조방목[30] 국조방목[31] 국조방목[32] 국조방목[33] 국조방목[34] 국조방목[35] 이만강[36] 국조방목[37] 국조방목[探花郞] [39] 국조방목[40] 82명[41] 85명[42] 조선시대에 설행된 총 230회 생원진사시를 통해서 배출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사마방목 전부 전해지지 않고 있다.[43] 37명[44] 이만강[45] 48명[46] 경오식년사마방목[47] 현재 조선시대 전체 잡과합격자의 명단을 수록한 방목은 전하고 있지 않다.[48] 현대로 따지면 외교관[49] 1명[50] 방목[51] 2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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