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여방오 呂芳午 | |
출생 | 1928년 2월 13일 |
전라남도 완도군 | |
사망 | 1953년 6월 9일 |
강원도 인제군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최종계급 | 육군 일등중사 |
복무 기간 | 1952~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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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방오(呂芳午, 1928년 2월 13일 ~ 1953년 6월 9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2. 생애 및 군 경력
초기 생애 및 군 입대여방오는 1928년 2월 13일,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1월,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였으며, 강원도 인제군 서화 북방 854고지 전투 등에 참가하여 다수의 전공을 세웠다.
6.25 전쟁 참전
812고지 전투와 최후의 돌격 (1953년 6월 9일)
1953년 6월, 여방오 일등중사는 육군 제12사단 제52연대 제3대대 제9중대 제3소대 2분대장으로 배치되었다.
그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 북방 812고지 전투에 참전하였다.
812고지의 전략적 중요성
812고지는 간무봉의 동남쪽으로 뻗은 주요 능선상의 연봉으로, 북쪽에는 소양강이 천연의 장애물을 이루고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횡격실을 형성하여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다.
그러나 북한군이 간무봉-1052고지-752고지를 장악하고, 812고지 동남쪽 능선에 거점을 구축하면서 국군이 협격(挾擊)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 고지를 상실할 경우, 서화에서 인제로 이어지는 국군의 주보급로가 차단되는 전략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었다.
북한군의 공격과 812고지 탈환 작전
1953년 6월 8일, 북한군은 우세한 병력을 동원하여 파상공격을 감행하였고, 결국 국군의 방어 진지를 돌파하고 812고지 동쪽 능선인 쌍용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에 따라 제52연대는 즉각 반격 작전을 수행하였으나, 북한군의 집중적인 기관총 사격과 포격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공격이 번번이 좌절되었다.
이때 여방오 일등중사는 "이 상태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제가 적진으로 가겠습니다."라고 건의하며, 적 기관총 진지를 직접 무력화하는 임무를 자원하였다.
최후의 육탄 돌격
1953년 6월 9일 15시 정각, 여방오 중사는 황색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는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포복하며 적 기관총 진지로 접근하였으며, 이를 감지한 적군은 기관총 사격을 퍼부었지만, 여 중사는 포복으로 전진하였다.
그는 적 기관총 진지 7m 전방까지 접근하였고, 이때 아군 공군기가 도착하자, 유도 신호를 보내 폭격을 유도하였다.
그의 신호에 따라 아군 전투기가 강력한 폭격을 감행하였으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적 기관총 진지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여 중사는 이 과정에서 적의 사격과 폭탄 폭발로 인해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의 희생 덕분에 국군 제9중대는 기회를 포착하여 돌격을 감행, 17시 50분경 마침내 812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여방오 중사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5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3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1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을지무공훈장 (1955년, 사후 추서)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