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08:48:52

양효

楊嚻/楊囂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서진의 인물이자 양수의 아들, 양회의 아버지. 사례 홍농군 화음현 사람.《전략》에는 楊嚻, 《진서》 <가충전>에는 楊囂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답조공변부인서를 살펴보면 219년에 양수가 죽었는데, 양수가 죽은 시기 이전에서 얼마 안되는 시기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진나라에서는 태시 초기에 전군장군에 임명되어 중요한 신하가 되었다.

가충이 어머니의 병을 걱정해 관직을 떠났고, 무제가 황문시랑을 보내 그를 위로했는데, 동남쪽에서 일이 있을 때 양효가 명을 받아 가충에게 가서 사마염의 의지를 전하고 60일 동안 가충의 곁에 있다가 궁중으로 돌아갔다.

이후 일찍 죽었다고 언급되지만 생년으로 추정되는 해로 살펴보면 요절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으며, 278년에는 이미 사망했는지 노흠이 사망했을 때 무제가 조서를 내리면서 왕기, 노흠의 집안과 함께 양효의 집안에 조서를 내렸는데, 조서에서 양효가 평소 청빈해 재산을 남기지 않았고, 요사이 기근이 있어서 집을 확인하고 세 집안에 각자 곡식 삼백곡을 내리도록 했다.

조서에서 언급된 기근이 있는 시기는 노흠이 죽은 다음 해인 279년이다.

오치아이 히로키의 논문인 후한 말 위진시기 홍농 양씨의 동향의 분석에 따르면 양효가 가충에게 파견될 때 일어난 동남쪽의 일이 있는 시기는 269년의 일로 보고 있다.

아들 양회와 함께 진나라에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