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안승해(安承海) |
출생 | 1897년 11월 21일 |
경상북도 대구군 수북면 범어동 (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 |
사망 | 1973년 9월 27일 |
경상북도 대구시 (현 대구광역시)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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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수갑은 1897년 11월 21일 경상북도 대구군 수북면(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달성군 수성면 황청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으로 이주하였다.그는 1920년 음력 6월 대구에서 김석주, 장내주 등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했다. 이들은 먼저 대구부와 달성군, 고령군을 활동구역으로 삼고 재산가나 지식인 중에 독립운동에 관해 뜻이 있고 입이 무거운 이들을 입회시켰다. 이후 활동의 범위를 확장해 완전한 단체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김석주와 장내주는 1920년 6월 6~11일 사이에 6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각자 서약서와 50원을 징수했다. 또한 이들은 대구의 불교청년회(佛敎靑年會) 회장 백석기(白奭基)를 단장으로 선임하려 했으나 거절당했고, 회사를 설립해 경영하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이동옥(李東玉)에게 요리점을 차리게 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대구경찰서에 발각되어 체포되어 버렸고, 1920년 8월 24일 검찰로 송치된 뒤 1921년 10월 1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2년 10월 15일 만기 출소했다. 이후 달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73년 9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안수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