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01 20:52:38

심수관

1. 정의

조선시대 일본 사스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한 심수관가의 15대를 총칭하는 용어로, 김포 출신 인물인 청송 심씨 심당길(沈當吉)을 시조로 한다.

2. 개설

임진왜란 때 시마즈요시히로(島津義弘)에 의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간 피로조선인 도공 심당길의 후손으로 사스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한 심수관가의 15대를 총칭하는 말

3. 활동사항

1598년 12월, 시마즈요시히로에 의해 남원 등지에서 심당길과 박평의를 비롯하여 40여인이 피랍되어 가고시마현 구시기노시마하라(串木野島平)에 상륙하였다. 이 가운데는 심당길(沈當吉)은 김포 약산 출신의 청송 심씨로 남원근교에서 피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족은 1603년 구시기노(串木野)로부터 현재의 히오키군 히가시 이치키죠 미야마(日置郡 東市 來町 美山) 나에시로가(苗代川)에 이주하여 나에시로가와(苗代川燒)를 열었다. 그로부터 18년 후 심당길은 박평의와 함께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白土)를 발굴하여 오늘날의 사쓰마도기를 개창하였다. 사쓰마번주는 이들을 사무라이급(士班)으로 예우를 하였으며, 이들이 구워낸 도자기에 사쓰마의 번명(藩名)을 붙여 사쓰마도기(薩摩燒)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명치유신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가면서, 조선도자기의 흐름과 기예를 계승·발전시켜 나갔다.

1873년 제12대 심수관은 오스트리아만국박람회에 대화병 한쌍을 출품하여 서구세계에 사쓰마도기의 수출이 시작되어 ‘사쓰마웨어’라는 이름은 일본도자기의 대명사가 될만큼 유명해졌다.

제14대 심수관은 작가 시바료타로(司馬遠太郞)가 쓴 『고향을 잊을 수가 없소이다』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1988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명예총영사로 임명되었다. 2021년 15대 심수관이 대를 이어 대한민국명예총영사에 임명되었고, 2022년 윤석열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기도 하였다.

현재 15대 심수관이 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4. 계보

초대 심당길로부터 15대까지의 심수관가문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초대 심당길(沈当吉)-2대 심당수(沈当壽)-3대 심도길(沈陶吉)-4대 심도원(沈陶圓)-5대 심당길(沈当吉)-6대 심당관(沈当官)-7대 심당수(沈当壽)-8대 심당원(沈当圓)-9대 심당영(沈当榮)-10대 심당진(沈当珍)-11대 심수장(沈壽藏)-12대 심수관(沈壽官)-13대 심수관(沈壽官)-14대 심수관(沈壽官)-15대 심수관(沈壽官)

5. 상훈

1999년 제14대 심수관은 대한민국으로부터 은광 문화훈장을 받았다.

6. 귀향 고유제

2022년 7월 9일 15대 심수관은 일본에서 살아온 지 424년 만에 본향인 경기도 약산(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을 찾아, 시조 문림랑(홍부)의 10대손 도사공(都事公) 심우인(沈友仁)할아버지 앞에 엎드린 15대 심수관(沈壽官)은 삼가 향을 피우고 맑은 술을 올리며, 선조님들 영전에 귀향을 알렸다.

15대 심수관은 청송심씨 일가로부터 만지일근(萬枝一根, 만개의 가지가 있어도 뿌리는 하나 라는 뜻)을 비롯한 뜻있는 선물을 받고 감사의 말씀을 통해 “저 15대 심수관은 저의 뿌리가 이곳 경기도 김포 약산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기쁘기 그지 없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일본에서 살아갈 심수관 가를 대신해, 앞으로 심문의 영예를 높이고 조상님께 감사하는 겸허한 예술가, 한국과 일본의 친선에 가교가 되는 예술가, 세계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화, 그리고 배려를 소중히 여기는 예술가가 되도록 더욱 정진하겠다. 16대, 17대 등 제 후계자들도 그런 예술가가 되도록 엄하면서도 자상하게 지도하겠다. 당길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끌려가신지 무려 424년이 흐른 지금, 저 15대 수관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뿌리를 찾았다고는 해도 피눈물을 가슴에 묻고 일본 생활을 시작하셨을 당길 할아버지 생각과 오늘 이곳에 와서 400년 넘게 조상님의 묘와 재실들을 정성껏 지켜 오신 여러 문중 일가분들을 뵙고 보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일본에 온 저의 조상들은 400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묵묵히 도공의 길을 걸어왔다. 천리만리 떨어진,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도공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파도 앞에서 둑을 쌓고, 폭설 속에서 길을 뚫으며, 비바람 속에서 집을 짓는 것처럼,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또 400년 전 일본으로 끌려온 가문중에서 지금까지 한국 성을 쓰고 있는 집안은 오로지 심수관 가밖에 없다는 사실도 함께 아뢰는 바이다.”라고 밝히며 눈물을 흘려, 참석한 이들이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따뜻하고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7.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