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완은 1891년 5월 6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에서 태어났다. 용주사에서 중덕으로 선발되었고, 중앙학림[1]에 진학하여 현 동국대학교 총동창회의 기원인 일심회 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1919년에는 수원 용주사의 승려로 있다가 한용운의 집에서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받고 전국 사찰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 확산을 계획했다. 신상완은 중앙학림 학생들을 이끌고 탑골공원에서 3·1 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으로 건너가 안창호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신상완은 안창호에게 독립운동시위를 실행하는 임무를 받고 귀국하여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