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rano de Bergerac 1619년3월 6일?[1]~ 1655년7월 28일 (향년 36세) 정식 이름은 에르퀼 사비니앵 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파리의 한 법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영지였던 모비에르와 베르주라크를 오가며 유소년 시절을 보낸다. 일찍이 군인의 길로 들어서지만 1640년 아라스 포위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군을 떠난 후 문인들과 교류하며 기행을 벌여 문인 검객과 자유사상가로서의 명성을 쌓아간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물려받은 유산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 1655년 머리에 들보가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코가 큰 것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이를 가지고 놀린 사람들에게 결투를 신청해 뛰어난 검술로 개박살낸 것으로도 유명. 시인으로서, 그리고 검사로서의 재능도 충분했던 문무겸비한 엄친아다. 그의 작품으로는 희극 <골탕먹은 현학자(le pedant joué>(1645년), 비극 <아그리핀의 죽음('le mort d'Agrippne)(1654sus), 유토피아 소설로 우주여행을 다룬 <달나라 여행기('l'Autre Monde)>(1657년)를 쓰기도 했다.[2] 이 이야기는 로켓 비슷한 물건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달이 성경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라는 얘기를 한다. 어떻게 보면 초기 SF라고 할수도 있지만 사실은 풍자에 더 무게가 실려있다. 판타지로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1905년에는 편지글이 뒤늦게 <서한집>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호탕하고 강직한 성격에 지체 높은 사람들을 무시하기 일쑤여서 적이 많았다. 결국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크게 웃으면서 "하하하하하하하하. 늘 달나라로 가고 싶어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밤중에 비열하게 습격받아 가다니 좀 아쉬운 걸? 그래도 뭐 이왕 가는 거 멋지게 가마!" 라는 폼나는 유언을 남기며 사망했다고 한다.
[1] 정확히는 생일이 아닌 세례일이다. 다만 당시에는 출생 후 며칠 이내에 세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수도 파리에서는 사제에게 접근하기 쉬웠기 때문에 세례일이 생일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2] 이 작품은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달나라 여행과 해나라 여행을 묶어 에코리브르 출판사에서 <다른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판되었다.[3] 단, 이름과 일류 검사라는 것만 따왔고 게임 내 행적이나 외모 등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강렬하게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