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자의 판금 갑옷

글람팔렌이 이 갑옷을 만든지 천 년이 지났지만, 갑옷은 나무랄 데 없이 잘 관리된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4백년 동안 시체에 얼어붙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트마드의 마법이 갑옷을 영구적으로 바꿔놓아, 갑옷 주위로 삐죽삐죽한 얼음이 튀어나오도록 만든 것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신전 경비원이 착용했던 갑옷이기에, 하얀 간극의 축복으로 인해 이렇게 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터전은 단지 이야기 속의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마치 사원 주위의 푸른 바다와 같지만 차갑진 않고 단단한 광대한 백색 벌판. 그는 하얀 털과 근육이 덕지덕지 붙은 눈 곰들과 창처럼 날카로운 엄니의 바다코끼리들이 음식을 찾아다니는 광경을 상상했고 울퉁불퉁한 언 땅위로 썰매를 달리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는 감히 그곳에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 그가 있을 곳은 여기 고대의 사원이요, 하얀 아귀를 바라보며 약탈하려는 이들을 몰아내고 작은 신들의 무기와 도구를 제거하는 것이 일이었으니까

오후 훈련이 끝난 뒤, 린하이더가 그를 따로 불렀다. 리머간드에게 간택된 이들이 맞이할 수 있는 겨울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지만, 린하이더만큼은 개인적으로 겨울의 짐승에게 선택 받아 그의 영토로 가는 관문을 지키는 소임을 받았다. 그녀는 마치 권위를 몸에 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망토, 쭉 펴진 어깨, 올라간 턱.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그녀는 그를 터전으로 보냈다. 터전을 아는 것이 곧 겨울의 짐승을 알게 되는 것이라 설명해주면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이마저도 이해할 수 없으면 수호자는 겨울의 짐승이 수호자를 알듯 겨울의 짐승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심장 고동으로 터질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다음 보급선을 타기 위해 옷을 껴입었다. 뱃머리는 남쪽으로 향했다.

그는 강인한 남자가 되어 얼어붙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터전은 그를 서리와 추위로 벼려냈다. 부드러웠던 손들은 얼음처럼 단단해졌고 흐느적거리던 팔은 근육으로 탄탄해졌으며 깨끗하던 얼굴은 눈 곰의 가죽처럼 새하얀 수염으로 덥수룩했다.

하지만 모두 죽어있었다. 누군가는 짓이겨졌으며 사지가 뜯어졌고 흉곽은 열려있었다. 다른 이들은 제 자리를 지킨 채 얼어있었다. 린하이더는 죽어버린 와중에도 열린 아귀를 붙잡고 바짝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에겐 슬픔도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터전을 이해했고 그렇게 겨울의 짐승을 이해하게 됐다. 아귀에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는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창과 방패를 들고 간극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