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10-20 01:38:35

송배

宋配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서진 말기, 전량의 정권 수립에 기여한 핵심 공신이자 명장. 자는 중업(仲業). 양주 돈황군 사람.

당대 외모와 가문을 극단적으로 따지던 시기였음에도, 왜소한 체구와 심한 피부병이라는 신체적 악조건을 뛰어난 능력과 대망으로 극복하고 한 지역을 수호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음충(陰充), 범원(氾瑗), 음담(陰澹)과 함께 장궤의 4대 책사로 불렸으며, 후대에는 그중에서도 제1의 모사로 평가받았다.

2. 생애

평소 성품이 맑고 소박하며 돈독했고, 겉치레나 명예를 다투지 않았으나 가슴속에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다만 외모가 매우 왜소한 데다 몸에 물고기 비늘 같은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301년 정월, 장궤가 량주자사로 부임하여 인재를 모을 때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군권을 총괄하는 사마로 파격 발탁했다. 이때 송배는 범원 등과 함께 장궤의 핵심 참모가 되어 서부 전선의 안정을 도모했다.

305년, 과거 서진의 량주자사 양흔을 전사시키고 오랜 기간 세력을 불려 온 강족의 대수장 약라발능이 량주를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장궤의 명령을 받고 총사령관으로 출격한 송배는 약라발능의 대군을 완전히 궤멸시켰다. 이 전투에서 약라발능을 직접 참수하고 부족민 10여만 명을 포로로 잡는 전공을 세우며 서진을 수십 년간 괴롭히던 변방의 거대한 위협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이후 량주 내부에서 별가(別駕) 조거(曹祛)가 반란을 일으키자, 다시 군사를 이끌고 출진하여 조거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의 목을 베어 정권을 안정시켰다.

312년에는 선봉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중원이 영가의 난으로 대혼란에 빠지고 수도 낙양이 유목민 세력인 유요에게 함락되자, 장궤는 황실을 보위하기 위해 송배와 자신의 아들 장식, 장전 등에게 군사를 주어 장안으로 진격하게 했다. 이때 송배는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선봉에서 장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한족 왕조를 배신한 진주자사 배포(裵苞)와 동강교위 관흥(貫興)이 요새를 굳게 닫고 장안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군대가 중도에 고립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에 송배는 장식과 힘을 합쳐 배포를 공격해 패퇴시키고 진로를 뚫어내며 끝까지 황실에 대한 충성을 다했다.

관직은 서평태수(西平太守)에 이르렀으며, 그의 활약 덕분에 돈황 송씨 가문은 훗날 세워진 전량 정권에서 대대로 고위 관직을 지내는 명문가로 번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