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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000><colbgcolor=#00FF00> 달 리어타 제22대 군주 셀바흐 막 페르차르 Selbach mac Ferchair | |
이름 | 셀바흐 막 페르차르 (Selbach mac Ferchair) |
출생 | 미상 |
사망 | 730년 (향년 미상) |
재위 | 제22대 달 리어타 군주 |
700년 ~ 723년 | |
아버지 | 페르차르 2세 |
형제 | 아인브첼라흐 막 페르차르 |
자녀 | 던갈 막 셀바이흐, 페라다흐 막 셀바이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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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달 리어타 제22대 국왕.2. 행적
페르차르 2세의 아들이다. 형 아인브첼라흐 막 페르차르가 697년 아버지 사후 왕위를 가로챈 에오차이드 2세를 암살한 뒤 달 리어타의 왕이 되었지만, 이듬해인 698년 가브란 씨족의 피아나메일 우아 던차드에게 축출되어 아일랜드로 보내졌다. 700년, 셀바흐는 피아나메일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701년 자신이 속한 로안 씨족의 라이벌 지파인 케스보스 씨족을 파괴했고, 두놀리 성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후 두놀리 성채는 714년까지 재건되지 않았다.704년 로몬드 호수 북쪽의 인버라난 인근 글렌 레븐에서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1]의 군대에게 일시적으로 패배했지만, 로흐 아르클렛에서 그들을 물리쳤다. 그 결과 스털링 지방을 접수했으며, 705년 두나버티 성을 공략하고 킨타이어 반도에 있는 가브란 씨족의 거점인 타버트 성을 함락한 뒤 불태웠다. 707년 킨타이어 반도에서 왕을 자칭하며 자신에게 대적한 베크 우아 던차드를 공격해 전사시켰고, 717년 퍼스셔의 글랜 팔로크에서 다시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군을 격파했다.
719년, 9월 14일, 오랫동안 아일랜드에서 망명 생활하던 형 아인브첼라흐가 왕위를 되찾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지만 핀드글렌(Findglen) 전투에서 셀바흐에게 패사했다. 같은 해 10월 6일, 셀바흐는 킨타이어 반도에서 할거하는 던차드 2세를 토벌하려 했다가 아르드 네스비(Ard Nesbi) 해전해서 많은 귀족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하고 패주했다. 하지만 던차드 2세가 2년 후인 721년에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사망하면서, 셀바흐는 달 리어타의 유일무이한 군주가 되었다.
723년, 셀바흐는 장남인 던갈 막 셀바이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연이은 전쟁을 치르느라 지쳐서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4년 후인 727년, 셀바흐는 로흐 호 인근의 로스 페오찬에서 아들 던갈 막 셀바이흐가 에오차이드 3세와 맞붙었을 때 아들을 돕고자 수도원을 잠시 떠났지만, 전투 결과는 에오차이드 3세의 승리였다. 그 후 수도원으로 돌아간 그는 730년에 사망했다. 던갈 막 셀바이흐는 733년 에오차이드 3세가 사망한 뒤 달 리어타 왕으로 복귀했지만, 734년 픽트족의 왕 옹구스 1세의 침략을 피해 아일랜드로 망명했다가, 736년 형제 페라다흐와 함께 체포되어 픽트랜드로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