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석인욱(石麟郁) |
이명 | 석용범(石龍範) |
본관 | 충주 석씨[1]# |
생몰 | 1896년 2월 22일 ~ 1941년 7월 7일 |
출생지 |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생구정 |
사망지 | 함경북도 경성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석인욱은 1896년 2월 22일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생구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함북 경성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시위에 친형인 석인제와 함께 참여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내와의 연락을 위해 연통제를 조직할 때 참여해 함북 경성군 나남면 사감 직을 맡아 활동하다가 1919년 1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정치범 처벌령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그해 11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 4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출옥 직후 경성군 나남면 미길정에 거주하며 1921년 10월 11일 및 1922년 1월 23일에 각각 경성군 주남면 소재 828,375평과 997,406평의 석탄광산의 광업권을 설정하여 광산을 운영하였다.##2
이후 1941년 7월 7일에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석인욱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선전관공파 26세손